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일본야구의 전설 중 한 명이자 재일교포 출신인 가네다 마사이치가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가네다 씨 사망, 한국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
[10월7일(월), WoW! Korea]
- 일본프로야구 [최다승리기록]의 한국계 가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 한국명 김경홍)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 언론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일한(日韓) 미디어에 의하면, 가네다 씨는 급성 담관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도쿄도 내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6세.
부모가 경북 상주와 대구 출신인 그는 1933년 아이치현에서 탄생, 프로 선수가 되었고 1959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사와무라상 등 수많은 타이틀을 수상. 1965년 요미우리에 이적한 뒤에도 승리를 거듭하며 불멸의 400승을 달성하였고 1969년 은퇴했다.
[가네양]이라는 애칭으로 친숙하며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1969년, 400승을 달성했을 당시의 경기장면>
- ken***** : 전설의 남자, 400승 투수는 앞으로 나올 수 없다. 단순히 대단하다고 생각해. 옛날에는 부모가 한국인이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심경이 바뀌었어요.
- cosmo : 솔직히 어릴 적 인상이지만, 가네다 감독은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감독 스스로가 트러블 메이커였다만, 유일한 400승 투수이다. 선데이 모닝 토크는 밝고 좋았다. 서거 소식을 접하고 명복을 빕니다.
- 新しいタブ : 차별은 있었겠지요. 그러므로 유무를 가릴 수 없는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심 패기가 있었겠지요, 지금 일본인에게 없는 부분이구나. 본받고 싶다.
- 拝一刀 : 귀화하면서부터 일본인으로서 말과 몸가짐을 해온 위대한 일본인입니다. DNA가 저쪽이 아니었군요.
- no : 拝一刀 씨, 당신은 자신의 DNA 알아?
- 拝一刀 : no 씨, 번듯한 일본인이야.
- ryu***** : 국적은 어떻든 명복을 빕니다.
- mas***** : ?[프로 선수가 되고 1959년 일본에 귀화했다] 일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kpj***** : 400승 투수로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나가시마의 데뷔전에서 4타석 4삼진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있다. 원맨이지만, 실력이 따라왔으니까. 명복을 빕니다. 1
- avi***** : 날로 쓴 글인가.
- SFO : 공적을 남긴 사람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그 습성, 어떤 의미에선 우스꽝스러워요. 귀화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네다 씨의 공적은, 가네다 씨 노력의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신국이 혜택을 받는(=출신국이 그에게서 반짝이는)그러한 자세는 조금 질립니다.
- 1234567 : 어느 부분에서 한국이 혜택을 봤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이런 영감 별 관심도 없어. 멋대로 생각하지 마라.
- act***** : 이 기사에서 생각났는데 그 나라 사람이었군요. 위업도 인품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장훈씨의 안하무인에는 화가 난다. 가네다 씨 같은 사람이 그 프로그램을 했더라면 시청률도 달랐겠지요. 그래도 역시 통명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 2
- tko***** : 싫어도 체크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시청률은 좋을 거야. 난 정말 싫어서 안 봤지만.
- mas***** : 이른바 재일(在日)이잖아요. 프로야구는 많죠? 또 연예계도.
- mat***** : 일본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리가 없습니다.
- wwe***** : 일본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 sam***** : 가네다에 대해서 재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인의 비뚤어진 본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Birdie : 스포츠계나 연예계나 비즈니스 세계에선 재일한국계 인사가 많다. 모두 일본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한국 때리기에 열심인 넷우익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 Yahoo! JAPAN : 저 고집이 센 성격은 따지고 보면 반도 유래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정신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사랑받는 호걸 타입이 된 건지도 몰라.
- yhq***** : 고마웠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준 훌륭한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인의 자랑입니다. 명복을 빕니다.
- jjt***** : 역도산도, 오야마 마스타쓰(최영의)도, 가네다 마사이치도 옛날의 영웅은 모두 한국계였구나.
- ran***** : 역도산에 이르러서는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조선계 야쿠자와 거의 다르지 않은 짐승이었으니까요ㅋㅋ 장훈 씨던가 보면서 생각하지만, 너무 고집이 세다고 할까? 오 사다하루나 노무라 씨나 나가시마 씨와 같은 언행의 부드러움이 없는 것이 신경이 쓰이네요. 3
- mon***** : 볼 때마다 호쾌하게 웃고 있어서, 이렇게 떠날 줄 상상도 못 했어. 나무아미타불...
- ネコ : 가네양의 기록을 깰 투수는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와서도 안 되지... 혹사의 기록이다)
- kat : 옛날, 잡지에서 가네다 씨의 현역 시절 두각을 나타내 온 장훈 씨에 대해 [여러 가지 불편도 있으니, 역시 귀화하는 것이 좋다]고 귀화를 권유하고 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당시는 일한 국교 정상화전).
- rom***** : 그렇습니까? 55년 정도 전의 TV에서, 장훈 씨가 [나는 지금도 일본인을 용서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현재 TV에서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발언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 시대니까 고교에서도, 프로에서도, 아마 음습하고 지독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네다 씨에 대해서 [독선]이라고 합니다만, 그런 기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네다 씨는 400승 중 대부분이 요미우리 이적 전인 약소 구단이었던 국철 스왈로츠(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기록한 것, 약소 구단의 투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