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셀시어 프로젝트(Project Excelsior)는 미국 공군의 조셉 키팅어(Joseph William Kittinger II, 1928~) 대위에 의해서, 1959년과 1960년에 열린 성층권 낙하산 강하 실험이다. 이 실험으로 최고 기구 고도, 최고 낙하산 강하 개시 고도 102,800피트(31,330m, 레이더 측정), 최장 자유낙하 시간 4.5분, 탈것을 사용하지 않고 최대 대기 중 속도 614 mph(988 km/h)가 수립되었다.
현재 이 중에서 강하 고도와 최대 대기 중 속도 2개는 2012년에 있었던 우주 낙하 프로젝트인 [레드불 스트라토스]에서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Felix Baumgartner, 1969~)에 의해서 깨질 때까지 세계 기록이었으며, 지금도 자유낙하 시간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엑셀시어 프로젝트 실험에 참가한 조셉 키팅어 대위>
- 1950년대, 항공 우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항공기는 더 빠른 속도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미 공군은 항공기 승무원이 고공에서 기체 밖으로 탈출할 때의 안전성을 문제 삼아서, 인체 모형을 이용한 자유낙하 실험을 시행했다. 이 실험에서 강하 중에는 1분당 200번에 달하는 회전이 발생하면서 매우 위험하다는 결과가 얻게 된다. 이후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성층권 도달을 목적으로 진행한 실험인 맨 하이 프로젝트(Project Manhigh)에서는 고도 29,500~30,900m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61m 높이, 85,000m³의 용량을 가진 헬륨 곤돌라를 이용했는데, 해당 기구가 바깥과 차단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탑승자는 고공의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특별한 의상이 필요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엑셀시어 프로젝트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한편, 오하이오주 라이트 패터슨(Wright-Patterson) 공군기지의 기술 부사관이었던 프랜시스 뷰퍼(Francis Beaupre) 등에 의해 개발된 다단계 방식의 낙하산 강하 시스템이 마련됐다. 이는 고공에서 발생할 회전을 막기 위해서 지름 2m급 낙하산과 저공에서 사용하는 감속용 8.5m급 낙하산을 조합한 것으로, 고도 센서에 의해서 자동으로 낙하산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프로젝트 감독인 조셉 키팅어가 탑승자를 맡았다.
첫번째 실험인 엑셀시어 1호(Excelsior I)는 1959년 11월 16일 시행되었고, 키팅어는 고도 23,300m에서 강하하였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는 회전 대책용 낙하산이 빨리 펼쳐졌기 때문에, 분당 120회의 회전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키팅어는 의식을 잃었지만, 자동으로 고도 3,000m에서 감속 낙하산이 펼쳐져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키팅어는 2차 실험을 불과 3주일 뒤인 12월 11일에 실시했다. 이 실험(엑셀시어 2호)에서는 고도 22,800m에서 강하를 하고, 고도 16,800m까지 낙하산을 사용하지 않는 자유낙하를 하였다.
<고도 31,330m에서 뛰어내리는 키팅어 대위의 모습>
1960년 8월 16일, 3번째 마지막 실험(엑셀시어 3호)에서는 오른손 장갑에 압력 조절 문제가 발생하면서, 키팅어는 오른손에 격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실험이 중단될까 봐 이 사고를 지상의 크루에게 보고하지 않고 그냥 실험을 강행했다. 압력 문제로 오른손 온도가 떨어지면서 오른손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31분 만에 31,300m에 도달하면서 데이빗 시몬스(David Simmons) 공군 대위가 1957년에 세웠던 30,942m를 넘어섰다. 이 고도에서 키팅어는 기구가 강하 예정 지점으로 이동할 때까지 약 12분 동안 대기후, 자신의 몸을 하늘에 맡겼다.
강하 시작 후 회전을 방지하기 위한 낙하산을 전개시킨 뒤, 4분 36초 동안 낙하했고 고도 5,300m에서 감속 낙하산을 펼치면서 뉴 멕시코 주의 사막에 무사히 착지했다. 강하 시간은 총 13분 45초였다. 실험 중 기온은 최저 -70℃에 이르렀고, 자유낙하 속도는 988km/h에 달했다. 그러나 키팅어는 [ 1구름권에 돌입할 때까지 속도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실험으로 고공에서도 항공기로부터 안전한 탈출법이 가능하도록 연구하는 데 세운 공로로 키팅어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하먼 트로피를 받았다. 이 외에도 2수훈비행십자장, 3J.J. Jeffries Award, 레오 스티븐스 낙하산 메달(A. Leo Stevens Parachute Medal), Wingfoot Lighter-Than-Air Society Achievement Award를 수상했다.
<고도 31,000m에서 낙하한 기록은 2012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에 의해서 깨지기 전까지 40년 넘게 이어진 기록이었다>
조셉 키팅어(Joseph William Kittinger II)는 1928년 7월 27일 플로리다 주 탬파 출신 미국 공군 조종사로, 해당 기록 이외에도 단독으로 대서양을 기구로 횡단을 성공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1950년에 미국 공군으로 입대한다. 그 후 기구에 의한 고고도 실험에 참여한 뒤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A-26 및 F-4을 조종한다. 그러다가 1972년에 포로가 되면서 하노이 힐튼에 수감된다.
1978년 대령으로 퇴역 후, 마틴 마리에타에 4입사한다. 이후에 기구 경기에 종사하고, 1984년에 기구를 이용하면서 단독으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다. 2007년 기준,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거주하면서 항공 관련 커뮤니티 운영과 컨설팅을 하고 있다.
참고로 2008년, 상기한 낙하 프로젝트인 레드불 스트라토스의 조언을 위한 프로젝트 자문 전문가로 취임하면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로부터 왕립공군공로상을 수여하였는데, 인터뷰에서 아직도 전투기 조종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스팅어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난 아직도 최고의 조종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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