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7부)

!@#^& 2019. 4. 15. 02:17

<포클랜드 전쟁 당시 제3 코만도 여단 참모의 이웬 사우스비 테일여 소령(BBC)>


<영국군의 상륙 준비>


- 4월 30일부터 SAS· SBS의 총 10팀이 포클랜드 제도 곳곳에 잠입하며 상륙 후보 지점의 지리적 정보 수집에 나섰다. 또, 제3 코만도 여단 참모의 '이웬 사우스비 테일여(Ewen Southby-Tailyour)' 소령은 이전에 포클랜드 해병대 선발대의 대장이었던 시절에, 여가를 이용하여 해안선을 빠짐없이 요트로 조사해서 리포트를 작성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5월 10일, 이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상륙 지점은 샌 칼로스(San Carlos)로 결정되었다. 이날 제317 임무 부대 지휘관 '존 필드 하우스(John Fieldhouse, Baron Fieldhouse - 1928~1992)' 대장은 상륙 부대인 제317.1 임무군 지휘관이자, 제3 코만도 여단장인' 톰프슨 준장(Julian Thompson - 1934~)'에게 포클랜드로 상륙 준비를 지시하였다. 그리고 5월 12일 예하 부대에 '작전 명령 3/82'로서, 수륙 양용 작전인 '서튼 작전(Operation Sutton)'을 발령했다.

또한 제317.1 임무군은 제3 코만도 여단으로 편성되었다가, 이 여단만으로는 병력에 불안이 있다며 육군의 제5보병여단에서 제2, 3공수 대대가 추출되어 증원되고 있었고, 5월 3일에는 여단 자체가 파견하게 되었다. 이들 2개 여단을 통일 지휘하는 조직으로 '포클랜드 제도 육상군(LFFI)'이 세워지면서 그 지휘관으로서는 '무어(Sir John Jeremy Moore - 1928~2007)' 해병대 소장이 임명되었고, 지휘권은 5월 20일 발효되었다. 서튼 작전에서는 무어 소장과 제5보병여단의 도착 전에, 제3 코만도 여단에 의해서 교두보를 확보하고 여기에 제5보병 여단을 투입하며 전과를 확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 해리어는 공중전에서의 손해는 없었지만, 5월 4일 구스 그린을 공격 중이었던 기체가 대공 포화로 격추되었고 또, 6일에는 레이더 콘택트의 수색을 향했다가 2대가 소식이 끊겨서, 한꺼번에 17대가 분산했다. 그러나 5월 18일에는 시 해리어 FRS.1의 예비기에 의한 제809비행대와 공군의 해리어 GR.3공격기의 제1비행대가 도착했다. 허미즈에는 6대의 해리어 GR.3과 4대의 시 해리어 FRS.1이 추가된 총 21대로, 인빈시블에는 4대의 시 해리어 FRS.1이 추가 탑재되어서 총 10대로 항공 모함 전투 군으로서 총 31대가 투입되었다. 이로써, 근접 항공 지원・ 항공 저지는 해리어 GR.3의 배당을 받아서 시 해리어 FRS.1은 CAP(Combat Air Patrol, 전투공중초계)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포클랜드 제도 육상 군 사령관을 맡은 존 제레미 무어 경(britishempire)>

 

<페블 섬 습격(Raid on Pebble Island)>


아르헨티나 해군은 4월 24일, 서(西)포클랜드 섬 바로 북쪽에 있는 페블 섬의 비행장에 T-34C 경공격기 4대를 배치했다. 공군도 5월 1일, 시 해리어 공격을 받아 구스 그린에 배치했던 푸카라 공격기 12대를 이곳으로 이동시킨다. 

상륙 지점이 샌 칼로스로 결정된 영국군에게 이곳에서 약 40㎞밖에 떨어지지 않은 페블 섬에 적기가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5월 10일, 작전 회의에서 우드워드 소장은 SAS에 페블 섬의 비행장 공격 명령을 내렸다. SAS는 우선 공격전에 정찰을 먼저 시행하고, 총 작전 기간은 대략 3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드워드 소장은 15일까지 작전을 실행하도록 요구를 해서, SAS는 그날 심야에 정찰 부대를 출발시켰다.

악천후 때문에 실제 정찰은 13~14일이었는데, 이 결과를 바탕으로 14~15일 밤에 본대가 진입하고 항공기에 폭탄을 설치하고, 구축함 글러모건은 함포 사격을 시행했다. 그 공격으로 이 섬에 배치된 항공기는 모두 파괴되었으며, 연료와 탄약도 불길이 치솟아서 이후 이 비행장을 아르헨티나군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SAS는 2명만 다쳤고 나머지는 무사히 귀환하였다.


<아르헨티나 A-4 공격기의 공격을 받은 영국 구축함 앤텔로프의 불발탄이 폭발하는 장면(historyextra)>


<아르헨티나의 반격>


[5월 21일]


5월 4일 구축함 셰필드가 피격을 당하자, 엑조세의 위협을 피하려고 2척의 영국 항모는 좀 더 안전한 후방으로 배치되었다. 만일 2척의 항모 중 하나를 잃을 경우, 영국군의 작전 전체에 심각한 차질을 주기 때문에 이 조치는 부득이했다. 하지만 항공 모함을 후방으로 배치한 탓에, 해리어 상륙 지역에서의 작전 가능 시간은 30분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수륙 양용 부대와 함께 샌 칼로스만으로 들어간 호위함에 병력 방어를 의존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항공공격이 예상되자, 함정은 최고도의 경계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5월 21일 13:25(Z)분에 항공 공격이 개시되었고 무려 45회에 달하는 소티(Sortie: 항공기나 함정 또는 부대와 같은 단일의 군사 유닛을 확장하거나 파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군사 용어)가 있었다. 수륙 양용 함정의 호위를 위해서 7척의 함정이 포클랜드 수도(水道) 및 샌 칼로스만으로 들어갔지만, 아덴트가 침몰했고 플리머스와 야머스 2척을 제외한 다른 모든 함이 피해를 봤다.

그러나 이처럼 영국군에 손해를 끼치면서도 아르헨티나군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호위함정을 공격의 주목표로 여겨, 짐을 내리고 있는 배나 야적된 무기, 탄약, 자재 등은 간과하고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상륙부대가 아직 방공망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는데 특히 제3코만도 여단에는 행운이었다. 또, 아르헨티나군의 손해도 적지 않아서 공군기 10대(대거 5대, A-4Q 3대, A-4C 2대)를 잃고 이외의 전투기도 무장화기에 의한 피해를 보아서 수리 없이는 작전을 벌일 수 없는 상태였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A-4B의 공격을 받고 격침된 영국군 구축함 코번트리(coventrytelegraph)>


[5월 23~25일]


5월 23일에는 아르헨티나군의 A-4 공격기가 아덴트와 교체된 21형 호위함인 앤텔로프를 공격, 500kg 폭탄 2발을 명중시켰다. 이는 불발탄이었지만 폭탄 제거 작업 중에 폭발하는 바람에 엔텔로프는 다음날 24일에 침몰한다.

5월 25일에는 아르헨티나 공군 제5그룹 A-4B가 42형 구축함 코번트리와 22형 구축함인 브로드 소드를 공격, 그중 코번트리에 폭탄 3발을 명중시켰고 격침에 성공한다.

그 직후, 아르헨티나 해군 제2항공대의 쉬페르 에탕다르가 영국 항모 기동 부대를 공격하고 엑조세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영국 해군 함정은 엑조세의 탐지에는 성공했으며, 각 함정의 차프 로켓과 디코이(Decoy)를 탑재한 링스헬기로 엑조세에 대항했다. 그러나 엑조세 1발이 영국 해군에 징용되었던 컨테이너선 '애틀랜틱 컨베이어(SS Atlantic Conveyor)'에 명중, 배는 대파되어 침몰하였다.

이 선박은 항공기의 수송에 사용되고 있었는데 시 해리어와 해리어는 이미 항공 모함으로 옮겨져서 무사했으나, 헬리콥터 다수(치누크 3대, 웨식스 6대, 링스 1대)를 잃었다. 그래서 이날 예정되었던 헬리콥터 수송 작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공군의 치누크 수송 헬기 4대로 편성된 제18비행대는 격침 전에 발함한 1대를 제외한 3대와 정비 자재 및 예비 부속품의 대부분을 잃어서 지상 부대는 낙담했다. 그래도 피해를 면한 1대(Bravo November)는 고군분투하면서 전쟁 종결까지 탄약과 야포의 수송, 영국군 병사, 아르헨티나 포로 수송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활약했다.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42형 구축함 엑세터(위키)>


[5월 30일]


5월 30일 오후, 아르헨티나군은 마지막 엑조세 미사일 1발을 발사하고 영국 기동 함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해군 제2항공대의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 2대와 공군 제4그룹 A-4스카이호크 공격기 4대로 편성된 공격대는 영국 함대에 접근했고, 영국 함대 측은 이를 레이더에 포착했다. 

레이더에 포착된 쉬페르 에탕다르는 전속력으로 함대로 접근하자 미사일을 발사하고 2대 모두 퇴각했다. 직후에 4대의 스카이호크 공격기가 바톤터치 하듯이 영국군 함대로 돌격했다. 이때 공격 대상은 함포 사격과 특수 부대 상륙을 위해서 주력 함대에서 떨어져있던 42형 구축함 '엑세터(HMS Exeter [D89])'와 21형 프리깃 '어벤저(HMS Avenger [F185])'였다. 

두 함은 레이더 탐지후, 차프 로켓을 즉각 발사해 대공포에 의한 방공을 실시했다. 날아온 엑조세는 이 때 공중에서 격파되었으며 엑세터는 돌격한 스카이 호크 부대를 시 다트 대공 미사일로 요격, 2대를 격추하였다. 남은 2대의 스카이 호크는 양쪽함을 폭탄으로 공격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이 공격에 대한 영국 측의 손해는 없었지만, 공격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측 조종사는 항공 모함에 미사일을 명중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어쨋든 자기들만의 논리로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에는 인빈시블의 킬마크가 새겨졌다. 더하여 아르헨티나 정부는 신문에 연기를 내뿜는 항공모함 사진까지 올려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합성사진이어서 영국 정부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다고 한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신문기사를 읽고있는 영국 시민(BBC)>


<8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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