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23일> 1954년 4월 23일 - 미국의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 탄생

!@#^& 2019. 4. 23. 23:51

<출처: businessinsider.jp>

- 마이클 무어(Michael Francis Moore, 1954년 4월 23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텔레비전 프로듀서, 텔레비전 디렉터, 정치 활동가다. 원래 전미 총기 협회의 회원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19세 때 그 자격을 반납했다. 그 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평생회원이 되었다. 2002년에 [볼링 포 콜럼바인, Bowling for Columbine]으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Academy Award for Best Documentary Feature)을 받았다.

<출처: LinkedIn> 

제너럴 모터스(GM)의 생산 거점 중 하나였던 미시간주(Michigan) 플린트(Flint)에서,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나서 플린트 교외의 데이비슨(Davidson)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비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조립공, 작은아버지는 자동차노동조합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연좌 파업으로 유명했다.

무어는 14세 때 교구 학교에 입학하고, 이어서 데이비슨 고등학교(Davison High School)에 입학한다. 197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 같은 해 학교장과 교감의 해고를 요구하면서 교육 위원회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한다. 교장과 교감은 그 뒤 사직한다.

또 보이스카우트 최고위 이글 스카우트(Eagle Court of Honor, 미국 보이스카우트 대원 중 2%의 소수만 선발되는 보이스카우트 최고의 영예)로서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여러 위험과 문제를 지적하는 영화를 제작했다.

<출처: dogwoof.com>

미시간 대학(The University of Michigan) 플린트 캠퍼스를 1학년 때 중퇴하고, 22살 때 격주간지 'The Flint Voice (후에 The Michigan Voice로 바뀐다)'를 간행하였으나 그 뒤 폐간되었다. 1986년에 'Mother Jones' 잡지의 편집자로 캘리포니아에 이주했지만,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Sandinista National Liberation Front,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당)'의 인권 기록을 온화하게 비난한 폴 버먼(Paul Barman)에 대한 기사 게재를 거부했기 때문에, 불과 5개월 만에 해고된다.

1989년 고향인 플린트의 자동차 공장이 폐쇄되어서 실업자가 늘어난 것에 대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로저와 나(Roger & Me)'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다. 사전약속 없이 GM의 CEO, '로저 스미스(Roger Bonham Smith, 1925~2007)'에게 돌격 취재하는 방식으로 화제를 불렀다.

1994년, '캐나다 베이컨(Canadian Bacon)'을 감독, 냉전이 끝나고 적이 없어진 미국이 이웃인 캐나다를 무리하게 가상 적국으로 만든 코미디 영화에서 늘 바깥의 적을 필요로 하는 미국 정치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다(물론 실제로 캐나다는 미국의 최우방국[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중 하나로 실제로 그럴 일 없다.)

1997년에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빅 원(The big one)'에서는 미국 내 공장을 폐쇄하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생산 공장을 국외로 옮겨서 이익을 주는 다국적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전격적인 취재를 감행한다.

<출처: Amazon.com>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 녹색당(Green Party of the United States)'의 '랠프 네이더(Ralph Nader, 1934~)' 후보를 지원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부시(George Walker Bush, 1946~)'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 1948~)'의 접전이 알려지면서 '절대로 부시를 당선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고어에게 득표를 해줄 것을 호소했다. 

결과는 부시의 승리로 끝났지만,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사회적 소수자를 투표에서 퇴출하거나, 무효 가능성이 큰 해외 부재자 투표(주로 군인으로 공화당 지지자가 많다)가 유효하게 다뤄지는 등 숱한 부정이 있었다고 무어는 주장했다.

또, 플로리다에서는 재검표까지 이루어졌으나 미 연방대법원(공화당 정권이 임명한 판사가 다수)에 따라 재검표가 금지되어서 결국, 부시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무어는 부시를 미국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Bush, Governor of Texas(텍사스 주지사 부시)]라고 부르며 대통령 자리를 훔친 도둑의 두목(지도자를 뜻하며 대통령을 지칭하는 'chief'와 도둑을 뜻하는 'thief)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2011년 9월 17일 뉴욕 맨해튼 월가에서 열린 시위에 대해서 시위대의 근거지인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을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미국)에서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을 지지했지만, 중서부 주의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국의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일부 영역을 표현하는 호칭으로, 현재는 쇠락한 산업단지다. 참고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결정지은 지역이기도 하다)'를 취재하면서 백인 중산층의 힐러리 지지가 급속히 줄어든 것을 실감하고, 대체로 미디어나 조사 기관이 힐러리 후보의 승리를 예상하는 것과는 반대로 본의 아니게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를 예측한다. 무어가 우려한 대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했다. 

그전인 2016년 10월 18일에는 '마이클 무어 인 트럼프랜드(Michael Moore in TrumpLand)'를 공개하기도 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사건·사고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1999년에, 미국의 록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곡인 'Sleep Now In The Fire'의 PV 촬영을 뉴욕 증권 거래소 앞에서 게릴라식으로 감행, 뉴욕시 경찰에 체포되어서 백악관 블랙리스트에 들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연행되는 모습은 해당 PV에 담겨 있다).

2007년 5월에는 미국 정부 당국의 허가 없이 쿠바를 방문한 것이 발각되어, 재무부의 수사를 받기도 하였다. 무어는 사전에 도항 허가를 청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실제 허가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큐멘터리가 바로 2007년에 개봉한 '식코(SICK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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