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폐돼있던 호텔에서 빠져나오는 무솔리니>
- 그랑사소 습격(Gran Sasso raid)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9월 12일, 독일군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시행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1883~1945) 구출 작전이다. 실제 독일군 측 작전명은[Unternehmen Eiche]로, Unternehmen는 [사업·작전], Eiche는 [떡갈나무]를 뜻한다.
이 작전은 아돌프 히틀러의 특명에 의해서 독일 공군의 쿠르트 슈투덴트(Kurt Student, 1890~1978)의 지휘하에 시행된 것으로,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맥의 능선에 있는 그랑사소 호텔에서 구출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극복하고 상처 하나 없이 무솔리니의 구출에 성공했다.
<1943년 당시, 그랑사소 호텔의 모습>
1943년 7월 25일, 이탈리아 왕국의 총리였던 무솔리니는 파시즘 대평의회가 무솔리니의 1총리 퇴임을 요구하는 의안을 채택하면서,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이자 총리 임명권자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Vittorio Emanuele III, 1869~1947)로부터 해임을 선고 받은 무솔리니는 총리 자리를 빼앗기고, 동시에 국왕이 동원한 이탈리아의 국가헌병인 카라비니에리에게 체포, 구속됐다.
이에 대한 나치 독일의 대응은 재빨랐다. 그날 당일, 무솔리니의 실각에 관한 정보를 받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는 이탈리아 전선의 완전한 붕괴를 염려한 것 뿐만 아니라, 같은 파시즘의 동지인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 무솔리니가 체포된 다음 날에 독일 공군의 쿠르트 슈투덴트에게 무솔리니 구출 작전의 입안 및 결행을, 무장 친위대의 오토 슈코르체니(Otto Skorzeny, 1908~1975)에게는 구출 후 보호를 지령했다.
무솔리니를 총리직에서 해임한 에마누엘레 국왕은 피에트로 바돌리오(Pietro Badoglio, 1871~1956)를 무솔리니의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체포 구속한 무솔리니의 신병을 인도받은 바돌리오 정부는 반체제 파에 의한 탈환을 막기 위해, 무솔리니를 카라비니에리의 경비 아래서 이탈리아 각지로 자주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슈투덴트는 라디오 방송의 암호 해독 등, 역량을 집중한 조사 결과를 통해서 1943년 8월 28일 이후에 무솔리니가 그랑사소의 산중, 코르노그란데 능선의 남쪽 능선상에 위치한 임페라토레 평원(Campo Imperatore)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위치한 동명의 그랑사소 호텔에 유폐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임페라토레 평원의 모습.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관광지 중 하나다>
세부 작전 계획이 마련됐지만, 무솔리니가 유폐된 호텔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능선의 좁은 장소에 있으며 호텔까지 오솔길에서 산을 크게 도는 형태로 정비된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카라비니에리의 엄중한 경비라는 어려운 조건을 뚫어야 했다. 해당 작전은 무솔리니의 신병을 무사히 확보하기 위해서 호텔에 은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으며, 독일군에게 아펜니노산맥(Appennini)의 기슭에서 육로로 공격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항공기를 투입하고 싶어도, 부근에 수송기가 착륙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없었다. 공수부대가 낙하산 강하를 시도하는 경우에는 산의 능선이라고 하는 지형 특성상, 불어닥치는 강풍이 좁은 범위에서 집중되면서 강하도 곤란했고 호텔의 서쪽은 로프웨이가 설치된 급경사의 지형으로, 매우 위험한 장소였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정리된 작전 계획은 독일 공군 소속인 하랄드 모르스(Harald-Otto Mors, 1910~2001) 소령을 대장으로, 강하 독일 경보병을 주력으로 정하였고 구출 후에는 무솔리니를 보호하기 위한 인물로 슈코르체니를 비롯한 소수의 무장 친위대원 및 수비 측이 저항했을 때의 설득자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군의 장성, 페르난도 소레티(Fernando Soleti, 1891~1978)를 포함하였으며, 특공대를 글라이더로 호텔 부근에 직접 하강시킨 뒤 무솔리니 구출 후에는 당시 세계 최초의 양산 헬기인 FA 223(Focke-Achgelis Fa 223 Drache, 포케-아크겔리스 Fa 223)로 무솔리니를 독일군의 지배 지역까지 수송, 글라이더로 강하했던 부대는 기체를 버리고 육로로 독일군의 지배 지역까지 철수한다는 고생길 훤한 작전이었다.
<세계 최초의 양산 헬기 FA 223, 그러나 무솔리니 구출 작전에는 사용되지 못했다. 이유는 후술>
1943년 9월 8일,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추축국에서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바돌리오 정부가 무솔리니를 연합국에 2넘겨줄 것이 확실시되자, 나치 독일은 한시가 급해졌다. 그런 가운데 작전의 결행일은 1943년 9월 12일, 출격 예정 시간은 오전 6:00로 결정되면서 출격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작전 부대와 기자재는 로마의 남쪽에 있는 프라티카 디 마레(Pratica di Mare)의 비행장으로 집결하였다.
그러나 작전 결행 날, 독일군 특공대가 타야 할 수송 글라이더인 DFS 230의 도착이 늦었기 때문에 출격을 이날 오후로 연기했고, 이동 중에 FA 223이 파손되는 바람에 독일 공군 사령부는 높은 단거리 이착륙 성을 가진 소형 연락기인 Fi 156(피젤러 Fi 156 슈토리히, Fieseler Fi 156)을 대신 보내기로 했다.
13:00, 독일군 특공대는 헨셸 Hs 126에 예인된 12대의 DFS 230 글라이더를 타고 출격, 뒤를 쫓는 형태로 Fi 156도 출격했다. 그리고 임페라토레 평원의 상공에서 예항기와 분리된 DFS 230은 8기가 착륙에 성공, 그중에는 호텔의 목전에 착륙한 것도 있었다. 착륙에 실패한 글라이더에서 약간의 부상자가 나왔지만, 무사히 강하할 수 있었던 독일 공군의 공수부대 일대가 무솔리니가 유폐되어 있던 호텔로 돌입, 호텔을 수비하고 있던 카라비니에리는 글라이더로 강하한 독일군 부대에 선수를 빼앗겨 순식간에 호텔을 완전히 포위되는 바람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 후, 강하부대는 뒤에서 돌입한 무장 친위 대원과 함께 호텔 내를 수색하면서 단 한 발의 총탄도 발포하지 않고, 유폐되어 있던 무솔리니의 신병을 무사히 확보했다. 그들이 무솔리니의 신병을 확보할 즈음에 다른 부대는 하산에 필요한 로프웨이를 확보하고 있었고, 파손된 FA 223 대신 출격한 Fi 156이 호텔 바로 옆 평지에 착륙했고, 구출 후 무솔리니의 보호를 위해 현지에 수행하고 있던 무장 친위대의 오토 슈코르체니는 무솔리니의 신병 인도를 받고, 무솔리니와 함께 Fi 156에 올랐다. Fi 156은 초과 중량이었지만 75m 정도의 활주에 무사히 이륙하면서 그랑사소를 벗어났다.
한편, 글라이더로 강하한 부대는 로프웨이로 하산하면서 예정대로 육로를 통해 독일군의 점령 지역까지 철수하였다.
<그랑사소를 탈출한뒤, 히틀러와 재회한 무솔리니의 모습>
이 작전은 어려운 조건을 모두 극복하고 요인을 구출한 성공적인 사례로서, 하늘을 통해 구출 부대를 보내는 대담함과 사상자를 한 명도 만들지 않은 완벽함으로, 전쟁 후에 그 극적인 사건을 다룬 소설, 연극, 영화 등의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작전 결행 직전인 1943년 9월 8일,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던 것으로부터 나치 독일은 이 작전으로 구출한 무솔리니를 국가 원수로 규정하는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연합군이 침공하지 않았던 이탈리아 북부 독일군 점령 지역에 수립하면서 전쟁을 계속했다.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과 이탈리아 왕국의 분열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까지 내전 상태에 빠지면서 파시즘의 역사에서도 이 작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슈투덴트는 이 작전의 진행형으로써 나치 독일을 배신한 이탈리아 왕국에 대한 보복의 의미로 이탈리아 국왕 일가 유괴계획도 세웠으나 실현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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