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사진의 전기의자는 1999년 플로리다의 주도 탤러해시의 교정국에서 언론에 공개했던 주문 제작한 전기의자다. 참고로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전기의자형을 집행하는 8개 주 중 하나다> 1
- '전기의자(Electric chair)'는 사형 집행 형태의 하나로, 전기의자에 의한 집행은 피집행자에게 순간적으로 고전압을 가해서 감전사에 이르게 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지역은 미국의 8개 주뿐으로, 역사적으로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에서도 1926년~1976년까지 사용했다.
전기의자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의자 다리는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의자에는 사형수를 고정하기 위해서 머리, 흉부, 몸통, 양손 및 두 발목으로 총 7령의 가죽, 혹은 고무 끈이 갖추어지고 사형수는 이것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형 집행 때, 사형수에게는 헬멧 모양의 첫 번째 전극을 후두부, 2번째의 전극은 발목에 설치하고 사형수로 폐회로를 만든다. 적어도 22차 교류에 감전이 사형수에게 몇 분 동안 추가된다. 대체로 초기에는 2000V 전후의 전압이 피부의 초기 저항을 파괴하고, 사형수는 이때 의식을 잃거나 사망한다. 그 후, 전류를 8A(암페어) 전후로 감소하도록 전압을 내린다.
사형수의 체온은 섭씨 60도 안팎까지 오르내리면서 전류가 내장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사형 집행이 어떻게 이뤄지든 간에, 피부나 머리카락 중 일부는 전류를 통해 태워진다. 초기 전류는 피집행자에게 많은 생체기능의 제어를 잃게 하는데, 근육의 움직임이나 배변, 배뇨 등의 기능을 잃기 때문에 사형수는 기저귀 착용을 권한다. 이러한 집행 후에는 반드시 배석한 의료진에 의해서 사망 확인이 이뤄진다.
전기의자에 의한 사형 집행을 시행하는 사형 집행인을 '주(州)의 전기 기술자(State electricians)'라고 부르고 있다. 예전 전기의자로 사형을 집행했던 뉴욕주에서는 보안관 조수와 겸임했는데, 다른 주에서도 공직에 있는 사람이 겸무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형집행법인 교수형, 가스형, 약물 주사형, 총살에는 따로 전임 사형집행인이 없으므로, 전기의자만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사형집행인이 필요한 사형방법이다.
<백인 소녀 두 명을 강간, 살해한 혐의로 미국에서 최연소로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한 조지 스티니, 1944년 6월 16일 집행되었을 때의 나이는 만으로 14살에 불과한 소년이었다. 심지어 해당 사건은 스티니에게 억울하게 진범으로 누명을 씌운 것이었다>
사형 집행 방법으로 전류를 이용하는 개념은 치과 의사였던 '알프레드 사우스 위크(Alfred P. Southwick, 1826~1898)'가 고안하였다. 사우스 위크는 1881년, 만취한 남자가 실수로 전선을 건드려서 즉사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전기를 사형에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 의자형 전기 처형 기구를 고안했다. 이후 1885년에 뉴욕 주지사에 취임한 데이비드 힐과 협력하고 당시 벌어졌던 교수형의 폐지론을 배경으로 전류를 이용한 사형 집행을 법으로 정하도록 주력한 결과, 뉴욕 주는 교수형 대신 인도적(?)이고 새로운 사형 집행 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고 사우스 위크도 위원을 맡은 이 위원회는 1885년부터 1889년까지 전기의자형을 사형의 효과적인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것을 권장했다.
최초의 실용적인 전기의자는 '해롤드 브라운(Harold Pitney Brown, 1857~1944)'에 의해 발명되었다. 브라운은 발명가로 유명했던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의 감전사 연구와 전기의자 개발을 위해서 고용돼 일하기 시작했고, 에디슨의 경쟁사였던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사(Westinghouse Electric Corporation)'의 교류방식을 이용해 설계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데, 당시 에디슨의 직류방식,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방식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전류 전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 대결에서 상대적으로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방식이 고효율 송전, 변압의 용이성 등으로 직류에 비해 우수함이 증명되자 초조해진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방식을 소비자들에게 범죄자를 처형할때 쓰는 동(同)종의 전류임을 증명, 위험성과 더불어서 자택에서의 사용을 꺼리게 만들려는 속셈이 있었다.
<에디슨이 교류전기의 위험성과 자신이 개발한 직류전기의 우수함과 안정성을
홍보하기 위해 벌인 코끼리 처형 이벤트>
직류 송전을 추진하던 브라운과 에디슨은 교류 전류는 위험하고, 사형 집행에나 적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언론을 통해서 교류 전류를 이용한 동물 처형을 뉴저지 주에 있는 에디슨의 연구실에서 1888년부터 수차례나 시행했다. 이때 희생된 동물은 들개나 도둑 고양이가 대부분이었지만, 1903년에 조련사 3명을 죽인 혐의로 코끼리 'Topsy' 3의 처형 행사에서 '감전에 의한 죽음+감전에 사형(electrocution)'이란 용어를 만들어서 교류에 의한 인간의 사형 집행을 의미하는 동사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를 도입, 보급을 시도했다.
이 행사는 에디슨 측이 의도한 효과를 초래하였다. 교류 전기의자는 위원회에 의해서 채택, 전기 처형을 허가하는 첫 법률이 1889년 1월 1일에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0년 8월 6일, 뉴욕 주 오번 교도소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윌리엄 켐러(William Kemler, 1860~1890)'에게 처음으로 전기의자 사형이 집행되었다. 첫 번째는 17초 동안 연결되었지만 죽음에 이르지 못했고, 2번째는 연결된 발전기가 1분 이상 전압을 2000V까지 승압하면서 사형수의 신음이 들렸고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사형수의 머리에서는 연기가 치솟았으며, 집행 후 시신에서는 불길까지 올랐다고 한다.
전기의자 처형은 1897년에 오하이오, 1900년에 매사추세츠 주, 1906년에 뉴저지 주, 1908년 버지니아 주에서 각각 채택된 이후로 점차 미국 내에서 교수형 대신 사형 집행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나마 더 안락한(?) 방법인 약물 주사형이 1980년대 중반에 널리 보급할 때까지 이어졌다.
<1890년, 최초의 전기의자로 사형된 윌리엄 켐러의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삽화>
1900년경, 한 죄수의 발안으로 전기의자의 개량이 이뤄졌다. 원래 금속제의 조임구로 사형수를 전기의자에 고정하고 있었지만, 가죽제의 띠로 고정하는 것으로 전환되었고, 구속의 효율과 사형수의 육체가 태워지는 문제가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런것과 별개로, 미국에서 국회의원들이 인도적인 사형 집행 방법을 모색하면서 전기의자 사용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전기의자에 의한 사형 실패 사례가 여러 차례 일어났다. 게다가 플로리다 주에서 1999년 7월 8일에 집행한 '앨런 리 데이비스(Alen Lee Davis)'의 사형 집행에서 흉부와 코에서 출혈이 발생한 끔찍한 모습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전기의자에 의한 사형 집행이 본격적으로 재검토되는 기회가 되었다.
전기의자로 인한 집행과정에서 사형수가 즉사하지 않고, 여러 차례 고압의 전류로 억지로 목숨을 끊는 몇 건의 사례 때문에 전기의자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들 사례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로 느끼게 되면서 이 사형방식의 종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다.
현재도 여러 주가 사형수에게 전기의자 혹은 약물 주사의 선택을 허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기 사형을 선택한 사형수는 미국 전역에서 5명에 불과하다. 특이사항으로 플로리다주에서는 약물 주사가 규정인데, 희망자가 있으면 사형수가 감전사를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