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23일> 1994년 3월 23일 - 아에로플로트 593 편 추락 사고

!@#^& 2019. 3. 24. 02:06

<사고 1년 전(93년 3월)해당 여객기의 모습>


아에로플로트 항공 593편 추락 사고1994년 3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홍콩 카이탁 공항으로 향하던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에어 버스 A310-304시베리아추락항공 사고이다. 현지 시각으로 3월 23일 1시쯤, 조난 신호긴급 사태를 보고하는 어떠한 통신도 없이 시베리아 알타이 지방마이자스강 상류 지역에 해당하는 케메로보주 메즈두레첸스크에서 30㎞ 떨어진 침엽수 지대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12명, 승객 63명75명 전원사망했는데, 러시아 국적의 탑승객이 52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중국인 및 당시 영국령 홍콩인이 각각 6명이었으며 나머지는 대만, 영국, 인도, 미국인 탑승객이었다. 


<추락한 593편의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블랙박스 기록에 의하면 순항 고도 10,000m에서 추락하면서 회복 불능인 스핀 상태에 빠진 후, 급격히 하강하다가 해발 400m산지격돌했다. 사고후 수거한 콕핏 보이스레코더(CVR: Cockpit Voice Recorder),일명 블랙박스의 기록에서 사고 직전, 기장야로슬라프 쿠드린스키가 자신의 아들기장석에 앉히고 조종간을 조작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장은 조종간 입력이 자동조종장치에 의해 보정된다고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장난삼아 조종간을 잡게 해주었으나, 아들인 엘다르가 그만 을 주면서 조종간건드리는 바람에 비행기는 조종사가 수동조종을 하는 것으로 인식, 비행기의 회전을 담당하는 보조익자동조종 운행중단되었다. 


<해당 사고기의 시뮬레이션 영상>


결국, 비행기는 급격한 뱅크로 인하여 실속상태에 빠졌고 나선 형태로 빙빙 비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높은 중력가속도 때문에 기장이 조종석으로 이동하지 못했고 아들 엘다르와 부기장이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를 살려야 했지만, 상황은 당연히 나아지지 않았다. 그뒤 잠깐 안정된 사이에 기장이 아들이 잡고 있던 조종간을 이어받고, 비행기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동원했지만 결국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았다. 

사고 후 자동조종장치에 대한 지식 부족고도 회복을 위한 조종간 조작 지연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체가 예상치 못한 상태가 됐을 때의 회복조작 훈련뿐만 아니라, 조종사가 규정대로 운항했는지 등의 진상파악이 진행되었다.


<비행기 블랙박스의 모습>


이 사고 최대의 원인으로서 페일 세이프 시스템(Fail Safe)에 대한 정보가 항공 회사 측에 철저하게 주지시키지 못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세이프 시스템이란 기계나 시스템이 오작동이나 고장을 일으킬 경우, 해당 기계를 안전한 상황이 되도록 설계된 기계나 시스템을 뜻한다.


<페일 세이프 시스템을 통해 기계나 시스템이 더이상 악화되지 않고 사용자를 안전하게끔 해준다>


사고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일단 조종사 승무원만 출입하고 조종해야 할 조종석에 아이들을 들여보낸 것이 잘못이었고 그 조종간을 잡게 한 점이 사고의 시작이었다. 그 뒤, 아들에 의해 비행기의 자동조종일부가 해제되었을 때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고, 남아 있는 다른 자동조종 기능으로 기체의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기수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해 가속도가 붙었다. 

가속화로 인한 강한 G의 발생으로 기장석에 앉아있던 아들과 교체가 불가능했었고, 아들이 조종간을 쥐고 있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기체의 기울기는 더욱 커졌다. 이 와중에 자동조종장치모두 해제되었고 비행기는 본격적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실속에 수반해 속도를 유지하기 위한 자동 안전 시스템작동해, 기기의 급강하가 시작되었다.


<당시 사고기가 추락한 현장의 모습>


부조종사가 기수를 올려 급강하로 인한 추락은 겨우 면했지만, 너무 조종간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이번에는 기수가 너무 올라가 다시 실속이 일어난다. 바로 이때 조종간에서 그냥 손을 놓았으면 실속방지장치가 작동해 기체는 자동으로 안정되찾을 것이라고, 나중에 시뮬레이터로 인한 검증에서 판명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 러시아에는 에어버스가 막 도입한 시점이어서 이런 세이프 시스템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후, 아까도 언급했듯이 기장과 아들이 자리를 바꾸어 필사적으로 조종했지만 결국 고도가 부족해 산악지로 충돌, 전원 사망하게 되었다. 당시 기체에 가해진 중력 가속도최대 4.8G였다. 


<당시 비행기 기장이었던 야로슬라프 쿠드린스키와 그의 자녀 묘지>


90년대 중반까지 같은 원인에 의한 에어 버스기 추락 사고가 각국에서 속출하면서 에어버스사는 일시적으로 실적 부진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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