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9월 16일> 2003년 9월 16일 - 일본, <나고야 농성 방화 사건>

!@#^& 2019. 9. 15. 19:39


- 나고야 농성 방화 사건(名古屋立てこもり放火事件)2003년 9월 16일에 아이치현 나고야시 히가시구 히가시오조네초 혼도오리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3명사망하였고 41명부상했다.


<사건이 발생한 나고야 오조네 제일생명 빌딩의 최근 모습(2018년)>


2003년 9월 16일 오전 10시경, 운송회사 [게이큐빈(軽急便)]임금체납항의하고자 해당 회사남성(당시 52세)이 오조네 역 근처, 제일생명 빌딩 4층에 있는 게이큐빈 나고야 지점 나고야 영업 사무소 센터[각주:1]부엌칼폴리에틸렌 용기를 가지고 침입한다. 

남자는 남성 사원 한 명과 옥신각신하다가 경상을 입힌 뒤, 여직원 22명다친 남자 사원 한 명석방하였고 휘발유를 뿌린뒤 지점장(당시 41세) 이하 남자 직원 8명 인질로 잡고 지점 안에서 머무른다.

곧 남자는 지점장 이외의 사원 7명석방한 뒤, 오후 1시까지 남은 폴리에틸렌 용기를 쓰러뜨리곤 내용물을 뿌렸는데, 그 과정에서 지점장을 시켜 게이큐빈 본사(나고야시 니시키)전화를 걸고, [7월부터 9월분까지 미납현금 25만 엔을 지정한 은행 계좌입금]하라고 통화를 시켰으며 정오가 지난 0시 10분경 요구 금액대로 현금이 입금되었다.


<해당, 점거된 사무실의 폭발순간 장면>


사건 신고접수아이치현 경찰은 가해자의 설득에 나섰지만, 경찰청은 사건 발생의 첫 신고가 들어온 직후부터 지원 부대 파견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오사카부 경찰 형사부 수사1과 특수범죄 수사원(MAAT)에게 출동준비를 지시하였으며, 아이치현 경찰 특수부대(SAT)에는 대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현장실내에는 뿌려진 휘발유가 가득했기 때문에 총기섬광탄을 사용할 수 없었다.

경찰은 재차 가해자를 설득했지만, 남성은 인질 7명을 석방한 직후인 오후 1시 10분경 라이터휘발유을 붙여서 자폭했다. 이 결과, 가해자 남성인질이었던 지점장사망하였고 가해자를 체포하기 위해서 현장 계단 부근에서 대기하던 아이치현 경찰 기동 수사대 대원(당시 31세, 경장)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순직한다. 또, 폭발 당시 건물 3층에 있던 경찰관 3명열 폭풍 등으로 중상을 입었고 경찰관, 소방대원, 보도진, 통행인을 포함한 38명이 폭발하면서 깨진 유리 조각 등으로 가볍게 부상했다.

가해자와 지점장의 사인은 모두 불에 타 죽은 소사(燒死)두 사람출입구로 들어가서 사무소 남동 근처 뒤편에 쓰러져있었다. 아이치현 경찰은 16일 오후 10시 45분부터 가해자의 자택을 가택 수색하였고, 다음날 17일에는 아이치현 동부경찰서특별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현장 검증을 시행하였다.

이 사건을 일본의 민영 TV 각 회사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생중계했다. 이 때문에 하단에 보이는 것처럼 폭발 순간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 언론은 [이 회사를 포함한 택배 위탁 업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사업주를 모집해서 소형 운반 트럭판매하고 운송업위탁한다지만 실체개인 사업주 취급하면서 트럭을 산 뒤, [고객 개척은 스스로 노력]하라며 뿌리치기 때문에 악랄한 방식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주유소폴리 에틸렌 용기 등으로 휘발유 판매 금지철저해졌으며, 법 규제도 강화되었다. 또 일본 경찰은 해당 사건을 계기로 농성 사건 전문 부대A팀을 창설한다.

게이큐빈 측나고야 지점전소했기 때문에, 그해 12월 본사, 영업소 사무실을 이전하게 되었다.

아이치현 경찰 수사1과 동부경찰서는 2004년 1월 15일, 살인 및 건물방화, 강도, 인질 강요, 그리고 무기 단속법 위반 등 혐의로 사망피의자 남성나고야 지방 검찰청피의자 사망으로 불구속 입건했다.




  1. 당시 여직원 22명, 남성 사원 8명이 근무 중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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