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펼쳐졌던 스털링 다리의 현재 모습>
- 스털링 다리 전투(Battle of Stirling Bridge)는 1297년 9월 11일,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1270~1305)와 앤드루 드 모레이(Andrew de Moray, 1265~1297)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이 스코틀랜드 총독 서리 백작인 존 드 워렌(John de Warenne, 6th Earl of Surrey, 1231~1304)이 이끄는 잉글랜드군을 무찌른 전투로,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스코틀랜드가 처음으로 거둔 큰 승리였다. 이 전투로 스코틀랜드의 자신감은 크게 높아졌으며 윌리엄 월리스의 명성도 드높아졌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이자 수호자였던 윌리엄 월리스의 모습.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1305년에 체포, 사형에 처한다>
윌리엄 월리스는 1297년 5월, 잉글랜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그 과정에서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이에 호응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리더 중 한 명이 상대적으로 큰 영지를 보유하고 있던 앤드루 모레이였다.
스코틀랜드 총독이었던 워렌은 이미 60대의 고령이었고, 스코틀랜드의 1기후를 꺼려서 대부분 시간을 잉글랜드에서 보내고 있었다. 워렌은 이들의 반란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초기 대응이 늦었지만, 9월이 되면서 잉글랜드군을 거느리고 스코틀랜드 중부로 쳐들어갔다.
이에 대해 윌리엄 월리스와 앤드루 모레이의 부대는 서로 연합해서 스털링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잉글랜드군과 대치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총독이자, 스털링 다리 전투 당시 잉글랜드군을 지휘한 워렌 백작>
기병과 보병을 포함한 잉글랜드군의 추정 병력은 15,000~50,000명이었던 것에 비해, 스코틀랜드군은 기병 300명, 보병 10,000명 정도로 수적에서 잉글랜드가 매우 우세했다. 그래서 잉글랜드 측은 스코틀랜드군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고 있었으며, 다리는 기병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폭에 불과했다. 그래서 참모는 부대를 얕은 여울로 우회시키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워렌은 이를 기각하고 다리를 건너서 진군할 것을 명령했다.
스코틀랜드군은 잉글랜드군의 선봉이 다리를 건너기를 기다린 다음, 창으로 무장한 스코틀랜드 보병이 옆쪽에서 다리 밑으로 돌격, 적의 선봉과 후속 부대를 차단했다. 고립된 잉글랜드군 선봉은 당황한 나머지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 과정에서 지휘관을 비롯해 다수가 전사했다.
아직 다리를 건너지 않은 본대는 별다른 피해없이 다수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워렌 백작은 겁이 났는지 더 이상의 싸움을 포기, 다리를 파괴하고 베릭(Berwick)으로 철군했다.
<당시 전투를 묘사한 삽화>
이 승리로 윌리엄 월리스의 명성은 높아졌고, 곧 기사로 서임되면서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호자 및 왕국 군 지휘관]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앤드루 모레이는 이 싸움에서 입은 부상으로 몇 주 후에 사망한다.
이것은 상기한 대로 잉글랜드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첫 대승이자, 스코틀랜드의 자신감 회복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편에 섰던 스코틀랜드 귀족의 상당수가 반군을 맞았고, 잉글랜드는 지배지를 많이 잃었다. 그러자 당시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1세(Edward I, 1239~1307)는 프랑스와 플라망 지역의 전투를 중지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 이듬해 폴커크 전투로 이어진다.
- 참고로 당시 13세기 남아의 평균수명이 31.3세에 불과하였다. 당시 나이로 60대면 나름 오래 살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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