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11월 29일> 1972년 11월 29일 - 아타리 <비디오 게임 '퐁(PONG)' 출시>

!@#^& 2019. 11. 28. 22:30



- (PONG)비디오 화면상에 재현탁구 게임으로, 유사 게임은 그 이전부터 널리 제작되어 있었으나 여기선 1972년 11월 아타리가 발표하여 일반에 널리 알려진 최초의 비디오 게임을 다룬다. 


<게임 플레이 영상>


[게임 시스템]

통상탁구2명플레이어탁구대 양쪽에서 탁구공을 번갈아 되받아친다. 퐁은 이러한 컨셉을 따와서, 두 명의 플레이어가 [패들]을 조작하며 화면 상을 오가는 []을 되받아친다. 패들이 공에 맞으면 공은 상대방 측에 돌아가며, 받아치지 못하고 그대로 화면 밖으로 나갈 경우 득점이 되면서 15점먼저 획득하는 쪽이 승리하는 단순한 시스템이다.


[퐁의 역사]

1. 오디세이와의 관계가 있는 부분

- 1972년 봄, 컴퓨터 게임아케이드 게임을 노리며 [컴퓨터 스페이스(Computer Space)]출시했으나 실패했던 놀런 부슈널(Nolan Bushnell, 1943~)캘리포니아주 벌링게임에서 시범 전시했던 [오디세이(Odyssey)][테이블 테니스(Table Tennis)]를 처음 플레이, 곧바로 새 회사 [아타리(ATARI)]설립한다.



<컴퓨터 스페이스 플레이 영상>


아케이드 게임에서 드라이빙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부슈널은 당시 전자공학 엔지니어였던 알란 알콘(Allan Alcorn, 1948~)고용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이 알콘에 너무 복잡할까 봐, 우선 알콘에 오디세이와 유사한 게임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알콘이 3개월에 걸쳐서 만든 게임은 부슈널의 설명구두로 물었을 때 모르는 부분을 자기 맘대로 만들어 본 적도 있는데, 이하의 차이가 생겼다.

 

오디세이

 캐릭터

모두 정사각형 

라켓은 세로줄, 공은 작은 점 

 라켓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상·하만 움직인다

 공의 각도와 속도

 경사 45도+일정 속도

점점 변한다 

 사운드

 없음(시제품은 있었다)

있음

 점수표시

 없음

있음

 가운뎃줄

 실선

점선

 감상

 그냥저냥

 매우 재미있다

플레이해본 부슈널은 해당 제품시장에 팔기로 했는데, 알콘이 [가정용으로는 비용이 많이 든다]라고 말해서 아케이드 게임으로 내놓기로 했다. 

명칭에 대해서는 [핑퐁(Ping Pong)]이라는 호칭이 이미 특허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에서 물건튀는 의성어[(Pong)]이라고 결정하였는데 해당 제품의 작명은 알콘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발매 2주 후, 오디세이를 내놓았던 마그나복스(Magnavox)가 퐁에 대한 것을 알아채고 재판에서 제소, 아타리는 특허료700,000달러를 지급하며 합의한다. 


<마그나복스가 퐁보다 먼저 내놓았던, 오디세이 테이블 테니스 플레이 영상>


2. 오디세이와 관계없는 부분

- 당시 아타리는 아케이드 게임 개발업체에 불과했고, 기업으로서의 전망은 없었다. 부슈널은 오락기업에 새 게임의 시연회를 하였으나 현지 테스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상대 받지 못했다.

그 때문에 핀 볼 회사 윌리엄스발리 미드웨이(The Bally/Midway)약속을 잡고 있던 부슈널과 알콘은 시카고로 향하기 전, 급히 코인 투입구를 마련한 로케이션 테스트용 기계를 준비했다. 테스트기는 박스형이 아니라 TV 화면오렌지검은색으로 칠해진 케이스가 만들어졌다. 참고로 테스트기 및 초기 양산형의 화면은 일본 히타치(日立)제의 가정용 TV를 사서 그대로 케이스에 끼워 넣고 있었다.

테스트기는 원래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의 술집 [앤디 캡스(Andy Capp's)]에서 테스트 되었으며, 설치 직후 시험기를 플레이한 고객은 두 사람뿐이었으나 다음날부터 아침손님이 술집의 개점을 기다리는 행렬을 만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윽고 술집 주인으로부터 시험기고장 났다는 연락을 받은 알콘이 테스트기를 열자, 동전 지갑으로 걸어 둔 우유 팩25센트 주화로 넘쳐흘러서 동전 투입구가득 차 있었다. 알콘은 이 대성공을 시카고에 있던 부슈널에 전했고, 부슈널은 퐁을 자신들이 직접 생산하기로 했다. 처음 판매하러 갔던 회사에는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흥미를 갖게 만들었기 때문에 부슈널은 다음 상담에서 [퐁을 몰수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해 해당 제품을 단념시켰다. 

생산 수는 아타리가 애초 영세 기업이었기 때문에 정식 기록이 남지 않았지만, 약 1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고 예상한다. 퐁은 1974년까지 생산되었고, 미국에서는 1970년대, 유럽에서는 1980년대 초까지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 게임기 시장형성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퐁은 당시에 워낙 인기가 좋아서 발매 직후 생산량을 더 늘리거나 관련 인력부족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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