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8월 4일, 비무장지대 수색 작전 도중에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로 두 다리를 잃었던 하재헌 예비역 중사의 지난 1월, 전역식 모습>
- 최근 언론의 어느 보도를 보고,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다름 아닌 지난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에 자신의 두 다리를 잃어버린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심사에서 [공상] 판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일단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예우 및 지원, 환자나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이나 그 밖의 법령으로 정하는 보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입니다. 그러므로 하재헌 씨는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국가보훈처 청사>
그런데 이제 하 중사가 지원을 받기 위한 심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가 나왔는데 상기한 공상(公傷) 판정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공상 판정은 교육이나 훈련 또는 그 밖의 공무로 인하여 입은 부상, 혹은 국가 수호와 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입은 부상 시 받는 판정입니다.
그에 반해, 전상(戰傷) 판정은 한자를 보시면 대략 아시겠지만, 적과의 교전이나 무장폭동 또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행위로 인하여 입은 부상, 전투 또는 이에 따르는 직무수행 중 입은 부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감이 잡히십니까? 네, 하 씨는 분명히 북한의 목함지뢰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냥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다친 것으로 판정이 내려진 것이죠.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혜택이나 지원을 떠나서, 하 중사의 명예가 훼손된 것입니다.
<재해부상군경(단위 : 천원)에 대한 보훈처의 지원금액>
하 씨가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직접 올린 청원 글에서, [이미 군에서 전 공상 심사 결과 '군인사법 시행령 별표9' 전상자 분류 기준표에 의해서 1-7 :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하여 상이를 입거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 제게 작업 중 상이를 입은 사람 요건으로 전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훈처에서는 [관련법에 근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하 씨를 전상자가 아닌 공상자로 분류한 것입니다.
하 씨는 [국가보훈처에서는 '적이라는 단어와 북한의 존재는 빼고, 전투에 대한 문언 해석 범위를 넘어 전상군경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합참이 적의 도발로 공표하였고 적이 매설한 목함지뢰에 부상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DMZ 수색작전 중 지뢰부상과 달리 보기 어렵다. 또한, '사고 당시 교전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자국의 군인을 잔인할 정도로 챙겨주지 않는 그 한국군도 심지어 인정을 한 부분을, 보훈처에서는 법률 조항을 들먹이면서 전상으로 해줄 수 없다는 것인데...
법률도 법률이지만, 아무리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힘쓴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나라 위해서 충실히 군 복무 하다가 평생 씻을 수 없는 크나큰 상처를 입은 장병에게 이러한 불명예를 주는 것은...!
정말 너무한 처사 아닙니까?
<2015년 당시,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 장면을 담은 TOD 영상>
하 씨는 [2010년 있었던 천안함 폭침 사건과 해당 사건은 둘 다 교전도 없었으며, 북한의 도발이었는데 천안함 유공자분들은 전상을 받고 저희는 공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천안함 사건을 이야기하자 '천안함은 많이 다치고 많이 돌아가셨다'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희는 두 명 밖에 안 다치고 아무도 안 죽어서 공상이라는 말도 안 된다] 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참고로 하 씨는 천안함 유족분들에게 직접 연락을 통해서, 양해를 구하고 해당 사례를 언급한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하 씨는 [전상군경과 공상군경 별 차이 없다, 돈 오만 원 차이 난다 라고 하시는데 누가 돈이 중요하다, 한 적 없고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희한테는 전상군경이 명예입니다..... 끝까지 책임지시겠다고들 하셨는데 왜 저희를 두 번 죽이시는 거죠... (중략) 다리 잃고 남은 거는 명예뿐인데 명예마저 빼앗아 가지 마세요.....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도와주세요... 긴 글 읽어 주셔 감사합니다]라고 국가에 호소하였습니다.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명예롭게 예우받아야 하는 이 청년이 오히려 국가에 명예를 되찾아달라고 청원을 넣어야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지요?
<현재 하재헌 씨는 서울주택도시공사 소속, 장애인 조정선수단에서 조정 선수로 활동 중이다>
내가 해당 기사를 보면서 가장 열이 받은 것은, 심사위 본회의 중에서 일부 심사위원이 [전(前) 정권에서 영웅이 된 사람을 우리가 굳이 전상자로 인정해줘야 하느냐]라는 발언이었습니다.
누가 저런 발언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걸 보훈처 심사위원이라는 사람이 하기에 적절한 발언입니까? 정권이고 뭐고 다 떠나서, 국가에 봉사하다가 평생 장애를 가진 군인에게 전 정권 프레임을 씌워서 이따위 소리를 한다는 게... 그리고 하 씨 본인이 영웅 만들어달라고 한 적도 없거든요?
그리고 그런 논리라면, 군사독재 시절 베트남에서 고귀한 청춘 바쳤던 월남참전용사들과 이승만 정부 시절 6·25전쟁 참전용사들도 전 정권의 영웅인가요? 참으로 너무하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될 수 있으면 존중하는 편입니다. 비록 사상과 정책의 차이는 존재할지 몰라도, 일단 현 정권은 합법적인 절차로 다수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지지한 국민도 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면서 우리네 주위에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서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조치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소식을 접한 문 대통령이 [다시 해석할 여지가 없는지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만, 전혀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 지금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이러한 상이군경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할 것 같으면 최소한 그들의 명예라도 지켜주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당사자인 본인들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국가를 상대로 청원이나 소송을 해야 하는 겁니까? 이건 전 정부 탓도 아니고 애초 뿌리 깊게 박힌, 군경을 소모품처럼 보고 천시하는 경향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봅니다.
진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현 정부는 앞으로 좀 더 힘을 내어서 이런 억울한 일이 없게, 바로 이런 곳에서 힘을 좀 써주었으면 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군경들이 국가에 버림받는 기사를 봐야 하는 거죠?
그들의 바닥까지 떨어진 명예를 이제부터라도 지켜주길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인분들은 이럴 때만 관심 가지면서 호들갑 떨지 마시고, 평소에 단 3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총선 때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 아니라고요.
뭐... 기대는 별로 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