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 여객기 추락 사고(Катастрофа Як-42 под Ярославлем)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거점를 둔 항공사, 야크 서비스(Yak-service)가 운행하던 Yak-42D가 2011년 9월 7일 추락한 항공기 사고다.
사고기에는 1959년 창단한 러시아의 프로 아이스하키팀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Локомотив Яросла́вль)]가 민스크 아레나에서 열릴 예정이던 [HC 디나모 민스크(Дина́мо-Минск)]와의 KHL 1개막전 원정의 전세기였다. 사고기는 투노시나 공항을 이륙 활주 후, 상승하지 못하고 활주로 앞에 있던 진입등(ALS, Approach Lighting System)에 접촉하였고 약 1㎞ 떨어진 지점에서 현지 시각으로 16시 05분 추락했다.
이 사고로 선수나 코치 등 스태프를 포함한 승객 36명과 승무원 7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 선수인 Alexander Galimov와 정비사만 구조되었다. 그 후 정비사는 회복했지만 Galimov는 9월 12일 아침, 후송했던 병원에서 사망하면서 사고 희생자는 총 44명으로 마무리된다.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International Ice Hockey Federation, IIHF) 회장인 르네 파셀(René Fasel, 1950~)은 [우리의 스포츠 역사 중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애도를 표했으며, 이 사고로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은 KHL리그 2011-12시즌 참가를 취소하였으나 그 대신, 2011년 12월에 개최한 러시안 메이저 리그(VHL)에 참가하면서 자동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로 결정하였다.
<사고기의 추락 전 모습 (2006년)>
사고 당일인 9월 7일, 투노시나 공항 날씨는 양호했다. 야크 서비스 9633편은 활주로 05에서 유도로 5로 진입하는 후방 300m(980ft) 남긴 지점에서 이륙 활주를 시작했는데, 활주로 길이는 3,000미터(9,800ft)이며 2,700미터(8,900ft) 지점에서 이륙 활주하였다. 9633편은 상기했듯이 활주로 05에서 이륙에 실패하면서 활주로 끝에서 약 450m 앞에 있는 진입등에 접촉한다. 항공 위원회의 사고 보고서에는 [시속 230km까지 가속했지만, 이륙에 실패했고 그대로 활주하면서 활주로 끝 400미터(1,300ft)지점에서 비행기 머리 부분이 올라갔으나 사고기가 상승한 것은 지표면에서 불과 6미터(20ft)에 불과했다] 라고 보고되어있다.
접촉 후 활주로 끝에서 약 1㎞ 지점, 볼가 강 합류 지점 200m 앞의 투노시나 강기슭으로 추락했다. 추락의 충격으로 꼬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분해하였고, 꼬리는 강으로 몸체는 강 건너 육지로 날아갔으며 그 잔해는 활주로 끝에서 약 2㎞에 걸쳐 흩어졌다. 사고당시, 조종사는 이륙부터 추락까지 관제사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사고기는 활주로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활주를 했지만, 이륙 고도를 얻지 못했고 이러한 장면이 공항 감시 카메라에 녹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여객기가 장애물에 접촉한 후에 화염에 휩싸였다고 설명했으며, 추락 지점이 이륙 방향과 다른 것은 접촉 때문에 왼쪽으로 선회하면서 지면에 격돌했기 때문이다. 다른 목격자는 추락 직전에 엔진이 조용했다고 증언했으며, 기타 보도로는 추락 전에 나무와 부딪힌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사고기 잔해의 모습>
2011년 11월 2일 주제항공위원회는 [ 2조종사가 발밑에 있는 브레이크 페달 조작을 잘못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결론으로 언론인들에게 발표한다. 한편, 유명한 항공 사고 관련 TV 프로그램인 항공사고수사대에 의하면 기장과 부조종사 모두 베테랑 조종사였지만 해당 여객기의 조종 시간은 극히 적었으며 훈련시간도 부족했다. 게다가 부조종사는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어서 감각이 무딘 상태였다.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Yak-40과 다르게 Yak-42는 브레이크 페달의 모양부터 달랐으며, 부조종사가 Yak-40를 운항할 때 감각으로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두었고 Yak-42에 제동이 걸렸다. 그것을 모른 채 이륙 활주를 시작하는 바람에 이륙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륙 결심속도를 넘었는데, 활주로를 지나쳐서도 이륙하지 않자 조종석 안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기장은 이 시점에서 이륙 중지를 시도했으나, 기장의 상사에 해당하는 부조종사가 이에 격노하는 바람에 기장은 3거역할 수 없었고 다시 이륙을 시도했다. 사고기는 가까스로 이륙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기수를 올리면서 충분한 양력을 얻지 못했고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추락하고 말았다.
<사고로 숨진 프로 아이스하키팀 추모비에 헌화하는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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