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12월 30일> 2000년 12월 30일 - 일본,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 사건>

!@#^& 2019. 12. 29. 23:36


-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 사건(世田谷一家殺害事件, 세타가야 일가 살해 사건)은 2000년, 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통칭으로 일본 경시청에 의한 정식 명칭은 [가미소시가야 3초메 일가 4인 강도 살인 사건(上祖師谷三丁目一家4人強盗殺人事件)]이다.

일가족 4명이 살해되었으나 범인의 지정, 체포에는 이르지 못한 미제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

- 2000년 12월 30일 오후 11시경부터 다음날인 31일 새벽 사이에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 3초메의 회사원 집에서 아버지(당시 44세), 어머니(당시 41세), 아이(당시 8세), 장남(당시 6세)까지 총 4명이 살해됐다. 옆집에 사는 아내의 어머니가 31일 오전 10시 40분 지나서 싸늘한 주검이 된 일가족을 발견한다.

이 사건은 20세기 마지막 날[각주:1]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범인의 지문이나 혈흔 등 개인을 특정 가능했던 것, 그 외 수많은 유류품을 남기고 있는 점, 아이들에게도 가해진 잔인한 범행, 살해 후에 장시간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지적된 점, 컴퓨터를 만지고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하는 등의 범인의 이상한 행동 등 이러한 많은 일이 드러나면서도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것에서도 주목받은 미해결 사건이다.

또, 연말에 발생한 살인 사건이라 한 해를 되돌아보는 연말이 가까워지면 경시청에 의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지고 매스컴에서 화제로 삼는 일이 많은 사건이다.


[범인의 단서]


1. 범인의 특징

- 범인은 범행 시 손을 다쳤으며, 그때 현장에 남겨진 혈액으로 혈액형은 A형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각주:2]. 또한, 마찬가지로 혈액에서 범인의 성별이 남성이라는 것도 파악되었다. 혈액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이나 감기약, 각성제 등의 약물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또한 담배도 피우지 않는 인물이다.

- 피해자 집의 냉장고에 있던 맥주에는 손대지 않았으나, 냉장고의 보리차는 마셨다.

- 피해자의 흉터 등으로 인해 범인은 오른손잡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 범인의 지문은 와상문이다. 지문은 피해자의 집에서 수십 개가 발견되었으나 과거 수천 명 범죄자의 지문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아, 해당 사건이 범인에게는 첫 범죄일 가능성도 있다.

- 복장 등에서 범인은 키 170cm 안팎의 가능성이 있다. 또 힙백 벨트 길이로 보아 허리 둘레는 70~75cm의 마른 체형으로 보인다.

- 경찰청이 내놓은 범인에 대한 정보 중, 1965~85년생[각주:3] 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범인이 2층 욕실의 창문으로부터 침입할 때, 공원의 펜스에서 2층 창문까지 오른 점으로 보아, 신체적 이유에 따른 것이다. 

한편, 2018년 5월에는 현장에 남아 있던 유류품 중 범인이 장기간 사용했던 흔적이 있는 힙백의 판매 기간(1995년 9월~1999년 1월)·내용물[각주:4]·벨트의 길이[각주:5]나 목도리 사이즈[각주:6]등으로, 경시청이 범인을 [사건 당시 기준으로 15세에서 20대의 마른 남성]으로 예측한 것이 드러난다.

- 범행 시 행동 등으로 보아 성격은 담대하고 배짱이 두둑하면서 범행 와중에 옷을 접는 등 꼼꼼한 부분도 갖추고 있다.


2. DNA

- 현장에 남아 있던 혈액의 DNA로 뿌리를 더듬어 인류학적 해석에 의하면 부계가 아시아계 민족, 모계에는 유럽계(지중해) 민족이 포함되는 것이 판명되었다[각주:7]. [일본인에게는 드문 형태]라는 전문가의 견해도 있었다[각주:8].

2006년 당시 DNA형 감정에 의해, 모계를 나타내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하플로 그룹은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 유럽계 민족으로 보이는 [앤더슨 H15형[각주:9]], 부계를 나타내는 Y염색체는 일본인보다 그 다른 아시아계 민족에 많은 하플로 그룹 O2a2b1(O-M134)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O2a2b1의 분포 빈도는 일본인(도쿄) 약 33명 중 1명꼴로, 중국인은 약 10명 중 1명, 한국인은 약 5명 중 1명이다. 

또한, 유럽계의 조상들은 역사적으로 멀지 않은 조상의 가능성이 크나 DNA형으로 범인의 관계 등은 판별할 수 없으므로, 범인의 어머니가 유럽계 여성인지는 알 수 없다[각주:10].

특별수사본부에선 범인이 [아시아 계통을 포함한 외국인] 또는 [혼혈 일본인]일 가능성도 열어두며 수사하고 있다. 또,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을 통해 일본 국외 수사 기관에 수사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각주:11]

한편, 인종 등에 관한 프로파일링이 수사에 적용되는 것은 전례가 없었으며 선조들이 혼혈이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으므로, 범인이 순수한 일본인일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고 일본 국내에서도 폭넓게 수사하는 방침[각주:12]을 세우고 있다.



[범인의 행동]

1. 피해자 집 구조

-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서재가 있다. 자택 1층 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서재는 아버지가 작업실 겸 응접실, 자녀의 학습방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으로 현금 약 6만 엔이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큰 책장과 범인이 인터넷을 열람한 흔적이 있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2층 계단 옆에는 욕조에 널려있던 서류 일부가 원래 놓인 장소로 보인 다용도실이 있다. 그리고 화장실과 세면실, 범인의 입출 경로였던 욕실, 장남이 살해된 아이방과 발코니가 있는 중층, 부엌과 다이닝 룸, 그 안쪽이 범인이 물색한 거실이 있는 2층,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자고 있던 다락방(로프트, 3층)의 4층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다락방에는 접는 사다리를 내림으로써 올라갈 수 있다.

이 밖에 이웃집인 아내의 가족이 사는 집과 외관상으론 서로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튼튼한 벽으로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한편 3종류의 분말 형광 염료가 발견된 차고는 사건 발생 시에 셔터가 닫혔고, 범인이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차고 앞에는 1대분의 소형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사건 직후의 뉴스 영상에서는 일가 소유의 차가 해당 공간에 그대로 놓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3년 12월에는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피해자 집의 모형을 경시청이 공개했다. 이 모형은 사건 수사에도 활용되었다.


2. 침입 경로

- 범인의 침입 경로는 피해자 집 뒤(공원)에 있는 2층 욕실 창문으로 보인다. 혹은, 평범하게 피해자 집을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는 현관이었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욕실 창문은 열려있었고 방충망은 밖으로 떨어져 나가 있었다. 또, 창문 바로 아래의 지면 근처에서 범인의 발자국과 닮은 큰 발자국이 발견되었고 역시나 창문 바로 아래의 공원 담장 부근의 나뭇가지가 부러졌었다[각주:13]. 특별 수사본부가 검증한 결과 젊은이라면 2층 욕실에서 무리 없이 침입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발견 시 현관문은 잠긴 상태였고[각주:14], 현관문 손잡이 등에서 범인의 흔적[각주:15]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현관의 흔적에 대해선 달려온 경찰이나 구급대원들에 의해 짓밟혀 버렸다고 하는 보도[각주:16]도 있으며 또한 범인이 입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유류품 점퍼에 문지른 자국이 없다는 보도나 욕실 창문 등에서 섬유 자국, 스쳐 간 자국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도[각주:17]도 있다.

아울러 피해자 집에 남아 있던 피 묻은 발자국이 계단의 도중까지 올라가는 방향으로만 있는 것으로 보아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침입, 범행을 시도하다가 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에 계단에 오르는 도중 다시 신었을 것] 이라는 경찰 간부의 견해도 있었다[각주:18].


3. 살해 시

- 피해자의 위장에 들어있던 내용물 등으로 보아, 사건 추정 시각은 30일 오후 11시 30분경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2층 아이방의 2단 침대에서 자고 있던 장남을 살해 후에 이변을 눈치채고 2층으로 올라온 아버지를 덮쳐서 살해, 마지막으로 다락방에서 잠자던 어머니와 딸을 덮쳐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해 때인지는 불명이지만, 범인이 아이들의 방 2층 침대 부근과 계단 이동 시에 벽에 등을 지면서 마치 군대 등에서 배운 것 같은 걸음을 취했던 것이 발자국으로부터 예측되었다[각주:19].


4. 피해자의 상황

- 아버지의 시신은 1층 계단 아래, 어머니와 딸은 다락방 아래 2층 층계참 부근에서 발견되고 있다. 게다가 다락방의 이불에서 어머니와 딸의 혈액이 발견되었으며 아버지, 어머니, 큰딸은 전신에 큰 상처를 입었다. 장남은 손으로 목을 졸린 것에 의한 질식사로 보였고, 그때 생긴 압박자국이나 코 출혈 이외에 외상 같은 것이나 범인의 혈흔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아버지의 머리에 칼 파편이 남아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으며 엄마와 딸은 얼굴과 목을 중심으로 위로부터 베었으며 아버지는 다리(허리)와 엉덩이 등도 베었고 여성 피해자는 몇 번이나 찔렸다는 정보도 있었기에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살해되는 방식이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사후에도 집요하게 여러 번 찌른 것으로 드러나 있다.

현장에 딸의 피 묻은 화장지가 떨어진 점으로 보아 범인은 어머니가 다친 딸의 치료를 하는 것을 깨닫고 다시 덮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각주:20]. 큰아들은 2단 침대 하단에 엎드려있었고 이불이 덮여있었다.


5. 살인에 사용된 흉기

- 범인이 가져온 칼은 가장을 살해할 때 몇 mm가 빠졌으나 그 후 다른 피해자들을 덮치면서 완전히 부러져, 피해자 집에 있던 다른 칼도 흉기로 사용되었다. 즉 어머니와 큰딸은 끝이 부러진 칼로 상처를 입은 후에 집에 있던 칼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6. 살해 이후

- 컴퓨터 통신 기록으로 본다면, 범인은 침입 다음 날 아침까지 10시간 이상에 걸쳐 피해자의 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었으나 현재는 한번 인터넷 접속(오전 1시 18분경) 이후, 범인이 새벽에 도주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범인은 피해자 집의 전화선을 뽑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가 통하지 않았고, 수상하게 여긴 아내의 어머니는 피해자 집을 방문하여 초인종을 눌렀으나 반응이 없자 여벌 열쇠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끔찍한 현장을 발견하게 되었다[각주:21].

또한, 연하장만 없던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범인이 가져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으나 훗날 수사원이 탐문 수사 때문에 들고 나갔다가 그대로 반환하지 않은 것으로 공표되었다.


7. 범행 시 상처를 입은 범인

- 범인은 범행 시 오른손을 다쳤다. 현장에서는 범인의 지문이 묻은 반창고, 혈흔이 부착된 수건 등이 2층 부엌에 흩어져있었다. 반창고 한 장은 상처에 댄 뒤 떼어냈고, 거실에 있던 노트 뒤에 붙였다. 또 생리대로 지혈을 시도하는 등 치료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8. 아이스크림이나 차 같은 음식을 먹다


- 4명을 살해한 뒤, 범인은 피해자 자택의 냉장고에서 페트병 보리차, 멜론, 적어도 아이스크림 4개를 꺼내어 먹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각주:22]. 아이스크림 그릇은 2층의 욕조와 거실의 방석 위에서 각각 1개씩 발견되었고, 1층의 컴퓨터 옆에 있던 2개는 식후에 먹은 것으로 보인다. 2층 부엌과 싱크대의 밥솥 위에 있던 아이스크림 그릇은 먹다 말은 상태로 누가 먹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밖에 부엌에는 범인이 차를 마실 때 사용한 컵이 놓여 있었으며, 범인이 피해자 집 물색 중에 껌을 씹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한편, 냉장고에 있던 맥주 냉장고 옆의 맥주나 콜라 10개는 손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범인은 음주하지 않는 인물일 가능성이 있었는데 알코올에 의한 도주의 영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마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범인은 아이스크림을 직접 퍼먹어 아이스크림에 잇자국이 남았다는 보도도 있다.


9. 피해자 집 물색과 욕조에서의 작업

- 2층 거실에서는 소파에 현금카드를 비롯한 각종 카드와 그 부근에는 수첩과 은행 예금 통장, 운전 면허증,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 등이 구분되어 있었다[각주:23]. 또, 옷장과 책상 등 거의 모든 서랍이 아래부터 차례로 열려 물색 된 흔적이 있었으며, 이는 빈집털이 특유의 수법이기도 하다.

2층 욕실에서는 욕조 안에 피해자 가장의 일과 관계되는 서류와 영수증, 아내의 학원 서류, 상기한 지혈을 한 것으로 보이는 생리대, 수건, 아이스크림 컵 등이 산란했다. 이것은 범인들이 집안을 물색해서 불필요한 물건을 욕조에 버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각주:24].

이어서 범인은 1층의 창고부터 욕조에 흩어져 있던 서류가 들어 있었다고 보는 서랍 1단을 2층 화장실 앞까지 가져왔다. 또, 욕조에 산란하고 있던 서류나 광고 전단지 등은 가위나 손으로 거칠게 찢었다[각주:25].


10. 화장실 사용

- 범인이 피해자 집의 화장실을 사용하였고, 물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대변 속에서 강낭콩과 참깨가 검출되었으며 시사통신사에 따르면 화장실에 남아 있던 변 일부에서 참깨 무침이 검출됐다. 이것은 피해자 일가의 위 내용물이나 식사와 다르다.


11. 거실에서 선잠

- 범인이 2층 거실의 소파에서 선잠을 잔 흔적이 남아 있다[각주:26].


12. 컴퓨터 조작

- 범인이 1층 서재에 있는 피해자의 컴퓨터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통신 기록을 분석한 결과 범행 시간 직전으로 보이는 30일 오후 10시 20분부터 50분경까지 언급한 흔적[각주:27]이 있는데, 이것은 피해자가 아직 생존했었고 인터넷을 열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행 시간 이후에도 두 번[각주:28]동안 인터넷에 접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 다 접속 시간은 5분 정도로 짧았으며, 마우스에서 범인의 지문이 검출되었으나 키보드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 PC의 전원 케이블은 발견 시 뽑혀 있었다. 범인이 컴퓨터를 조작했다면 범행 시간인 오후 11시 30분경부터 피해자 아내의 어머니가 집안 4명의 시신을 발견하기 수십 분 전인 오전 10시가 넘도록, 범인은 반나절 가까이 동안 피해자 자택에 머무른 것으로 판명되면서 지금까지 범인의 도주 시간을 추정하는 유력한 증거였다.

그러나 재현 실험을 한 결과, 마우스가 떨어지는 등의 충격으로 인터넷에 자동 접속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과 2번째 인터넷 접속[각주:29]에서는 별다른 이력이 없어서 한번 인터넷 접속[각주:30] 이후, 범인이 새벽에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2014년 12월에 보도되었다.

사이트 접속 기록은 피해자 회사 사이트로부터 대학 연구실 사이트나 과학기술청(현 문부과학성)의 사이트 등 전문성이 강한 사이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또, 범인은 극단 사계[각주:31]의 무대표를 예매하려다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에는 이러한 통신 기록이 범인이 아닌 인터넷 사이트 정보를 자동으로 출력하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조작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실제로 사이트 내의 콘텐츠도 열람된 이력이 인정되었으며 재현 실험 결과 플러그도 인위적으로 뽑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각주:32].


13. 도주

- 범인이 피해자 자택에서 도주한 것은 수사 초기에는 31일 오전 10시부터 오전 10시 56분경 사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의 재검증 결과, 범인이 확실히 컴퓨터를 조작했다고 보는 오전 1시 18분 그 이후인 새벽에 달아난 것으로 보이며 해당 시간을 기준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또, 31일 새벽에는 피해자 집의 전기가 모두 꺼져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나온다. 

다만, 도주 후의 이동 수단이나 경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 수 없다.


14. 근방의 교통 상황

- 피해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철도역으로 오다큐 오다와라 선 세이조가쿠엔마에역, 소시가야오쿠라역, 센가와역, 지토세카라스야마역이 있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고마다이 그랜드 앞(오다큐 버스)이다.

피해자 집 옆에는 센가와 강이 흐르고 있고, 강을 따라 옆길도 이어지고 있다. 샛길을 북상하면 도쿄도도 제118호선과 만나며 도로를 건너 다시 샛길을 걸어가면 센가와역 부근에 도달한다. 또, 옆길을 남하하면 소시가야 공원에 도달하는데 공원 내를 지나 다시 옆길을 걷다 보면 세이조가쿠엔이라는 학교 관련 시설 등의 옆을 지나서 세이조가쿠엔마에역 부근에 도착할 수 있다.


15. 도부닛코역의 목격 정보

- 사건이 발각되고 6시간 이상 지나서 도부닛코역에 오후 5시 26분 도착하는 쾌속 전차를 타고 있던, 오른손에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30세 정도의 남자가 역 사무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키는 약 175cm, 검은 다운 재킷을 입고 있었고 아래는 청바지 차림이었다. 상처의 원인, 남자의 이름 등은 불명이다.


16. 기타

- 범인의 물건이라고 생각되는 현장의 유류품을 구입할 수 있었던 장소로서 게이오선이나 JR 오기쿠보역 주변, 오다큐선 혼아쓰기역 주변 등이 거론되고 있어 이들 지역이 사건 당시 범인의 생활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장의 유류품 및 범인의 소유물]


1. 개요

- 범인의 유류품이 놓인 것은 피해자 집의 2층 부분이다. 현장에 남겨져 있던 의류는 깔끔하게 개어져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 집의 현장 주변에서 트레이너와 칼, 가방, 손수건에 부착되어 있던 향수를 구입한다. 해당 제품들은 오다큐센 혼아쓰기역 부근의 의류품 가게나 철물점에서 판매됐음을 알 수 있었고, 트레이너도 가나가와현 아쓰기시 내 점포에서 3벌이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가미오노역 주변에서는 트레이너와 목도리 이외의 물건을 구매 가능했던 것이 확인되었고, 슈퍼마켓 등에서 구매할 수 있는 대량 생산품이 많아 수사가 난항을 겪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2. 트레이너(래글런 셔츠)

- 튀어나온 피가 대량으로 묻었으나 2층 거실에서 곱게 갠 상태로 발견됐다. 면 제품으로 사이즈는 L(키 175cm에서 185cm용). 2000년 8월 제조, 9월부터 11월까지 판매. 디자인은 몸통 부분이 회색이고 양팔 및 통목부분이 보라색으로, 그해 TBS에서 방송된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에서 주연인 기무라 타쿠야가 입고 있던 타입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래글런 셔츠라고 불렸다.

몇 번이나 세탁한 흔적이 있었고, 색이 바래 크림색으로 되어 있었다.


3. 형광제 등의 부착

- 적색계의 형광제가 가슴 부근에 미량으로 부착되어 있었다. 다만, 힙백이나 피해 자택의 차고에서는 3종류의 염료가 검출됐으나 트레이너는 2종류뿐이다. 또 트레이너의 염료에는 녹은 흔적이 없었고, 부착된 후에는 세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염료는 사건 직전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형광제 외에 물감의 얼룩을 없애거나 연극 무대 장치를 만들 때 등의 스티로폼 가공 등에도 사용되는 실리콘오일이란 화합물 성분이 검출되었다[각주:33].


4. 현장 근처의 판매 상황과 정보 제공 호소

- 이 트레이너와 해당 타입의 사이즈로 보아서 전국에서 130벌, 도내에서는 4점포에서 총 10벌밖에 팔리지 않는 것도 판명되었다. 도내의 10벌 중 1벌의 소재가 판명됐으나 특별수사본부는 구매자가 판명되지 않은 나머지 9벌의 트레이너 행방에 대한 정보 제공을 호소하고 있다.


5. 점퍼(다운 재킷)

- 유니클로제 [에어텍 점퍼]로 검은색, L사이즈의 것. 사건 직전인 2000년 10월 판매 후 바로 매진되었다. 판매 수는 8만 2,000벌(도내 1만 194벌)로 통신 판매나, 인터넷 판매도 있었다. 소맷부리에서 범인의 혈액형과 같은 A형의 땀이 검출되었다[각주:34].


6. 주머니 속의 모래 유류품

- 주머니에서는 미우라 반도(요코스카 시)의 해안 모래와 관상용 석류 또는 느티나무 꽃가루, 느티나무와 버드나무의 나뭇잎, 사육용 사료를 먹고 있었다고 보이는 참새보다 작은 새의 똥도 검출되었다[각주:35]. 모래는 마보리해변, 기타시타우라해변, 미우라해안 중 하나로 추정된다.

또한 피해자 일가가 사건 2년 전에 미우라반도 해안의 한 호텔에 숙박했다는 정보도 있다.


7. 운동화(테니스화)

- 유류품은 아니지만 현장에 남겨져 있던 발자국으로 판명되었는데 영국 브랜드 슬래진저로 한국 업체가 1998년 10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4,530켤레 제조해 판매하고 있었다. 또 다른 언론보도에 따르면 신발의 출처는 중국 지린성의 조선족 자치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수사본부는 2018년 8월 이 운동화의 3D 이미지를 수사본부의 사이트에서 공개하고 있다.


8. 범인의 신발 사이즈와 일본 국내 유통

- 범인이 신었던 신발 사이즈는 현장에 남아 있던 발자국으로 보아 275에서 280 사이즈다. 수사본부에서는 범인이 한국에서 구입했는지, 어떻게 입수를 하였는지 다양한 시야를 넓히며 정보 제공을 호소하고 있다.


9. 모자

- [버킷햇]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모자 본체가 젖어도 머리가 젖지 않기 때문에 우비로도 사용될 수 있다. 프리사이즈로 회색의 아크릴 100% 털실 방직, 검은색 라인이 들어가 있다. 일본 전국에 판매되었고 1998년 7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사이에서 3,465개 판매. 라벨의 태그로 보아 1999년 9월 이후 판매된 것으로, 점포 4곳에서 판매되었다.


10. 목도리

- 초록색으로 빨간색과 주황색, 진한 초록색 격자무늬가 들어가 있다. 아크릴 제품으로 작은 타입의 머플러이며, 길이 약 130cm. 제조원이나 판매 시기·지역 등은 불명[각주:36]. 섬유의 흐트러짐 등으로 보아 범인이 장기간 사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11. 방한 장갑

- 검은 가죽재질로 26cm, 바깥은 돈피를 사용. 제조 수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 1만 755켤레. 범행 시 사용된 흔적은 없었다.


12. 칼

- 칼날 길이 21cm, 길이 약 34cm로 주 사용용도는 회칼이다. 후쿠이 현의 업체가 2000년 6월 1,500개 제조한 칼로, 틀에서 만들어진 대량 생산품으로서 전국의 양판점이나 할인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현장 부근에서는 집에서 몇 킬로 떨어진 근처 슈퍼에서 사건 전날 29일 2개 판매, 또 다른 근처 슈퍼에서도 사건 전날과 당일인 30일 각각 1개씩 판매되었다.


13. 검은 손수건

- 2층 층계참 부근과 부엌에서 발견됐다. 검은색 무지 손수건 2장은 사방 45cm로 무인양품에서 판매된 것. 제조 수는 1995년부터 약 6년간 총 6만 6,500장(1998년 이후 5만 9,000장). 손수건에는 다림질과 세탁 흔적도 남아 있었다.

손수건은 범행 시에 식칼을 고정할 때 미끄럼 방지나 튀어나온 피를 피할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한 장은 삼각형으로 접혀 양 끝이 묶여 있었던 흔적으로 보아 마스크나 스카프로 사용했다고 보인다.


14. 향수

- 전국의 양판점 등에서 판매된 것으로 1982년경부터 일본 국내에서도 판매. 사건 당시, 오기쿠보역의 잡화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었다.


15. 힙백

- 심록색으로 뚜껑이 붙어 있으며, 벨트의 길이는 83cm로 조절되어 있었다. 오사카의 업체가 2,850개 만들었으며 1995년 9월부터 1999년 1월까지 35개 도도부현에서 판매되었다. 낡은 것으로 보아 범인이 장기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가방의 표면에서는 일본에서는 거의 유통되지 않은 세제가 검출되었다. 이 점으로 보아 범인 또는 주위에 [일본 국외의 출입국 경력이 있는 인물]의 존재가 논의되고 있다[각주:37].


16. 가방 속의 모래

- 가방 속에서 검출된 모래는 석영 등을 담고 있어 [미국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인근 사막의 모래]로 여겨졌는데, 캘리포니아 주 모래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각주:38]이 캘리포니아주의 것으로 생각되는 모래는 모하비 사막 사막 남서부에 있는 에드워즈 공군 기지 부근의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기지 동부의 모래는 특징적이며, 가방 안에 있던 모래와 흡사하다. 또한 미우라반도의 모래도 가방 속에서 검출되었다.



[현장에서의 소실물]


1. 연하장

- 상기한 범인이 가져간 것으로 파악되었던 연하장은 수사원으로 탐문 수사를 위해 유출됐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2. 데상트제 트레이너

- 피해자 집에 있던 아버지의 트레이너가 없어져 범인에 의해 반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전면에 [DIVE]라는 글자가 들어갔고, 뒷면에는 A부터 Z의 알파벳 26글자가 새겨졌다. 1991년부터 1996년경까지 판매된 트레이너다.


3. 현금 약 20만 엔

- 피해자가 경영하던 학원비 현금 약 20만 엔[각주:39]이 없어졌고 현금을 빼낸 것으로 보이는 지갑도 있었지만[각주:40], 은행예금통장과 현금카드, 귀금속류 등은 고스란히 남겼다.



[기타]

1. 사건 당일 피해자 일가족의 행적

- 사건 당일인 30일 오후 6시 무렵, 오타큐선 세이조가쿠엔마에역에서 일가 4명이 쇼핑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었고 오후 6시 반경에는 일가족의 차가 차고에 없던 것을 이웃이 확인했다. 그 후, 세이조가쿠엔마에역 부근에 들렀다가 귀가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2. 사건 발생 전에 있었던 인터폰 소리와 호통 소리

- 옆집 주민이 사건 당일 오후 8시 30분경, 피해자 자택의 인터폰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다만, 증언자의 또 다른 가족은 소리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는데 이 건에 관한 수사는 딱히 이루어진 게 없다. 또, 사건 당일인 30일 심야에 통행인이 피해자 자택에서 남녀가 논쟁하는 목소리를 들었다는 보도도 있다.


3. 범행시각 전후 들려온 [쿵]하는 소리.

- 옆집의 피해자 아내의 가족은 오후 11시 30분경 피해자 자택에서 [쿵]하는 큰 소리가 들렸던 것을 증언했다. 주간 아사히의 보도에 따르면 그것은 범인이 2층 층계참에 있던 다락방에 사다리를 내릴 때 발생한 소리로 여겨진다. 범인과 피해자가 대치하다가 계단에 굴러서 생긴 소리가 아니냐는 견해도 있었으나, 직접 수사기관에서 실험한 결과 사다리와 관련된 소리로 검증이 이루어졌다. 그 외,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4. 사건 발각 시 상황

- 아버지는 1층 계단 밑에서 외출복 차림으로 맨발, 어머니와 딸은 2층 계단 인근, 아들은 2층 아이방에서 각각 잠옷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건 현장의 첫 발견자인 모친은 발견 시, 모친이나 큰딸들의 시신을 건드렸으며, 가장인 아버지의 시신 위에는 서랍이 올려져 있었고 아내의 시신은 전체가 거무스름한 산처럼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어 얼굴을 포함한 전체에 양복이 씌워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경찰이 도착한 시점에서는 일부 시신을 건드렸기 때문에 시신의 얼굴까지 서랍이나 양복에 의해 덮여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가 아니다. 이 밖에 첫째는 머리부터 이불이 씌워져 있었고, 딸은 얼굴이 숙여 있었다. 그리고 현장은 [피바다]까지는 아니었다고 살해된 아내의 언니가 증언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건 발각 당시 1층의 전기는 켜져 있는 상태였다고 일부에서 보도되어 있다. 주간문춘의 보도에 따르면 신문 배달원이 31일 새벽 신문 조간신문을 배달했을 때, 피해자 집의 현관 전기는 꺼져있는 상태였으나 아내의 어머니가 현장을 찾았을 당시엔 전기가 켜져 있었다고 한다. 


5. 사건 뒤에 놓인 지장보살

- 참사 발생 100일째인 2001년 4월 9일, 동남아에서 생산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지장보살이 피해 자택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지문은 채취되지 않았으며, 특별수사본부는 이 지장의 제조·수입·판매 등에 관한 정보 제공을 호소하고 있다.


6. 피해자 집 주변의 당시 상황과 문제·방범 대책

- 피해자의 자택 주변은 근처 공원의 확장 공사로 집 대부분이 이사한 상태였고, 피해 자택도 2001년 3월 이전 이사할 예정이었다. 사건 당시 피해자의 집, 이웃집 1채(피해자의 가족) 건너편 2채 등 총 4채의 집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밤에 통행인은 적었고, 사건의 목격자 증언도 적었다. 일가가 처음 이곳에 이사 온 1990년 6월에는 주택이 30채 정도 있었다.

피해자 집 근처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광장이 있고, 밤까지 스케이트를 타는 등 규칙을 지키지 않는 스케이트 보더와 피해자 집 사이에는 소음 문제로 자주 다툼이 있었다. 사건 며칠 전에도 스케이트 보더와 피해자가 몸싸움까지 하고 있었다는 목격 증언도 있으며, 그 외 공원에 출입하고 있던 폭주족과 피해자가 말썽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장 주변에서는 2000년 여름 이후로, 꼬리를 잘라내거나 피부를 떼어내는 식으로 길거리 고양이 학대 사건이 여러건 일어나고 있었으며 사건 직전 12월 중순에 1건이 발생했다[각주:41].

피해자 집 우편함에는 센서가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면 방범용 라이트가 켜졌다. 또, 현관문 열쇠는 특수한 것으로 1개의 키로 잠금장치 2개를 모두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도어 체인도 있었다[각주:42].


7. 피해자 부부에 관한 정보

- 가장인 아버지는 대학 졸업 후,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종사하며 편집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또, 퀴즈 프로그램의 제작과 출제 등도 관여하고 있었으며 사건 당시는 영국계 컨설팅 회사[각주:43]에서 기업의 이미지 컬러 등을 고안하는 CI 업무 부문의 리더로서 종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건 전날까지 그 날의 행동이나 지출 등 상세하게 일기를 쓰고 있었지만, 트러블 등에 관한 기술은 없었다.

어머니는 1990년 12월부터 프랜차이즈 방식의 학원을 옆의 자신의 언니 부부의 집[각주:44]에서 개설하였다. 1992년 옆집 언니 부부 가족이 해외로 이사하면서 옆집에서 가르쳤던 것 같다[각주:45]. 참고로 언니 부부는 2000년 귀국하여 아내의 어머니와 다시 같이 살았다.


8. 범인의 목격 정보·의심자의 정보


- 사건의 희생자인 어머니가 [집 앞 도로에 최근 자동차가 계속 있었다]며 사건 며칠 전인 25일에 말했던 것을 시아버지가 밝히고 있다.

- 사건 3일 전인 27일 오전, 피해자 자택 부근에 40대 중반의 괴한이 목격됐다.

- 사건 현장에서 1.5㎞ 떨어진 세이조가쿠엔마에역 인근에서 사건 전날인 29일 오후 3시경 현장에 남아 있던 트레이너와 힙백, 운동화와 비슷한 복장의 젊은 남자가 목격된다. 목격자인 주부에 의하면 [이 남자가 12월 말 치곤 얇은 옷이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주간 아사히에 따르면 이 남자는 사건 직전인 30일 오후 9시경에도 피해자 자택 부근에서 목격됐다고 한다.

- 사건 당일인 30일 오후, 낯선 남자가 피해자와 다투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 사건 당일인 30일 오후, 7시와 10시경 피해자집 근처를 흐르는 강가의 보도에 범인이 현장에 남기고 간 모자와 비슷한 모자를 쓴 35세에서 40세 전후의 사나이가 목격된다. 7시에 남자는 피해자 집 옆, 10시에 남자는 피해자의 자택과 반대 측의 보도를 걷고 있었으나 두 남자가 동일 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 사건 당일인 30일 오후 10시경, 피해자의 집에서 공원 내 남쪽으로 약 250m 지점에서 하얀 추리닝을 입은 금발의 수상한 청년(17세~19세 정도)이 목격됐다. 젊은이는 목격자의 애견을 노려보곤 지나갔다고 한다.

- 사건 당일인 30일 오후 11시 35분부터 11시 40분경, 피해자 자택에 있는 골목에서 튀어나와 지나간 25세에서 35세 남자가 목격된다. 이 남자에 대해서는 초상화 일러스트를 2004년 12월부터 경시청이 공개하고 있다.

- 사건 당시, 현장 근처에서 왼손에 피가 묻은 남자의 목격 정보가 있었다. 목격자 여성은 차를 운전하던 중 도로로 뛰쳐나온 그 남자와 가볍게 접촉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이름 등을 대지 않는 바람에 그 후 연락이 되지 않았고 목격한 시간대 등에 대해서도 불투명하다.


9. 범인상·사건 분석 등

- 논픽션 작가였던 아사쿠라 교지(朝倉喬司, 1943~2010)는 본 사건의 범인상에 대해 [일본의 고전적인 일가족 살인사건과 다르게, 피해자와 범인 간에 농밀한 인간관계가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특이한 살인, 현장의 난잡함을 보면 범인은 어떠한 공포로 패닉에 빠진 끝에 즉흥적으로 '근처에서 할 만한 인간에게 저지른다' 정도의 계획성·각오만으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단란했던 일가족의 모습, 우측 끝부터 4번째 여자아이까지 피해자 가족의 모습>


[기타 관련 사실]

- 2006년 5월 12일: 과거 특별수사본부에서 사건의 수사 활동을 하던 경위가 수사 보고서에 자신과 아내의 지문을 첨부하여, 실제로는 낯선 주민 수십 명의 지문을 채취한 것처럼 위장하는 등 허위 보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 2010년 6월 24일: 해당 사건 및 기타 미제 사건 현장에 중상의 벽보와 사진을 붙인 남자가 경범죄법 위반 혐의로 경시청에 불구속 입건된 것으로 드러났다. 

- 2012년 9월: 피해자의 부친이 폐렴으로 입원 후, 병원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014년 8월: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사건 현장의 건물이 노후화 때문에 헐릴 것으로 관계자의 취재로 밝혀졌다. 2012년경 이미 해체의 이야기가 나왔으나 당시 경찰청 형사부장이 난색을 보이며 없던 일이 되었다. 

- 2019년 11월: 현장 건물의 해체에 대해 경찰이 유족 측에 타진, 협의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현상금]

- 경시청은 2007년 12월 14일부터 해당 사건을 수사 특별 포상금 제도(공적 보상금제)의 대상 사건으로 지정했다. 사건의 해결, 범인의 체포로 이어지는 유력 정보의 제공자에게 최대 300만 엔의 현상금이 지급된다.

2010년 12월 16일 이후로는 [사건 수사에 협조하는 모임]에 의한 사적 보상금인 최대 700만 엔도 마련되면서 현상금은 합계 최대 1,000만 엔까지 늘었고, 2014년 12월에는 사적 보상금이 1,000만 엔 더 증액되면서 해당 범인 체포로 연결되는 정보는 합계 최대 2,000만 엔이 지급하게 되어 있다.

또한, 수사 특별 포상금제의 적용 시한은 1년 단위로 갱신하는데 2008년 12월까지의 기한 이후 해마다 연장되고 있다.


<현장 부근에 설치된 긴급통보장치. 버튼을 누르면 근처 파출서에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사건의 영향]

- 이 사건은 집에 있는 일가족 모두를 살해하였다는 잔학한 수법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사건 주변 지역에 국한하지 않으며 각 가정의 방범 의식을 높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타가야구 세이죠 경찰서는 거리의 방범 카메라나 긴급 시에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긴급 통보 장치의 설치를 촉진했다. 특히 방범 카메라는 절도 사건이 감소하는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실제로 사건 해결에도 연결되어 있다.


[유족회 결성과 공소시효 폐지 논의]

- 사건의 유족은 다른 사건 유족들과 연계하면서 살인 사건에 대한 공소 시효 정지·폐지를 목표로 2009년 2월 28일 [살인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의 모임]인 [하늘의 모임]을 결성했다. 

2010년 4월 27일 살인죄, 강도 살인죄 등 법정 상한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의 공소시효 폐지 등을 담은 개정 형사소송법이 성립·시행되면서 이 단체의 주된 목적이 달성됐다. 공소시효의 폐지는 당 사건을 포함하여 개정의 시행 시에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던 과거의 사건에도 적용되고 있다.


<살해된 일가족의 가장이었던 미야자와 미키오 씨의 어머니 세츠코 씨의 모습. 

어느새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나 사건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들 가족을 잃은 18년]

<2018년 12월 30일, 도쿄신문>

-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주택에서 회사원 미야자와 미키오(당시 44세) 씨의 일가족 네 명이 살해된 사건은 미해결인 채, 삼십일을 기해 발생으로부터 18년을 맞이한다. 미키오의 어머니의 세츠코(87) 씨는 사이타마시의 자택에서 네 사람의 영정을 바라보며 말을 거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하고 싶은 말은 [범인, 잡혔어.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살아있어요]라며 몸을 떨었다. 세월의 길이를 말해주듯 불간에 걸린 네 사람의 영정은 빛이 바랬다.

6년 전에는 남편 요시유키(84세) 씨가 세상을 떠났고,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다. [영정이 말동무랍니다. 모두 이제 돌아오지 않지만, 함께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으니까]

[방금 사과 받아왔다고, 같이 먹자] 거기에 네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넨다.

2000년 12월 30일, 세츠코 씨는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의 집에 있었다. 갑자기 울린 전화로 미키오 씨 가족이 살해된 것을 알곤 서둘러 도쿄로 돌아갔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그 이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누군가에게 [보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말을 듣고 네 명의 시신과 대면하진 않았다.

사건 후 집에 틀어박히면서, 삼십 년 동안 다녔던 꽃꽂이 교실에도 못 가게 됬다.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면서 전화가 울릴 때마다 몸이 굳어지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허리는 약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매달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성묘도 지금은 일 년에 여섯 번으로 줄었다. 그래도 [사건 해결 전까지는 꼭 건강하고 싶다]며 눈에는 힘이 들어간다.

[어째서 살해당해야만 했는가?] 범인만이 아는 답을 네 사람에게 보고하기 위해 체포 소식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


<올해(2019년) 12월 14일, 사건 19년이 다가오면서 해결을 바라는 집회가 도쿄도 구내에서 열렸다. 

세츠코 씨는 헌화하면서, [가능하다면 건강할 때 사건이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다시 한 번 호소했다>




  1. 1999년이 아니라 2000년이 20세기 마지막 해다. [본문으로]
  2. 살해된 일가족 중 A형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본문으로]
  3. 당시 기준으로 15세에서 35세까지. [본문으로]
  4. 학창시절에 자주 사용되는 형광펜 등의 흔적. [본문으로]
  5. 길이 83cm로 허리 둘레 70~75cm로 추정. [본문으로]
  6. 길이 약 130cm로 10대 중반의 평균적인 목둘레. [본문으로]
  7. 산케이 신문 2006년 10월 16일 자. [본문으로]
  8. 아사히 신문 2006년 12월 31일 자. [본문으로]
  9. 아시아 민족에겐 볼 수 없다. [본문으로]
  10. 산케이 스포츠·산케이 신문 2009년 12월 30일 자. [본문으로]
  11. 마이니치 신문 2008년 5월 25일 자. [본문으로]
  12. 산케이 신문 2006년 10월 16일 자. [본문으로]
  13. 요미우리 신문 2002년 12월 28일 자. [본문으로]
  14. 마이니치 신문 2001년 1월 29일 자. [본문으로]
  15. 지문이나 혈흔 등. [본문으로]
  16. 주간문춘 2009년 1월 1일, 8일 신년 특대호 등. [본문으로]
  17. 주간문춘 2009년 1월 1일, 8일 신년 특대호. [본문으로]
  18. 산케이 신문 2002년 12월 19일 자. [본문으로]
  19. 산케이 신문 2005년 12월 30일. [본문으로]
  20. 아사히 신문 2006년 12월 31일 자. [본문으로]
  21. 산케이 신문 2002년 12월 19일 자. [본문으로]
  22. 산케이 신문 2002년 12월 19일 자. [본문으로]
  23. 아사히 신문 2005년 12월 10일 자. [본문으로]
  24. 욕실 안에서 구분했을 가능성도 있다. [본문으로]
  25. 산케이 신문 2002년 12월 19일. [본문으로]
  26. 시사통신사 2010년 12월 24일 자. [본문으로]
  27. 오후 10시 38분부터 45분경 이메일 송수신 후, 50분경 컴퓨터의 전원을 끈 기록 등. [본문으로]
  28. 31일 오전 1시 18분경과 오전 10시 5분경. [본문으로]
  29. 오전 10시 5분경. [본문으로]
  30. 오전 1시 18분경. [본문으로]
  31. 피해자가 미리 인터넷 브라우저 즐겨찾기에 등록하고 있었다. [본문으로]
  32. 요미우리 신문 2002년 12월 28일. [본문으로]
  33. NHK 뉴스 2010년 12월 12일 자. [본문으로]
  34. 산케이 신문 2001년 4월 2일 자. [본문으로]
  35. 매일 신문·아사히 신문· 산케이 신문 2009년 12월 14일 자. [본문으로]
  36. 오락실 경품이나 100엔 숍에서도 팔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음. [본문으로]
  37. 요미우리 신문 2005년 11월 21일 자. [본문으로]
  38. 석간 후지 2006년 8월 2일 자. [본문으로]
  39. 약 15만 엔이라는 보도도 있음. [본문으로]
  40. 아사히 신문 2005년 12월 10일 자. [본문으로]
  41. 마이니치 신문 2001년 1월 18일 자. [본문으로]
  42. 주간문춘2001년 1월 25일 호, 3월 8일 자. [본문으로]
  43. 디자인회사로 여겨지는 때도 있다. [본문으로]
  44. 살해된 아내의 어머니와 언니 부부가 함께 살았다. [본문으로]
  45. 그동안 옆집에는 아내의 어머니 혼자 살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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