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8월 28일> 1974년 8월 28일 - 일본, <피아노 층간소음 살인사건>

!@#^& 2019. 8. 27. 21:13

<사건이 일어난 공영주택>


피아노 층간 소음 살인 사건(일본명: ピアノ騒音殺人事件)1974년 8월 28일 아침에 가나가와(神奈川) 히라쓰카시(平塚市)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위층에 살던 사람이 피아노 소음을 이유로 모녀 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본 최초소음 분쟁으로 벌어진 살인 사건 제1호로 알려졌다.


<용의자 오하마 마츠조의 모습>


가해자인 오하마 마츠조(이하 O)1928년 6월 4일생(현재 91세)으로, 도쿄부(東京府) 도쿄시(東京市) 가메이도(亀戸)(現 도쿄도 고토구 가메이도)에서 서점집 아들로 태어났다. 소학교(초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우수해서, 구제중학교[각주:1]에 진학했지만, 입학 후 나태해지면서 졸업 후에는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1941년에는 일본국유철도(現 국철) 구니타치역(国立駅)의 역무원이 됐지만, 1951년 소액의 공금을 횡령, 도주하였고 그 후에 날치기하다가 체포되면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 뒤엔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한때는 노숙자 생활도 경험했다. 이후, 1959년농가데릴사위 형식으로 결혼했지만, 아내전남편을 만난 것을 알고 바로 이혼했다. 

그 후 재혼한 O였지만, 1963년에 O의 스테레오 소리불평을 하러 온 이웃트러블에 걸린다. 이 시점부터 O는 소음민감한 신경질적인 남자가 되면서 동네에서 짖어대는 개를 죽이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TV를 볼 때도 이어폰을 끼고 볼 정도였다. 사건 진술조서에 의하면 O는 근처의 유리문 여닫는 소리조차 폭탄 터지는 소리처럼 들리면서 뇌가 파괴되는 듯했다고 말했다. 

1970년 5월, O와 아내가 히라쓰카시의 공영 주택으로 이사하였고, 얼마 뒤 아래층4인 가족이 이사 왔다. 이 일가는 두 딸이 어려서 애들 소리로 시끄러웠고, 특히 남편목수가 취미였기 때문에 일요일마다 공작 소리를 냈다. 양쪽 집 사이에 있는 마룻바닥12cm에 불과하여 소음위층에까지 울렸고, O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O는 종종 아래층 부부에게 고충호소했지만, 부부는 상대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년도인 1973년 가을, 아래층 가족의 장녀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아래층에서 피아노 소리가 매일같이 흐르게 됐다. 이 당시 일하던 공장에서 실직한 O는 아내와의 이혼 문제피아노 소음에도 시달리는 상태였다. O는 아래층 가족들에게 고충호소했지만, 아래층 부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국, O는 이 일가가 고의소음을 일으키고 있다고 믿게 되면서 살해를 결심, 아내에게 보복을 시사하는 발언소리·방음에 관한 지식을 몸에 익혔으며 회칼까지 구매했다.


<당시 신문기사>


1974년 8월 28일, 아침부터 무더웠던 이 날도 아래층에서는 어김없이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O의 분노폭발했다. 오전 9시 20분경, 아래층 가족의 남편(당시 36세)이 출근하고 아내(당시 33세)가 쓰레기를 버리러 외출한 것을 확인한 O는 아래층 가족 집에 침입, 피아노를 치고 있던 장녀(당시 8세)의 가슴을 회칼로 한차례 공격해서 그 자리에서 살해, 이어서 옆에 있던 둘째 딸(당시 4세)도 살해했다. 두 사람을 죽인 O는 곁에 있던 매직펜으로 맹장지에 부부에 대한 원망을 휘갈겼다. 그것을 쓰던 중에 그 집 부인귀가하는 바람에, O는 그녀도 찔러서 살해하고 도망쳤다. O는 [바다에서 죽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자살시도하지만 실패하였고, 3일 후인 8월 31일자수하고 살인 용의체포되었다.

재판에서는, O소음측정한 시 직원이 증인으로서 출석했다. 첫 번째 측정오후 2시주위의 소음44㏈이었고, 아래층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는 측정하지 못했다. 2번째오전 7시 30분부터 측정했지만, 창문을 연 상태에서도 상한치는 44㏈이었다. 1971년 5월에 각의 결정된 [소음과 관련된 환경 기준]에서 주택가 50㏈, 아침저녁으로 45㏈ 이하, 심야 40㏈로 아래층의 피아노 소리는 환경 기준값 이내였다. 단, 이때 피아노를 친 시간은 약 15분이었고 피아노는 경찰 관계자가 친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이용된 측정 방법은 당시 가나가와 현의 공해 방지 조례에 근거하였지만, 조례에서는 40~45㏈의 경우 인체에 대한 영향 [수면방해된다, 아플 때 잠들 수 없다]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또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던 O의 아내가 출석하면서, 피아노 소리는 자신에게도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피고인 O를 정신 감정한 의사는 [O는 정신병 증상이 없으며 지능보통이고 책임능력은 있지만, 소음공해로 인해서 도덕감정마모정신병질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1975년 8월 11일, 검찰 측은 논고에서 [사건은 계획적 범죄이며 살해 방법은 잔학, 피아노 소리가 불쾌하다는 범행 동기에 참작의 여지는 없다. 극악무도한 범죄이며 극형 이외에는 없다]라고 말하며 피고인 O에게 사형구형했다. 1975년 10월 20일 요코하마 지방 법원 오다와라 지부는 구형대로 피고인 O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사건이 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됨에 따라 전국에서 소음 피해자 등에 의해서 구명 탄원 활동이 이루어졌다. 1976년 5월, 도쿄고등법원으로 항소한 피고인 O에 대해서 정신 감정을 시행되었다. 여기서 [책임 능력 없음=심신 상실]로 감정 결과가 제출됐지만, 피고인 O는 1976년 10월 5일 [구치소소음을 참지 못하겠다, 죽고 싶다]라면서 느닷없이 항소취하했다. 

이에 대해서 변호인[공소 취소무효다]라고 주장하면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도쿄 고법 형사4부는 [피고인 O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라고 1976년 12월 16일 기각 결정을 내린다. 이로써 1977년 4월 16일에 정식으로 사형확정된다.


<일본 공영주택의 모습, 층간소음벽간소음에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형수 O(현재 91세)2018년 10월 시점에서 도쿄 구치소에 수용되고 있지만 2019년에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고, 재심 청구도 확인되지 않았다. 사형수 O는 범행 사실에 관해서 누명의혹이 없는 사형수로, 2019년 시점에서 일본 최고령 사형수다. 피고인 O는 [자신이 소리에 대해서 병적으로 민감하다]라고 자각은 있었지만,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1977년 2월 9일[나야말로 소음 공해의 피해자]라는 자세를 고수했고, 동시에 피고인 O의 진술·소음 피해자 등에 의한 살해당한 피해자소음 가해자라고 판단한 탄원 활동으로 인해서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검찰은 오히려 비난을 받았고, 소음 공해 문제일본 사회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60~70년대 일본고도 경제 성장의 혜택으로 서민들의 넉넉해지면서, 이런 식의 공동주택에서는 소음 피해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특히 [피아노 공해]란 단어조차 생겨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사회 전체소음 피해자고충을 들어주게 되었고, 이후로 건축되는 공공주택바닥 두께150mm로 기준을 늘렸다. 그리고 업라이트 피아노에는 약하게 내는 장치가 설치됐다. 

이 사건 이후, 소음 등에 의한 사건이나 소송빈발하면서 많은 전문가는 이 사건을 [일본인의 소음에 대한 생각이 극적으로 변화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1. 旧制中学校: 2차대전 패망 전까지 일본 본토와 조선 등의 국외 통치지역에 설치됐던 정규 인문계 중등교육기관이다. [본문으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