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9월 29일> 1957년 9월 29일 - 체르노빌 이전, 최악의 원자력 사고 <키시팀 사고>

!@#^& 2019. 9. 28. 18:32

<방사능에 오염된 데차 강 부근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


- 키시팀 사고(러시아어: Кыштымская авария)는 1957년 9월 29일, 소련 우랄 지방 첼랴빈스크주 마야크 재처리 공장(Произво́дственное объедине́ние «Мая́к»)에서 발생한 원자력 사고다. 


<1948년에 촬영된 마야크 재처리 공장의 모습>


오조르스크(Озёрск)시에 있는 마야크 재처리 공장은 원자 폭탄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 5기재처리 시설을 갖춘 플랜트이며 1948년부터 건설, 운용되어왔다. 플랜트 주위에는 기술자거주구역으로서 암호명 랴빈스크 65라는 비밀 도시가 건설됐다. 

사고는 시설중심으로 발생하였는데,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인 6등급(대사고)으로 간주한다. 대체로 인근에 있던 마을 키시팀(Кыштым)의 이름을 따서 키시팀 사고로 불리고 있다.


<키슈템 사고로 오염된 지역(‬동우랄‭)>


1950년대 당시 소련에서는 일반적으로 방사능의 위험성인식되지 않았거나 혹은 영향 낮다고 생각되면서, 방사성 폐기물취급은 대충 액체 폐기물을 부근의 데차 강(река Теча)호수(후에 '카라차이'로 불리는)방류했다. 이윽고, 인근 주민에게 신체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자 액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농축해서 탱크저장하는 방법으로 수정했다.

방사성 폐기물 탱크는 끊임없이 생기는 붕괴열에 의한 고온을 내기 때문에 냉각 장치를 가동하면서 안전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지만, 1957년 9월 29일 중요한 냉각 장치가 고장 나면서 탱크 내 온도급상승하였고 내부 조정 기기에서 생긴 불꽃으로 용적 300㎥(30만 리터)의 탱크에 들어간 질산염 결정재처리 찌꺼기폭발했다.

이 결과90Sr(29년)‬,137Cs‭(‬30년),‬ 239Pu‭(‬24,110년‭)‬반감기가 긴 동위원소를 포함한 대량의 방사성 물질대기 중방출된다. 핵폭발이 아닌 화학적인 폭발이었지만, 그 규모는 TNT 화약 70톤에 달했으며 약 1km 상공까지 날아오른 방사성 폐기물은 남서풍에 타고 동북쪽으로 약 9km, 길이 105km띠 모양으로 해당 지역을 오염, 약 1만 명대피했다.


 

<일명 '청산인' 기념비. 키시팀 사고 당시, 체르노빌 때처럼 순수하게 사람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해야만 했다>


피난민들은 1주일0.025-0.5㏜, 모두 평균 0.52㏜에서 최고 0.72㏜피폭했다. 특히 사고 현장에 가까웠던 1,054명골수0.57㏜를 피폭당했다.

마야크사와 관청에 의하면, 사고 후전체적으로 400‭PBq‭‬방사능2만 제곱킬로미터의 범위에 걸쳐서 뿌려졌다.‬ 27만 명높은 수치방사능노출되었고 관계기관공표한 방사능 오염을 바탕으로 비교 계산하면 이 사고에 의해서 새롭게 100명에 걸렸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기했듯이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에서는 6등급인 대사고로 분류된다.다. 이것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7등급(심각한 사고)에 이어서 역사상 3번째로 중대한 원자력 사고에 해당한다. 

독일 뮌헨의 헬름홀츠 협회[각주:1]에 따르면 키시팀 사고는 지금까지 과소 평가되었다고 한다.


<키시팀 사고 당시의 모습>


사고는 소련의 군사 시설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극비사항이었고, 1958년에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정도의 정보미국에도 전해졌다. 그 뒤 윤곽이 드러난 것은 1976년 11월, 소련에서 망명한 과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Жоре́с Алекса́ндрович Медве́дев, 1925~2018)영국과학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 게재 논문에 의해서 세상처음 알려졌다.

메드베데프는 그 후 [우랄의 핵사고]출판했다. 이 고발을 소련은 정면으로 부인했다. 원자력추진하는 입장의 사람들로부터는 이러한 사고는 있을 수 없고, 단순한 꾸며낸 이야기라고 일축하면서 소련의 음모론이라고 취급했다. 이것은 애초 유포된 소문으로는 핵폭발에 이르는 임계사고가 일어났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89년 9월 20일, 글라스노스트(glasnost, 정보 공개)의 일환으로 일본인 기자단자료공개될 때까지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또, 지역 주민에게 방사능 오염이 정식으로 알려진 것은 러시아 정부 출범 이후인 1992년으로 별다른 대책 없이 방사선 피해만 키웠다.

러시아 각료 회의 간부회에 따르면 공장 주변방출된 방사성 폐기물의 방사선량3700만 테라 베크렐 이상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20배에 달했으며 피해자약 4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 Helmholtz Association of German Research Centres: 독일 국가과학기술 체제 내 대표적 정부출연 연구기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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