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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자이 4

[이제 도망가지 않겠다]...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 사형수 장남의 기구한 인생

[11월30일(土), Abema TIMES]- 1998년 7월 25일 발생한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하야시 마스미(林 眞須美, 1961~) 사형수의 장남 하야시 씨는 당시 10살이었다. 하야시 씨는 부모가 체포된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그것(카레 사건) 이전에 보험금 사기를 하다가 체포되었다]라고 말한 하야시 씨. 하야시 마스미 사형수는 1998년 12월에 카레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다.체포 전부터 의혹의 눈길을 받았던 하야시 씨의 자택에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언론이 몰려오고 있었다. 언론을 향해 호스로 물을 뿌리던 마스미 사형수의 모습이 유명하지만, 하야시 씨는 ['호스로 물을 뿌리는 것만이 엄마의 본모습이 아니었다'라고 전해주고 싶었다]라며 목..

카테고리 없음 2019.12.01

오늘의 역사 : <11월 5일> 1953년 11월 5일 - 일본, <도쿠시마 라디오 상점 살인사건>

- 도쿠시마 라디오 상점 살인사건(徳島ラジオ商殺し事件)은 1953년, 도쿠시마 현 도쿠시마 시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 사건이다.범인으로 지목된 후지 시게코(冨士 茂子, 1910~1979)에 대해 형이 확정되었으나, 사후에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된 억울하게 누명을 씌인 사건이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지원하였으며 일본 최초의 사후 재심이 행해져 무죄 판례에 의해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1953년 11월 5일 새벽, 당시 50세의 라디오 상점인 [사에구사 전기점(三枝電気店)] 주인 남자가 가게 안에서 죽고 그의 내연녀였던 당시 43세의 후지 시게코도 다친다. 애초 도쿠시마시 경찰은 시내의 야쿠자를 비롯한 폭력단 관계자들을 강도 살인 용의로 체포, 한 명은 범행을 자백하였으나 증거가 없어서 불기소 처분했다.사건으로 ..

오늘의 역사 2019.11.04

일본 - 억울한 누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자위대 부사관의 사연

[마이뉴스재팬][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지쳤습니다]- 가슴 아픈 말을 남기고 2007년 5월, 일본 육상 자위대의 3조(이하 하사) 우에다 다이스케(당시 25세)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계기는 대략 한 달 전에 부대 내에서 일어난 20만 엔짜리 휴대용 금고의 분실 사건. 물증이 하나도 없는 채, 우에다 하사는 [네가 범인이다]라고 상사로부터 해명의 기회도 없이 추궁받고 헌병대에 의해서 하루 10시간을 초과하는 가혹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끝은 비극이었다.[가족을 생각하는 착한 아이였다, 너무나도 착했다. 도와 달라고 응석 부리고 싶었다] 사건으로부터 기나긴 침묵을 깨고, 유족은 고뇌에 찬 비통한 심정을 기자에게 말했다.[경무관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2007..

카테고리 없음 2019.09.22

<7월 25일> 1998년 7월 25일 -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

-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和歌山毒物カレー事件)은 1998년 7월 25일 저녁, 와카야마 현 와카야마 시 소노베에서 발생한 독극물 혼입 대량 살상 사건이다. 지구(地区)에서 열린 축제에서 제공된 카레에 독극물이 혼입되면서 카레를 먹었던 67명이 중독 증상을 일으켰고, 그중 4명이 사망했다. 피의자로 체포되었고 피고인으로 기소된 당시 무직이었던 하야시 마스미(林 眞須美, 1961~)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2009년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1998년 7월 25일, 소노베 지구에서 열린 축제에서 카레를 먹었던 67명이 복통과 구토 등을 호소하면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들 중에서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과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소노베 자치회 회장과 부회장, 총 4명이 사망했다. 이..

카테고리 없음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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