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당시 파키스탄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의 어느 모스크의 붕괴한 모습>
- 2005년 파키스탄 지진은 그해 10월 8일 08시 50분(현지 시간[UTC+5]한국 시간 오후 0시 50분),에 파키스탄 동북부와 인도 북부에 걸친 카슈미르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리히터 규모 7.6으로 파키스탄·인도 양국에서 사망자가 7만 명에 달하는 등 큰 피해가 속출했다. 진앙이 있는 카슈미르 지방은 예전부터 파키스탄과 인도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지역이며, 진앙의 위치는 엄밀하게 파키스탄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이기에 '카슈미르 지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지질 조사국(USGS)의 발표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각은 현지 시간(UTC+5)으로 2005년 10월 8일 8시 50분경으로 진앙은 북위 34도 31.6분초 동경 73도 34.9분초로, 진원의 깊이는 추정치로 26km 규모는(USGS 모멘트 규모) 7.6이었다. 또한 USGS 표면파 규모(Ms)는 7.7이었으며, 진앙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북동 약 110km 부근으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지역으로 파키스탄이 실효 지배하는 카슈미르 지방이었다. 이 부근은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를 잇는 산악지대로 히말라야 산맥의 선에 해당한다. 즉, 인도-오스트레일리아판이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라시아 판에 충돌하고 있는 지대로 지진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USGS의 보고에 의하면,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합쳐 87,300명 이상, 부상자는 총 75,000명 이상, 이재민은 추정치 약 400만 명이다. 파키스탄 영내에서 사망자가 98%(약 86,000명), 부상자가 90%(약 69,000명)이상 차지했다. 또한,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의 2005년 12월 2일 자 보고서에는 파키스탄 정부가 보고하는 사망자는 73,331명, 중상자는 69,392명이라고 한다. 또, OCHA의 2005년 10월 19일 보고에 의하면 이 재해를 겪은 인구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와 카슈미르 지방의 파키스탄 실효 지역 내를 합쳐서 총 273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재민인 샤마루단씨, 이 재해로 어머니와 아이 둘을 잃었다고 한다>
아자드 카슈미르 주의 주도인 무자파라바드(인구 약 70만 명 이상)에서는 건물 피해가 심했고, 이곳에서 18,000명이 사망했다. 그중에서도 시가지 북쪽에 있는 반디미르 함다니(Bandi Mir Hamdani)에서는 니람(Nilam)강 서안 사면의 마을의 건물은 모두 무너졌다고 보고되었다. 그리고 진원 지역의 북서쪽 끝에 있는 마을 발라콧(Balakot)에서는 마을 내 지표에 지진 단층이 출현했다. 언덕 위에 있던 구시가지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언덕에 지어졌는데,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건물이 파손되면서 주민의 85%인 1661명이 사망했고, 강가 평지의 마을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또 진원 단층의 남동쪽 끝에 있는 우리(Uri)라는 곳에서도 건물의 80% 이상이 파괴되는 피해가 나왔다.
건물 피해의 특징은 쓰러지는 것보다 눌려서 찌그러진 것처럼 붕괴된 것이 많았는데, 이것은 블록을 쌓은 식으로 지은 건물이 많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또, 언덕의 정상부에 건물을 짓는 사례도 많이 나오고 있어서 지진동이 증폭된 것이 피해 확대를 낳았다는 지적이 있다. 게다가 희생자가 늘어난 요인으로 하필 지진 당시 라마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실내에 있었던 점도 들 수 있다.
산사태와 지진은 단층 부근을 중심으로 다수 발생했고, 무자파라바드의 북서부에서는 석회암의 지층이 높이 300m에 걸쳐서 산사태를 일으키고 키샨강가 강의 수로를 막아버려 한때 천연 댐을 형성할 정도였다. 또, 무자파라바드의 남동쪽 약 40km에 있는 마을에서도 산사태로 젤룸 강의 하천이 막혔다. 그리고 산사태와 낙석 때문에, 산악 지대를 잇는 도로가 끊어지고 며칠간 고립된 지역도 있었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로 도로가 막혔다>
이 밖에 아보타바드, 구지란왈라, 구지라트,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라호르, 라왈핀디 등, 파키스탄 북동부의 여러 도시에서 건물 피해가 발생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고층 아파트 2채가 무너지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이슬라마바드의 흔들림은 철근 콘크리트에 대한 치명적 손상을 줄 정도가 아니었고, 이 아파트에 관해서 설계나 시공과정에서 불법 건축을 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인도에서도 사망자 1,350명, 부상자 6,266명이 발생했으며 인도령인 잠무 카슈미르 내에서 32,300여 개 건물이 파손되었고, 북부의 넓은 범위에서 진동이 관측되었다. 그리고 카슈미르 협곡이나 잠무에서는 액상화 현상 등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이 지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한 명이 숨졌고, 약간의 건물 피해가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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