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1953~2007)는 파키스탄의 정치인으로, 이슬람 국가 통틀어 첫 여성 총리였으며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물]
- 베나지르 부토는 광복 후 이슬람 국가에서의 첫 여성 총리이다. 아버지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 1928~1979) 前 총리가 설립한 파키스탄 인민당(PPP) 총재로 1988년과 1993년 2번, 총리에 선출되었으나 모두 비리 등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그러다 2007년 12월 27일 정계 복귀를 노린 국회의원 선거 운동 도중 암살당한다.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Asif Ali Zardari, 1955~) 現 파키스탄 대통령 사이에 1남 2녀(장남 장녀 차녀)를 두었으며, 현재 아시프 대통령과 장남인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Bilawal Bhutto Zardari, 1988~)가 후계인 인민당 공동 총재로 재임 중이다.
[경력]
1. 성장
- 베나지르는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딸로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태어났다. 친할아버지인 샤 나와즈 부토(Shah Nawaz Bhutto, 1888~1957)는 신드인 파키스탄 독립운동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1
1969년 4월 베나지르는 하버드 대학교의 래드클리프 칼리지 및 옥스퍼드 대학 레이디 마가렛교를 재학했다. 그러다 1971년 인도가 동 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에 군대를 파견, 아버지 줄피카르가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해 외무부 장관으로 유엔으로 향하자 그녀는 일시적으로 학업을 중단하였고 뉴욕에서 아버지를 보좌하며 지냈다.
이렇게 학창 생활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활동을 도운 것은 나중에 그녀의 정치활동 참여에 큰 경험이 되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녀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활발히 참여했다.
1973년에 그녀는 정치학 학위를 받고 칼리지를 졸업했다. 칼리지 재학 중에 그녀는 파이베타카파 회원으로 선출되었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같은 해 가을 옥스퍼드에 진학해 PPE(정치학·철학·경제학)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
옥스퍼드 재학 중에 그녀는 옥스퍼드 유니언 의장에 취임한 첫 아시아 여성이 되었으며, 이것은 그녀와 경쟁했던 후보가 부정한 조사를 한 것이 원인이 되어 재선거가 시행된 결과였다.
이처럼, 그녀는 대학에서 부친의 총리 재임 시 중반, 국내 및 해외 문제에 관련된 정치 운동과 논쟁으로 활발한 나날을 보냈다.
2. 정계 진출
- 옥스퍼드 졸업 후에 파키스탄으로 귀국했지만, 아버지의 감금과 처형 과정에서 그녀는 가택연금을 당했다. 1984년이 되서야 영국으로 출국이 허용됐으며, 망명상태로 아버지의 정당인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당수로 취임했다. 그러나, 무함마드 지아울하크(Muhammad Zia-ul-Haq, 1924~1988) 장군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그녀가 파키스탄에 있어서 정치적인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1988년 11월 16일 십수 년 만에 시행된 공개 선거에서 베나지르의 PPP는 파키스탄 의회 단독 여당 자리를 꿰찼다. 그녀는 12월 2일 선서하면서 현대 이슬람 국가에서 최연소(당시 35세)이자 첫 여성 정부 대표로, 파키스탄 제12대 총리가 됐다.
그 영향으로 88년 베나지르는 타임스의 주간 잡지인 피플(People)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으로도 선출됐다.
3. 비리로 의한 해임
- 그러나 총리 선출 불과 20개월 후인 1990년 8월 6일, 비리가 고발됐고 군의 지지를 받아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한 굴람 이스하크 칸(Ghulam Ishaq Khan, 1915~2006)에 의해 총리 자리에 해임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PPP는 패배했다. 그 후 3년간 베나지르는 나와즈 샤리프(Mian Muhammad Nawaz Sharif, 1949~) 정권 아래에서 야당의 리더를 지냈다.
그 후,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승리하고 1993년 10월 19일 베나지르는 총리로 복귀한다. 그러나 1996년 11월 5일 다시 비리를 고발당하는 등 다양한 스캔들이 원인으로, 파루프 레하리(Farooq Leghari, 1940~2010) 대통령에 의해서 또다시 총리 자리에서 해임되었고 그녀의 정권은 와해했다.
이들 스캔들 중 몇 가지는 그녀의 총리 재임 중에 스위스 기업과 도모한 편의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것들은 현재까지 미해결인 채로 남아있다.
그녀의 남편은 스캔들 연루설에 의해 체포되어 2004년 11월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2006년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은 파키스탄 정부의 요청에 응하여 베나지르와 남편 두 사람의 체포를 요구하는 국제 수배증을 발급한다.
4. 2002년 지방 선거
- 1999년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1943~) 대통령의 무혈 쿠데타 이후, 2002년 민정 이양을 위한 통일 선거를 치렀고 베나지르가 이끄는 파키스탄 인민당(PPP)은 최대의 표를 얻으며 국민 의회에서 62석을 얻었다. 정부는 이 사태를 두고 즉각적인 허물기 공작을 벌여 의회에서 인민당의 세력을 약화했으나, 그들에 대한 여론의 지지까지 꺾진 못했다.
정부는 다음으로 법률과 국가권력에 의해 베나지르와 나와즈 샤리프의 구속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통일행동평의회(MMA)로부터 암묵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그것은 파키스탄 정계에서 베나지르와 샤리프의 세력이 약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무타히다 국민운동(MQM)도 의회로부터의 베나지르 배제와 신드주 정부의 PPP 공작으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5. 암살까지의 상황
- 2002년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인 무샤라프는 총리가 2번 이상 재임하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개정을 파키스탄의 헌법에 적용했다. 이에 따라 베나지르의 재임 가능성은 헌법상으로 소멸하였다. 이 개정은 대통령의 정적인 전직 총리인 베나지르와 샤리프를 겨냥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나지르는 2004년 가을, 두바이에 체류하면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세계를 돌면서 강연하였고 PPP의 지지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2007년 11월 지방선거에서 파키스탄에 귀국, 총리 복귀를 공언했다.
6. 암살
- 베나지르는 정계 복귀를 목표로 2007년 10월에 귀국하면서 카라치의 귀국 유세 중에 자폭 테러와 조우했으나, 그때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뒤 2007년 12월 27일 이슬라마바드 교외의 라왈핀디에서 선거 집회 참가 중 이슬람 원리주의자라고 생각되는 테러리스트의 총격과 자살 폭탄 테러로 암살되면서 향년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자폭 테러로 인해 집회 현장에 있던 지지자나 경관을 포함한 20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나중에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재정 담당인 사이드 알 마스리(Saeed al-Masri, 1955~2010)가 범행에 관여했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지만,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베나지르의 시신은 다음날 가문의 무덤에 묻혔고, 그녀가 총재를 맡고 있던 파키스탄 인민당은 그녀의 장남으로 당시 옥스퍼드 재학 중이던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를 새 총재로,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를 총재 대행으로 선출했다.
[평가]
- 서구에서는 암살당한 것을 포함해 군사정권이나 이슬람 원리주의와 싸운 민주화의 여성 투사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에 관해 많은 전문가는 다른 평가를 제기하고 있다.
평론가 오타 노부마사(太田述正, 1949~)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부토는 봉건적이고 부패한 비리 정치가]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그중에 인용되고 있는 영국 옵저버 신문은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달림풀의 기사를 살펴보면 오타와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영어는 막힘 없이 이야기하다가도 모국어인 우르두어와 신드어를 정확히 말할 수 없었으며 [미국과 유럽을 대상으로 활동한 정치가]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파키스탄의 여성 운동가이자 2015년 기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1997~)는 이슬람 세계에서의 첫 여성 총리인 베나지르에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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