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에어 5191편 추락 사고(Comair Flight 5191)는 2006년 8월 27일, 컴에어 5191편(봄바디어 CRJ-100ER형)이 미국 켄터키 주 렉싱턴에 있는 블루 그라스 공항에서 이륙에 실패해서 추락한 항공 사고다. 원래 5191편은 오전 6시에 렉싱턴에서 이륙하고, 오전 7시 18분에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 사고로 승무원 3명, 승객 47명 중 49명이 사망했고, 부조종사만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남았다.
컴에어는 델타 항공이 조직한 통일된 운항 브랜드인 델타 커넥션에 참여했으며, 사고기에는 델타항공 5191편의 편명이 붙어 있었다. 대체로 미국 연방 교통 안전 위원회(이하 NTSB)보고서에서 사용된 명칭에 따라서 컴에어 5191편 사고로 불린다.
<사고기와 유사기종의 모습>
[항공기와 승무원]
- 기체: CRJ-100ER, 등록기호: N431CA
- 기장: 35세 남자(1999년 11월에 채용)
- 부조종사: 44세 남성(2002년 3월 채용)
- 승무원: 27세 여성(2004년 7월 채용)
- 승객: 47명
5191편에 사용된 기체는 캐나다 봄바디어 에어로스페이스社 CRJ-100ER형 (정원 50명, 등록기호 N431CA, 제조번호 7472)이며 캐나다에서 2001년 1월에 제조되었고, 1월 30일 델타 항공에 납품됐다.
비행자료기록장치 및 항공기 블랙박스의 초기 해석 결과에 의하면, 5191편은 렉싱턴 블루 그라스 공항에서 여객기 대부분이 이용하는 활주로 22(유효 길이 2,135m)에서 이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기장이 [활주로 22]이라고 복창하고 확인까지 했으면서, 정작 활주로 등이 점등되지 않고 길이도 1,067m로 매우 짧은 활주로 26에 진입했다. 이어서 기장은 이륙을 위해 부조종사에게 컨트롤을 넘겼다. 이때 5191편의 무게는 약 49,000파운드(22,000kg)로, 5191편이 무사히 이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79m의 활주 거리가 필요했을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박스에는 부조종사가 "Dat is weird with no lights(활주로등이 켜지지 않은 것은 이상하군요)."라고 활주로가 점등되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음성이 기록되어 있었지만, 기장은 거기에 대해서 "Year(그려)."라고 짧게 대답만 했을 뿐, 이륙을 중단하려고 한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결국 5191편은 이륙을 준비하였고 활주로에서 부양하기 직전에는 137노트(254km/h)까지 가속했다. 그리고 기체는 공항 경계 울타리를 접촉했지만, 그 앞 철책선으로 직격은 모면하였고 근처 지면과 접촉한 뒤에 완전히 부양했다. 곧 기체는 몇 그루의 나무에 접촉하면서 몸체와 꼬리가 분리되었고, 활주로에서 800m 이내 지점에 추락하면서 폭발에 휩싸였다. 기체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크게 파손되었다.
NTSB의 조사에서는 조종사의 실수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관제사는 수면 시간이 불과 2시간으로, 원래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업무를 인원 부족으로 혼자 작업했다고 보도되면서 실제로는 근무 체제 쪽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의 목소리도 있었다(그런데 그러기에는 조종사의 실수가 너무 컸다).
<사고 당시 여객기의 경로, 파란색 화살표가 원래 진입했어야 할 [활주로 22]다. 그러나 사고기는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활주로 26]으로 진입해버렸다. X 표시는 진입 금지>
상기한 대로 5191편에 탑승한 승객 47명 전원과 승무원 3명 중 2명이 숨졌다. 컴에어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기장은 이 기종의 조종에 아주 숙련돼 있었다]고 말했다. 부조종사는 렉싱턴 파예트 카운티의 경찰관과 공항 경비원들에 의해 잔해 속에서 구출됐다. 부조종사를 구출한 경찰관은 이때 팔에 화상을 입었고, 부조종사는 2006년 8월 29일까지 켄터키 대학 부속 병원에서 수술과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왼발을 절단하였고 뇌에도 외상을 입었으며 후에 공항과 유도로 조명을 설계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컴에어 사는 8월 29일, 5191편의 탑승자 명단을 공표했다. 탑승자 중에는 과거 미국 프로야구 구단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던 조나단 후커(Jonathan Walton “Jon” Hooker, 1978~2006)와 그의 아내(Scarlett Catherine Parsley Hooker, 1982~2006)가 포함됐다. 두 사람은 신혼부부로 사고 전날, 결혼식을 올리고 캘리포니아주로 신혼여행을 가는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5191편의 승객 대부분은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각자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탈 예정이었고, 사고 발생 당시 애틀랜타 국제공항에는 승객의 가족이나 친구 등, 관계자는 아주 조금밖에 없었다. 이 사고로 누나를 잃은 한 유족은 [애틀랜타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다른 편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애틀랜타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불과 12시간여 만에 비행기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후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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