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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vs아르헨티나 5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完)

- 6월 12일 아침, 아르헨티나군 수뇌부는 롱던 산에서부터 해리엇 산에 걸쳐서 약 4,500명의 영국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 정보는 말비나스 주둔 부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6월 13일에는, 말비나스 제도 총사령관 메넨데스 소장과 갈티에리 대통령이 교신을 했다. 여기서 메넨데스는 '영국군이 보인 행태로 보아, 오늘 밤 그들은 최종적 공격을 가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오늘부터 내일까지 스탠리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여있다'라고 경고했지만 갈티에리 대통령은 그저 스탠리를 사수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6월 12일 아르헨티나군은 스탠리에 설치된 트레일러를 개조한 미사일 발사대로 엑조세 미사일을 발사, 영국 구축함 글러모건에 적중시켜 반파상태로 만들었다.6월 13일부터 영국군은 스탠리의 아르헨티나군..

오늘의 역사 2019.04.19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9부)

[스탠리 외곽에 대한 공격]스탠리 서쪽에는, 북쪽으로부터 롱던 산(Longdon), 해리엇 산(Harriet), 투 시스터스산(Two Sisters)라는 3개의 산이 연이어 있으며 아르헨티나군의 외곽 방어선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은 우선 이곳의 공략을 지향하게 되었다.아르헨티나군은 6월 8일에 있던 항공 공격의 전과를 과대평가했으며 500~900명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멋대로 평가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본국은 고양되었고, 말비나스 제도 총사령관인 메넨데스(Mario Benjamin Menéndez, 1930~2015) 소장을 상대로 피츠로이의 공격을 요구했으나, 메넨데스 소장은 '부대의 기동력 결여와 항공 및 해상권 상실, 그리고 영국군 공격의 선행이 예측되어서 선공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지었고, 본국..

오늘의 역사 2019.04.18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8부)

- 5월 21일 영국군이 샌 칼로스에 상륙한 이후, 아르헨티나군의 저항은 항공 공격으로 한정되었다. 한편, 영국군은 상륙 이후의 작전에 대해서는 사전 계획이 미비했으나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임무부대 사령부에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제3코만도여단장 톰프슨 준장은 25일에 켄트 산에서 챌린저 산에 걸친 지역에 대규모 헬기 수송 작전을 시행하고, 스탠리 공략의 굳히기를 계획했지만 하필 이날,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컨테이너선 애틀랜틱 컨베이어의 상실로 다수의 헬기가 사라지는 바람에 이 작전은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다.스탠리에 진출하기 전에 우선 구스 그린과 다윈에 주둔하는 아르헨티나군을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톰프슨 준장은 원래 구스 그린에 대한(점령을 전제로 하지 않는) 습격습격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으..

오늘의 역사 2019.04.17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7부)

- 4월 30일부터 SAS· SBS의 총 10팀이 포클랜드 제도 곳곳에 잠입하며 상륙 후보 지점의 지리적 정보 수집에 나섰다. 또, 제3 코만도 여단 참모의 '이웬 사우스비 테일여(Ewen Southby-Tailyour)' 소령은 이전에 포클랜드 해병대 선발대의 대장이었던 시절에, 여가를 이용하여 해안선을 빠짐없이 요트로 조사해서 리포트를 작성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5월 10일, 이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상륙 지점은 샌 칼로스(San Carlos)로 결정되었다. 이날 제317 임무 부대 지휘관 '존 필드 하우스(John Fieldhouse, Baron Fieldhouse - 1928~1992)' 대장은 상륙 부대인 제317.1 임무군 지휘관이자, 제3 코만도 여단장인' 톰프슨 준장(Julian Thom..

오늘의 역사 2019.04.15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5부)

- 아르헨티나 해군 최고사령관 아나야 대장은 사우스조지아 섬에 대해서 장차 과학관측기지를 세워, 아르헨티나의 실효적 지배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영국 함정이 섬으로 근접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처음에는 섬을 포기하고 부하에게 저항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후 생각을 바꾸어 잠수함 산타페 증원으로 약 40명의 해병대원을 파견키로 했다. 해당함은 4월 21일, 마르델플라타 해군 기지에서 출발해서 24일 심야에 컴벌랜드 포구에 도착했고, 25일 03시 무렵부터 약 2시간에 걸쳐서 해병대원과 보급 물자를 그리토비켄에 상륙시켰다. 그러나 귀로 도중에 컴벌랜드만 내의 영국 제317.9 임무군 헬기의 공격을 받고 행동 불능이 되어서, 그리트비켄으로 돌아가 킹 에드워드 곶에 좌초한다...

오늘의 역사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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