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지원함인 '포트 오스틴(RFA Fort Austin [A386])'은 포클랜드 전쟁에 참가한 지원함 중 하나다(shipspotting)>
- 영국군은 정세가 긴박해지면서, 파상적으로 파병 부대를 늘렸고 우선 3월 29일에 포트 로잘리급(Fort Rosalie-class, A386) 군수지원함인 '포트 오스틴(RFA Fort Austin [A386])'과 4월 1일에는 원자력 잠수함인 '스파르탄'과 "스플렌디드"가 파견됐고, 지브롤터에 기항하던 호위함 '브로드소드'와 '야머스'도 추가되었다. 아르헨티나군의 침공 시점에서 포트 오스틴과 원자력 잠수함은 대서양 남쪽으로 항행 중이었고 순양함대는 지브롤터 해군 기지를 출항하고 있었다.
3월 31일, 대처 총리는 '허미즈'와 '인빈시블' 2척의 경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제3코만도 여단을 동반한 기동 부대 편성을 하달했으며, 4월 1일 밤에는 국무 회의에서 기동 부대를 포클랜드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제1함대는 카사블랑카 인근에서 NATO의 훈련인 'SPRINGTRAIN'에 참가했으며, 여기서 7척이 포클랜드 전쟁을 위해 투입되었고 이미 훈련 부대에서 분리되어서 서인도 방면으로, 장기 임무를 수행 중이었던 로스시 급 호위함(Rothesay-class frigate) '플리머스(HMS Plymouth [F126])'도 소환된다.
-카운티급 구축함(County-class destroyer) 2척: '앤트림(USS Antrim [FFG-20])', '글러모건(HMS Glamorgan [D19])'
-42형 구축함(Type 42 destroyer) 3척: '코번트리(HMS Coventry [D118])', '글래스고(HMS Glasgow [D88])', '셰필드(HMS Sheffield [D80])'
-22형 호위함(Type 22 frigates): '브릴리언트(HMS Brilliant [F90])'
-21형 호위함(Type 21 frigates): '애로우(HMS Arrow [F173])'
<42형 구축함 셰필드(HMS Sheffield [D80]), 훗날 아르헨티나 공군의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에 의해 격침된다(shipspotting)>
4월 3일, 02시 30분에 이들 7척은 군수지원함인 급유함 '타이드 스프링(Tide-class replenishment oiler: Tidespring[A75])'과 함께 포클랜드 제도로 향했다.
4월 5일에는 대대적인 전송과 함께 포츠머스에서 상기한 2척의 항모가 출격했다. 같은날, 조용히 21형 호위함인 '알라크리티(HMS Alacrity [F174])', '앤텔로프(HMS Antelope [F170])', 군수지원함인 급유함 '피어리프(RFA Pearleaf [A77])', 급양함,'리소스(RFA Resource [A480])'와 '올메다(RFA Olmeda [A124])'도 출항했다.
4월 6일에는 강습상륙함 '피어리스(HMS Fearless [L10])'가, 또 4월 9일에는 제3코만도 여단의 대부분 병력과 증원된 육군 제3공수 대대를 태운 해군징발선 '캔버라(SS Canberra)'도 출항했다.
<제1함대 사령관 샌디 우드워드(Sandy Woodward)(더타임즈)>
제1함대 사령관 샌디 우드워드(Sandy Woodward: 1932~2013) 해군 소장은 지브롤터에서 글러모건에 승선, 함대를 지휘하면서 남하했고 4월 15일에 항모부대와 합류한다. 그리고 4월 18일, 항모 기동 부대는 어센션 섬을 출항한다.
4월 7일, 영국 정부는 12일 04:00(UTC+0시간)시 이후, 포클랜드 제도 주변 200마일에 해상 배제 해역(Maritime Exclusion Zone:MEZ)을 설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2일에 원자력 잠수함 스파르탄이 배제 해역으로 예정대로 배치되었고 그에 맞춰서 MEZ가 발효됐다. 그리고 15일에는 스플렌디드도 배치에 들어갔다. 스파르탄은 동 포클랜드 섬 인근을, 스플렌디드는 아르헨티나 본토의 항만과 포클랜드 제도의 중간이 될 해상 배제 구역의 북쪽 초계 수역을 담당했다.
<포클랜드 전쟁에 참가한 군수지원함 중 하나인 급유함 피어리프(RFA Pearleaf [A77])(sirmarfittings)>
한편, 포클랜드 제도에서 아르헨티나군의 방위 준비가 진행되었다. 보병부대, 장갑차량, 레이더 설비, 야포 및 자주 대공포, 대공미사일 발사기 등의 병력이 수송함, 수송기로 운반되었다. 4월 12일 이후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로 대규모 상륙이 불가능해진 아르헨티나는 수송기나 소규모의 해상 수송을 계속하면서, 동(東)섬의 아르헨티나군 수비대의 총 병력은 9,000명을 넘어섰다. 더욱이 미리 제압했던 스탠리, 구스 그린, 페블 섬의 각 비행장에 아르헨티나 공군 제1·제3그룹과 해군 제1·제4 항공대의 군용기 약 30대와 육군 수송 헬기 부대가 배치되었고 전력 증강을 도모하였다.
군용기는 '푸카라(FMA IA 58 Pucará)'공격기, 이탈리아 알레니아 아에르마키(Alenia Aermacchi)社의 경공격기 'MB-339·MB-326', 미국의 비치크래프트(Beechcraft )社의 '터보 멘토(T-34C Turbo Mentor)'경공격기 등으로 짜여졌다.
또 아르헨티나 본국에서는 공해군 항공대가 포클랜드 제도와 가까운 리오 그란데, 리오가예고스, 산 프리앙, 트렐레우 등 남부 기지에서 전개, 영국 해군에 대한 요격 준비가 진행됐다.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이 프랑스 다쏘(Dassault Aviation)항공사로부터 구입한 직후인 '쉬페르 에탕다르(Dassault-Breguet Super Étendard)' 공격기에, 프랑스의 MBDA사에서 구입한 공대함 미사일 '엑조세(Exocet)AM39'이 5발 탑재되었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로부터 구입한 공격기 쉬페르 에탕다르(over-blog-kiwi.com)>
아르헨티나군은 4월 3일, 사우스 조지아 섬 점령 후 주둔군으로 해병대원 55명을 정박지 그리트비켄과 리스에 배치했다. 또 폐기물 회수 업자 39명이 계속 리스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었으며 특히 영국군 잠수함 때문에 아르헨티나 해군에 의한 지원도 받기 어려웠으며 방어하기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영국군으로서는 우선 이 지역을 탈환함으로써 포클랜드 제도 탈환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다.
4월 7일에는 사우스 조지아 섬 탈환을 위한 부대로서, 호위함 플리머스와 구축함 앤트림 및 타이드형 급유함 타이드 스프링으로 제317.9 임무군(Task force, 태스크 포스)이 편성되었고, 후에 사우스 조지아 섬 근해에서 쇄빙선 엔듀어런스가 합류했다. 또한 4월 24일에는 순양함 브릴리언트가 합류했으며 상륙 부대는 제42코만도의 M중대가 배정받았다.
그 뒤 육군 특수 공수 부대(SAS)의 D중대와 해병대 특수 주정 부대(SBS)의 1개 분대도 추가됐다. 작전은 '파라퀘트 작전(Operation Paraquet)'으로 명명되었지만, 작전 참가자는 일부러 1글자만 바꾸어서 '파라콰트(Paraquat)작전'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태스크포스를 엄호하기 위해서 4월 20일부터 25일 동안,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아르헨티나 본토 연안까지 공군의 '님로드 (Hawker Siddeley Nimrod)'초계기가 초계하고 원자력 잠수함 '컨커러(HMS Conqueror [S48])'도 사우스 조지아 섬 연안을 초계하였다.
<SAS 부대는 리스를 정찰하기 위해 악천후에도 무릅쓰고 포츄나 글라치어 빙하에 상륙하다가 결국 조난한다. 운 좋게도 사망자 한 명 없이 무사히 구출되었다(Britishempire)>
본대 상륙에 앞서 우선 SAS가 리스를, SBS가 그리트비켄을 정찰하게 되어 있었다. 4월 21일 13시, 리스를 정찰하는 SAS 분대는 주위의 충고에도 무릅쓰고 앤트림과 타이드 스프링의 함재 헬기로 사우스 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의 '포츄나 글라치어(Fortuna Glacier)빙하'에 강하했지만 악천후와 빙하의 상태 때문에 5시간 동안 겨우 500m를 전진하다가, 다음날인 4월 22일 11시에 결국 구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화이트 아웃( 눈이나 모래 따위로 인해 시야가 심하게 제한되는 날씨 상황으로, 지평선마저 보이지 않아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하얗게 보여 방향과 거리를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상태) 상태가 지속하자, 구출 작업 중이던 헬기 2대가 추락했으나 운 좋게도 사망자와 중상자는 없었다.
남은 1대는 한번 함으로 돌아가서 대원들을 내린 후, 남아 있던 대원들과 승무원을 구출하려다 기상 악화 때문에 다시 돌아갔고 세 번째 도전 만에 가까스로 구조에 성공한다. 이때 1톤 이상의 과잉 하중 상태로 아슬아슬했지만,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한편, SBS의 그리트비켄 정찰도 강력한 맞바람과 빙산에 의해서 실패한다.
4월 23일에는 SAS의 정찰대원이 보트로 스트롬니스(Stromness) 만에 잠입하려다, 극한의 환경으로 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5척 중 3척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나머지 2척은 조난하다가 나중에 각각 헬기로 구출되었으며, 나머지 대원들은 정찰 활동을 완수했다.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5부) (0) | 2019.04.13 |
---|---|
한·일 수산물 WTO 분쟁, 일본 2심 패소... 일본정부, "당혹, 지극히 유감" (0) | 2019.04.12 |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흑인 알비노(Albino) 사냥 (0) | 2019.04.07 |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3부) (0) | 2019.04.05 |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2부) (0) | 201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