<해당 사고기와 같은 기종인 'Ryan Navion(L-22)'>
- '미군기 모자 살상 사건(米軍機母子殺傷事件)'은 1957년 8월 3일, '이바라키 현(茨城県)'에서 미국 군용기가 일본인 모자를 사상케 한 사건이다. 미국 측은 불가항력으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했으나, 일본 지방자치단체 측은 조종사에 의한 '장난'이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맞섰다. 결론적으로는 일본 측 수사는 당시 '미·일 지위협정(日米地位協定) 1 2'의 벽에 막혀 좌절된 것이다.
당시 이바라키 현에 주둔하던 '미군 미토 폭격장(戸対地射爆場, 現 히타치나카 지구)'에서 이륙한 L-22 연락기가 저공비행으로, 활주로 동쪽 끝에서 500m 떨어진 도로를 자전거로 주행하던 모자에게 기체가 접촉, 어머니(당시 63세)는 몸통을 절단당하면서 즉사, 아들(당시 24세)도 복부에 중상을 입었다.
이 비정상인 이륙에 대해서 미군 측은 이상 고온에 의한 열기류가 원인인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미군 조종사가 고의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행인을 놀라게 한 일이 종종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건은 비슷한 장난을 치려다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의 견해에 대한 현지 시 의회는 당시 사고기를 조종하던 존 L 고든 공군 중위(당시 27세)의 장난에 따른 것으로 단정한 항의문을 제출하고, 이바라키 현에서도 연락기가 소속했던 존슨 기지의 사령관에 대해서 정확하게 조사하라는 요구서가 내려졌다. 또, 이바라키현 경찰도 중위를 업무상 과실치사 및 상해 혐의로 미토 지검에 서류 송치해서 임의 출두를 중위에게 요구하는 사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8월 21일, 중위가 공무 중 발생한 것이라는 이유로, 미일 지위 협정으로 일본 측의 제1차 재판권이 흐지부지되면서 수사도 끝났다. 결국, 일본 정부가 유족 측에 432,044(현재 몇천만 원 수준)엔을 보상하라고 통보했고, 유족 측도 승낙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다.
<당시 사고 현장을 가리키는 츠지이 히데오(辻井英雄, 72세)씨>
최근(2017년) 아사히 신문이 관련 사건의 근황을 취재한 적이 있다.
"고구마 잎에 선혈이 튀었고, 어른들이 피해자의 살점을 주웠다. 지금도 그 광경은 잊지 못한다." 일흔(2017년)을 넘긴 츠지이 히데오 씨는 발생 직후 현장에 달려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집 근처 해수욕장에서 돌아오다가 많은 어른이 "비행기가 사람을 치었다"며 뛰어갔다. 그 뒤를 해수욕때 입었던 빨간 훈도시 차림으로 그대로 어른들을 쫓아갔고,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현재 사고 현장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도로가 포장되있는 점을 빼고, 사고 당시와 바뀐점은 거의 없다고 한다.
60년이 지난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한 위령비 등은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