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12월 29일> 1996년 12월 29일 - <과테말라 내전 종결>

!@#^& 2019. 12. 28. 20:09


- 과테말라 내전(Guerra civil de Guatemala)은 과테말라에서 군내 친미파와 반미파 및 좌파 세력들 사이에서 1960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내전이다.


[내전까지]

- 군 출신인 Jacobo Árbenz Guzmán(1913~1971)이 1951년 좌익 국민당(혁명 행동당) 출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농지개혁 등의 [사회주의적]인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 일환으로 과테말라에서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던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nited Fruit Company) 농원의 국유화를 실시했다.

Guzmán 정권에 의한 사회주의적이고,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 추진에 대해 과테말라의 공산화를 염려했고 진작부터 Guzmán을 [용공(容共)]으로 간주했던 미국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avid "Ike" Eisenhower, 1890~1969) 정권은 Guzmán 정권의 전복을 획책했다. 

군과 정부 내 반 Guzmán파를 결속시키는 동시에 중앙정보국(CIA)이 추진한 [PBSUCCESS 작전]에 의해, 이웃 나라인 온두라스로부터 반 Guzmán파의 Carlos Castillo Armas(1914~1957)가 이끄는 반군이 수도를 침공하면서 최종적으로 군 주류의 지지를 잃은 Guzmán은 1953년 6월에 망명했다.

그 후,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Armas 정권은 국내에서의 기초를 다졌고 선거에는 Armas 반공연맹밖에 입후보할 수 없게 되는 등 독재체제를 굳혔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여 군부내 Guzmán파와 Armas파의 대립이 생겼고, Guzmán파의 청년 장교들은 군을 이탈해 반군으로서 게릴라 활동을 펼치게 된다.

1957년 Armas가 암살되자 Miguel Ydígoras Fuentes(1895~1982)가 이를 대체했으나 군부내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경위]

- 1959년 1월 쿠바 혁명으로 쿠바가 사회주의화 되면서 Guzmán파에 대한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자금적·물질적 지원이 활발해졌다. 1960년 11월, Fuentes 대통령에 반(反)하여 Guzmán파를 중심으로 한, 젊은 장교를 중심으로 하는 일당이 반란을 일으키다 거의 진압되었으나 그 지도자들은 달아나면서 산 속에 잠복하였고, 1962년에는 무장 반란군을 결성하여 쿠바를 경유한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게릴라전에 의한 철저 항전을 선언한다.

이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군사정권측은 쿠데타를 반복하면서 죽음의 부대에 의한 좌파 정당이나 게릴라에 협력적이라고 간주한 과테말라 원주민의 학살 등으로 대응하였고, 그 내부에는 선주민에게 자위군(PAC)을 만들게 하여 학살을 행하게 했다.

그 후 국제적 비난이 높아지자 1986년 기독교 민주당 출신인 Vinicio Cerezo(1942~)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1987년 국민화해위원회가 출범, 과테말라의 인권 운동가인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Menchú Tum, 1959~)가 원주민 학살에 관한 청취와 진상규명을 노력한 공로로 199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고, 지금까지 두 세력의 지원을 이어가던 미국, 소련 양측의 지원도 끊기자 1996년 12월 29일 과테말라 정부와 과테말라 민족 혁명 연합(Guatemalan National Revolutionary Unity, URNG)사이에서 평화 합의가 성립하면서 내전은 종결되었다.

상당히 간략하게 설명해서 그렇지, 내전 기간 최소 12만 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재판]

- 평화협정 시 화해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내전 때 정치적 범죄에 대해 면책을 인정하지만, 약 20만 명이라고 하는 사망·실종자를 낸 학살과 고문, 실종에 관한 죄에는 면책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애초 역대 정치 지도자와 군 간부들은 이들의 범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소추를 면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자 관계자들이 국내 법원에서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

2009년 9월 전직 대령이 농민 6명을 실종시킨 내용의 죄로 금고 150형 년을 받았고, 2013년 5월 지휘관 중 최악의 폭정으로 1982년부터 83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José Efraín Ríos Montt(1926~2018)에 대해 1,800명 가까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집단 살해의 죄와 인도(人道)에 반한 죄로 금고 8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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