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9월 6일> 1901년 9월 6일 -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

!@#^& 2019. 9. 6. 03:07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 저격 순간을 묘사한 그림>


-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William McKinley assassination)은 뉴욕주 버펄로의 템플 오브 뮤직(Temple of Music)에서 1901년 9월 6일 발생한 사건이다.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1843~1901) 대통령은 버펄로에서 개최된 팬아메리칸 박람회에 출석, 무정부주의자리언 촐고츠(Leon Frank Czolgosz, 1873~1901)에게 피격당한다. 매킨리는 상처에서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6일 후 용태가 급변하면서 9월 14일사망하였고 부통령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매킨리는 암살된 미국 대통령 4명(링컨, 가필드, 매킨리, 케네디)3번째로 매킨리 암살 후, 연방의회미국 시크릿 서비스[각주:1]에 미국 대통령 신변 경호를 공식적으로 부과하게 된다.


<윌리엄 매킨리 前 미국 대통령>


매킨리와 영부인은 [대통령의 날]로 알려진 9월 5일, 박람회장에 도착한다. 그날 예정된 행사에는 사적인 환영회와 군을 검열하는 관병식 및 매킨리의 연설이 포함되었는데 이날은 순조롭게 지나갔다. 그리고 6일 아침, 매킨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하고 오후로 예정된 공개 환영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박람회장으로 돌아갔다. 

당시 비서관조지 B. 코텔류(George Bruce Cortelyou, 1862~1940)는 이와 같은 공개 환영회 자리를 대통령의 안전위협하는 것 같아서 여간 개운치 않았다. 코텔류는 대통령에게 환영회는 제외할 것을 제안했지만, 매킨리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아무도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 바라지 않을 걸세]라고 쿨하게 거절했다. 결국 오후 3시 30분, 매킨리는 코텔류와 함께 박람회장에 도착하였고 당시 뉴욕시 변호사 협회 회장인 존 G. 밀번(John George Milburn, 1851~1930)의 안내를 받으며 환영회가 열리는 템플 오브 뮤직으로 들어섰다. 

한편 시크릿 서비스는 그날도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서, 11명으로 구성된 경호팀이 군중감시하고 있었다. 1865년, 위조지폐 방지를 위해서 설립된 시크릿 서비스는 1901년 시점에서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공식 임무는 없었다. 하지만 시크릿 서비스는 이미 1894년 이후로 매킨리의 전임자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Stephen Grover Cleveland, 1837~1908) 때부터 비공식적으로 호위 임무를 맡고 있었다. 매킨리는 여유롭게 코텔류와 밀번 사이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 군종 속에 바로 리언 촐고츠가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템플 오브 뮤직홀로 들어서는 매킨리 대통령>


촐고츠는 1873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로 잠시 일했지만 1901년 시점으로 이미 몇 년째 일정한 직업 없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매킨리 암살 몇 년 전부터 무정부주의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1901년 5월에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당시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강연회에 참석했다. 

6월 12일 골드만의 집이 있는 시카고로 찾아가서 골드만이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기까지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 때문에 골드만은 매킨리 암살 관여를 의심받아서 짧은 기간 갇혔다 풀려나기도 했다. 촐고츠의 9월 7일 증언에서 8일 전에 시카고에서 매킨리가 박람회참석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후, 바로 기차를 타고 버펄로로 가서 방을 빌렸다고 한다. 촐고츠는 9월 5일 대통령의 날 축제에도 나가서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다. 

그때 대통령을 저격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접근하지 못해서 실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음날에도 박람회장으로 찾아가서 대통령과 악수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에 섰다. 이때 갖고 있던 권총을 감추려고 흰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시크릿 서비스는 촐고츠가 앞사람과 붙어서 나란히 서 있었기에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템플 오브 뮤직의 모습>


매킨리가 10분악수를 하고 있을 때 코텔류가 을 닫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박람회장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독일의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트로이메라이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후 4시 7분, 촐고츠는 대통령 앞으로 나섰다. 매킨리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자 촐고츠는 즉시 2번 방아쇠를 당겼다. 

이때 촐고츠 바로 뒤에 서 있던 제임스 파커라는 남자가 그의 얼굴을 때리고 바닥으로 쓰러트렸다. 시크릿 서비스의 조지 포스터는 촐고츠에게 뛰어들었고, 동료에게 [총을 잡아! 총을 잡으라고!] 라고 외쳤으나 동료인 갤러거는 대신 촐고츠의 손수건을 잡았는데, 이 붙어 있었다. 대신 매킨리의 특수 임무 부대원프랜시스 오브라이언 일병이 권총을 챙겼다. 매킨리는 경호팀이 촐고츠를 끌어내는 동안에도 아직 서 있었는데, 누군가가 촐고츠를 다시 때리자 매킨리는 [아무도 그에게 위해를 가하지 마라!]라고 외쳤다. 

저격으로부터 11분 후, 구급차가 도착하였고 매킨리는 박람회장 내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매킨리에게 쏜 총알은 2발이었는데, 1발은 매킨리의 늑골을 스쳤고 얕은 상처를 만든 것으로 그쳤다. 그러나 2번째 총알이 매킨리의 복부로 파고들어가, 를 관통하고 신장췌장을 손상하고 근육의 어딘가에서 멈췄다. 의료진은 총알을 찾지 못했고, 몸속에 남긴 채 일단 상처봉합한다. 이때 총알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랐을 X선 검사기박람회 근처에 있었지만, 웬일인지 쓰이지 않았다. 매킨리는 진통을 위해 사용된 에테르에 의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치료를 위해 존 밀번의 집으로 옮겨졌다.


<당시 범인은 이런 식으로 손수건으로 총을 덮어서 매킨리에게 발포했다. 그래서 손수건에 불이 붙었다>


촐고츠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주장자백을 하고 있을 때, 매킨리는 아직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7일 토요일, 매킨리의 상태는 좋아졌고 느긋하게 대화까지 나누었는데 그의 아내가 면회를 허락받았고 매킨리는 코텔류에게 [내 연설은 마음에 들었나?]라고 농담을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의 병상에서 9월 8일 보낸 속보에서는 대통령은 쾌적하게 보냈고, 아침때 상태가 좋으며 상쾌하게 잘 쉬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 

사건을 접한 매킨리 내각의 각료 대부분이 버펄로로 급하게 향했고, 옛 친구이자 前 선거 대책 본부장이었던 마크 한나(Mark Hanna, 1937~1904) 상원 의원도 달려갔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부통령은 대통령이 맞았다는 신고가 들어온 9월 6일 당시, 버몬트주에서 오찬회에 참석했었는데 소식을 들은 루스벨트 부통령은 즉시 버펄로로 향했으며 다음날 도착했다. 그러나 10일까지 매킨리가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으며, 루스벨트가 있는 것은 이제 불필요하게 느껴져서 홍보를 위해서라도 그 날 버펄로를 떠나기로 했다. 루스벨트는 가족이 먼저 가 있던 애디론댁 산맥[각주:2]으로 가서 휴가를 즐기려고 했고 마찬가지로 마크 한나와 각료들도 위기는 지나갔다고 생각, 버펄로를 떠났다.

그런데 12일 늦게 대통령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두통메스꺼움을 호소하면서 맥박수는 증가했고 빠르면서 약했다. 매킨리는 을 흘리며 침착함이 사라졌지만, 아직 의식은 뚜렷했다. 다음 날 아침 속보에서는 [대통령의 병세가 위독하며, 심각한 사태로 생각된다] 라고 말했다. 이날은 하필 13일의 금요일로 매킨리는 급속히 쇠약해졌고, 한나와 각료들은 다시 매킨리에게 돌아갔다. 약한 맥을 개선하기 위해서 아드레날린산소를 줬으나 매킨리는 의료진에게 [이제 필요 없네 제군. 교회 사람들을 부르는 게 좋겠네]라고 말했고, 점점 의식이 멀어지면서 찬송가의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Nearer, My God, to Thee)] 속의 말만 중얼거렸다. 

오후 6시 15분 속보로 [대통령의 의사들은 대통령의 상태가 매우 위급하다는...이것이 회복되지 않으면 (서거는)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라고 발표했다. 비탄에 잠긴 한나 상원 의원은 [대통령 각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윌리엄! 나를 알아보겠나요?] 라고 애타게 외쳤다. 그러나 매킨리 대통령은 감염저로 9월 14일 오전 2시 15분에 숨을 거두었다.


<피격사건이 발생한 해당 홀의 내부 모습. X 표시를 한 곳이 매킨리 대통령이 피격을 당한 곳이다>


9월 13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부통령과 그 가족은 마르시 산에 있는 호수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후 1시 반공원 보호관이 급하게 1통전보를 가져왔는데, 루스벨트는 그 전령의 모습을 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다. 후에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나쁜 소식을 가져온 것임을 알았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루스벨트는 이 다 되어서 출발, 마차로 마르시 산에서 내려왔다. 중간에 마차를 갈아타면서 어둠 속을 빠르게, 길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2시간 후, 노스 크릭의 기차역에 도착한 것이 14일 오전 5시 22분으로 그곳에서 국무장관 존 헤이(John Milton Hay, 1838~1905)의 전보를 받았다.

[대통령은 오늘 새벽 2시 15분에 서거하였다]

버펄로에는 오후 1시 반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서 일단 그의 집으로 향했다. 매킨리의 시신이 안치된 존 밀번의 집에서 1마일(1.6 km) 떨어진 곳이었는데, 루스벨트는 일단 먼지를 털어내고 밀번의 집으로 조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코텔유 및 그곳에 있던 정부요인 대부분을 만났지만, 대통령의 시신은 부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 루스벨트는 그곳에서 취임선서 의식을 행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루스벨트는 [부적절하다]라고 생각해서 친구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 집에서 오후 3시 반, 제26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참고로 루스벨트는 43번째 생일에서 겨우 6주일이 지났을 때 대통령직승계받았는데, 지금까지 미국 역대 최연소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매킨리 대통령의 장례행렬>


촐고츠는 대통령이 죽은 뒤 불과 9일 만9월 23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의 증언이틀을 요구하며, 매킨리를 치료한 의료진과 저격 당시 여러 목격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변호사 로란 L. 루이스(Loran L. Lewis, 1825~1916)는 증인을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루이스는 배심원에 대한 진술 중에서 촐고츠는 변호사와 이야기협력을 거부하고 있음을 전했고, 피고의 인정하면서 [이 사건에서 논의 또는 고려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그 행동제정신에 의해 행해졌는지 여부이다. 만약 제정신이라면, 피고는 살인죄유죄다. ...만약 광기 있는 자의 행동이라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심원1시간 반 만에 촐고츠에게 유죄를 내렸고, 9월 26일 사형 선고받았다. 그 뒤 처형을 기다리기 위해서 오번 주립 교도소(Auburn Correctional Facility)에 수용된 촐고츠는 깊은 반성을 표하며,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달라. 그것은 잘못이었고 틀렸다.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져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가 대통령을 죽인 것을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뒤늦은 후회를 하였고, 촐고츠는 1901년 10월 29일전기의자에서 처형된다.

매킨리 암살 이후 연방의회는 대통령의 신변 경호 문제를 거론했으며 1901년 가을, 비공식적으로 시크릿 서비스에 대한 대통령의 신변 경호를 관리하면서 1902년까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24시간 경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공식이 아니었으며, 의회의 한 사람은 미국 육군이 대통령의 호위를 맡도록 권장했다. 그 뒤 의회가 시크릿 서비스를 대통령의 신변 경호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지정하는 법률을 통과 한 것은 1906년이었다.




  1. United States Secret Service: 1865년 창설된 미국 비밀경호국은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의 미국 연방 정부의 법 집행 기관이다. 이 기관은 대통령 경호, 위조지폐 방지/수사, 금융과 관련된 사이버 범죄 수사 등을 수행한다. [본문으로]
  2. Adirondack Mountains: 미국 뉴욕주 북부에 있는 산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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