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버리고 간 흰색 오토바이 (1968년 12월 10일)>
1. 3억엔 사건 (3億円事件, 1968년)
- 1968년 12월 10일 오전 9시 20분쯤, 도쿄 후추시를 주행 중인 일본 신탁 은행의 현금 수송 차량을 [경찰 백차에 탄 경찰관]이 정지시키고, 차내의 직원 4명에 [이 차에 폭탄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고했다. 직원 4명이 차 내부나 차체 밑을 점검하자, 경찰관이 [있다고]라고 외치면서 화염을 일으키는 물건을 던졌다.
직원 4명은 급히 수송차에서 벗어나 그늘로 피했다. 그 틈에 경찰관은 수송차를 발진시키고 잠적했다.
사진은 범인이 버리고 간 흰색 오토바이 (1968년 12월 10일)
<트렁크 3개를 싣고 달아난 코롤라와 3억 엔이 들어있던 두랄루민제 트렁크 (1969년 4월 9일)>
수송 차량은 통상의 승용차(검은색 닛산 세드릭)로, 도시바 후츄 공장의 종업원에게 지급할 겨울 보너스 약 3억 엔이 3개의 두랄루민 케이스에 담은 상태였다. 속은 걸 깨달은 직원은 약 10분 후에 110번으로 통보했으나 경찰의 모습을 한 남자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흰색 오토바이]는 정품이 아니라, 훔친 걸 하얗게 칠한 것이었다.
<3억엔 강탈 사건의 시효가 성립되면서 제거되는 후츄 경찰서 특별 수사본부의 간판 (1975년 12월 10일)>
범인은 7년의 공소시효까지 특정되지 않으며,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독극물이 든 콜라병이 놓여있던 공중전화부스 (1977년 1월 4일)>
2. 청산 콜라 무차별 살인 사건 (青酸コーラ無差別殺人事件, 1977년)
- 1977년 1월, 도쿄도 미나토구의 공중전화부스에 놓인 청산가리가 든 콜라를 마신 학생 두 사람이 사망했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시효를 맞이했다.
<자력으로 탈출한 뒤,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연 에자키 카츠히사 사장 (1984년 3월 21일)>
3.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グリコ・森永事件, 1984~85년)
- 1984년 3월 18일, 에자키 카츠히사(江崎勝久, 1941~) 에자키 글리코 사장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집에서 3인조의 남자에게 납치되었다가 21일 에자키 사장은 감금장소인 오사카부 이바라키시 수방 창고에서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4월 8일 신문사와 경찰서로 범인으로부터 최초의 협박장이 도착한다.
12일, 경찰청은 광역중요사건으로 지정했으며 5월 10일 [글리코 제품에 사이안화나트륨을 넣었다]라고 쓰인 협박장이 신문사로 보내져 글리코 제품의 매장 철거가 시작됐다.
6월 2일, 범인 3인조의 남자가 오사카부 네야가와시 내의 남녀를 습격, 여성을 인질로 잡고 남자에게 현금을 실은 차를 가지러 보냈는데, 탈취에 실패했다.
<[독 들어감 위험]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모리나가의 [하이츄 소프트 캔디] (1984년 10월 9일)>
1984년 9월 12일, 모리나가 제과에 1억 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했으나 거래일에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10월에는 오사카와 효고, 교토, 나고야에서 청산이 포함된 모리나가 제품이 잇달아 발견된다. 같은 날, 청산이 들어간 제품이 놓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편의점 방범 카메라에 찍혔던 수상한 인물이 공개되었다.
<오사카 경찰이 공개한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으로 보이는 남자의 캐리커처 (1985년 1월 10일)>
11월 14일, 범인은 하우스 식품 공업(現 하우스 식품)으로부터 1억 엔을 탈취하려고 한다. 시가현 릿토시의 메이신 고속도로 근처에서 라이트밴을 타고 있던 범인 중 한 명으로 보이는 남자가, 현경의 경찰관에게 추궁받을 것 같아 도주. 수사원이 오쓰 휴게소에서 [여우 눈의 남자]를 목격했다. 그리고 1985년 1월 해당 남성의 캐리커처가 공개됐다.
8월, 범인은 [회사 괴롭히는 것도 그만두어야제]라고 종결 선언. 1994년 3월 에자키 글리코 사장 유괴 사건의 공소 시효와 2000년 2월, 청산이 든 과자 살포 사건이 시효를 맞아 모든 사건의 시효가 끝났다.
언론에 도전장을 보내 경찰을 헐뜯는 한편, 다음 범행을 예고해 사회 불안을 부추기는 수법으로 [극장 범죄]라고도 불렸다. 수사 당국은 평균 약 130만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했지만, 범인 체포에 이르지 못 했다.
<습격 사건이 있던 아사히 신문 한신지국 편집실 (1987년 5월 3일)>
4. 아사히 신문 한신지국 습격 사건 (朝日新聞阪神支局襲撃事件, 1987년)
- 1987년 5월 3일 오후 8시 15분쯤,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아사히 신문 한신지국에 엽총을 가진 남자가 들어와 총격. 이 지국의 코지리 토모히로(小尻知博, 1958~1987) 기자를 살해하고 동료 기자도 중상을 입혔다.
사건 사흘 만에 [적보대(赤報隊)]라고 주장하는 범행 성명이 시사 통신사와 교도 통신사로 보내졌다.
<[일본 민족 독립 의용군]이 시사 통신사에 보낸 범행 성명문 (1987년 5월 6일)>
효고 현경은 아사히 신문사를 적대시하는 우익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했지만. 2002년 5월 공소 시효가 끝난다. 아사히 신문을 겨냥한 폭파 미수 사건 등도 포함하여, 03년 3월에 일련의 사건은 모두 시효가 만료된다.
<구니마쓰 경찰청 장관이 피격된 아파트 E포트 입구 (1995년 3월 30일)>
5. 경찰청 장관 총격 사건 (警察庁長官銃撃事件, 1995년)
- 1995년 3월 30일 오전 8시 반경, 구니마쓰 다카지(国松孝次, 1939~) 경찰청 장관(경찰청장)이 도쿄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의 아파트 앞에서 등과 복부에 총격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경시청은 옴진리교에 의한 사건이라고 보고 수사, 2004년 7월에는 신자였던 전직 경시청 경장들을 살인 미수 혐의 등으로 체포했으나 실행범을 특정하지 못하고 불기소되었고, 2010년 3월 30일에 공소 시효가 만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