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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도 갈티에리 2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3부)

3월 28일, 아르헨티나군 침공 부대가 출항했다. 애초 계획에서는 3월 31일에서 4월 1일 사이의 야간에 맞춰서 기습적으로 상륙할 예정이었는데 악천후 때문에 24시간 연기되었다. 4월 1일, 포클랜드 제도의 총독인 '렉스 헌트(Sir Rex Hunt: 1926~2012)'경은 아르헨티나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본국에 통보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 측은 이미 전술적으로 기습이 성립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4월 1일 21:30(UTC-4시간, 이하[Q]로 표기)분, 미사일 구축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ARA Santísima Trinidad)'와 특수 작전 상륙 중대 92명이 고무 보트 21척에 탑승, 출발했다. 이들 부대는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서 '길예르모 산체스 ..

오늘의 역사 2019.04.05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2부)

- 아르헨티나 측은, 영국에 의한 포클랜드 점유 150년이 되는 해인 1983년까지 이 문제를 '모든 수단'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 1981년 12월 8일, 새 대통령에 선출된 '레오폴도 갈티에리(1926~2003)' 대장은 이듬해 육군 사령관을 물러나야 했기에, 퇴역 전까지 정치적 공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1981년 국방 정책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트라이던트 탄도 미사일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쇄빙선 '인듀어런스'와 항공 모함 '인빈시블'급의 퇴역이 검토되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의 안전 보장 문제보다 국내 재정 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아르헨티나는 12월 15일에 해군 총사령관인 '..

오늘의 역사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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