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유튜브>
힌덴부르크 참사(Hindenburg Disaster)는 1937년 5월 6일, 미국 뉴저지 주 맨체스터 타운쉽에 있는 레이크허스트 해군 항공기지에서 발생한 독일의 경식 비행선 LZ 129 힌덴부르크호 폭발, 화재 사고를 말한다.
이 사고로 승무원 및 승객 35명과 지상에 있던 인부 1명 등 모두 36명이 숨지고 많은 승객이 중상을 입었다. 영화, 사진, 라디오 등 각 매체에 널리 보도됨으로써 대형 비행선의 안전성에 의문이 생겼고, 비행선 시대의 막이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고는 1912년 4월 14일에 일어난 영국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86년 1월 28일에 일어난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 등과 함께 20세기 세계를 뒤흔든 大사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출처: https://picryl.com>
경식비행선 설계의 우수한 점은 부양용 수소가스와 선체구조를 분리한 점이다. 기존의 연식비행선은 가스주머니 자체를 선체로 사용했기 때문에 변형되기 쉬워져 고속비행은 불가능했다. 여기서 경식비행선은 알루미늄 합금의 다각형 횡재와 종통재(선측구조를 이루는 주요부재)로 골격을 만들어 장선으로 보강하고, 그 위에 하부(마 또는 면포)를 붙여서 유선형 선체를 구성해 가스주머니를 횡재 사이에 넣었다.
이런 구조를 가진 경식비행선은 선체의 외형을 유지할 수 있어 비행기보다는 느리지만 특급열차와 비슷한 속도로 고속 발휘했다. 곧 비행선은 실용적인 하늘의 수송 수단이 되었다.
경식비행선의 또 다른 점은 대형화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비행기와 달리 체펠린 비행선의 부력은 치수의 3 제곱인 부피에 비례했지만, 구조 무게는 구체로 보면 구조재의 양은 표면적으로 생각, 치수의 2 제곱에 비례하는 것으로 단순히 치수에 비례해서 탑재 화물을 증대할 수가 있었다.
<출처: 유튜브>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119척이 건조되었고, 그 용도는 정찰과 폭격 등에 이용됬지만 공습으로 군수 공장 파괴와 국가 자체에 미치는 타격뿐만아니라 하늘을 날면서 위압적인 비행선으로 하여금 적국 시민의 전의를 꺾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었다. 물론 한계가 뚜렷해서 군사행동 중에 격추되기도 하였고, 그 이상의 비행선들이 악천후로 조난됐다. 또한 복엽기의 대두로 점차 전투에서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28년에 체펠린 비행조선사는 LZ 127 그라프 체펠린 호를 건조, 세계 일주에 성공하면서 세계 각지를 열광케 한다.
그러나 경식 비행선의 잠깐의 황금기는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다.
<출처: http://footage.framepool.com>
LZ 129 힌덴부르크는 막스 선장의 지휘 아래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다(현지 시각 5월 3일 20시 20분). 2일 반에 걸쳐서 대서양을 횡단한 뒤, 현지 시간(미국 동부 시간) 1937년 5월 6일 19시 25분경, 미국 뉴욕 근교 뉴저지 주 맨체스터 타운십의 레이크허스트 해군 항공기지 착륙 도중에 꼬리 부근에서 갑자기 폭발이 발생했다. 힌덴부르크호는 화염을 내뿜으며 추락했고 승무원과 승객 97명 중 35명과 지상의 인부 1명이 사망했다.
이때의 모습은 사진·영상과 라디오 중계로 기록됐고, 지금도 사고 직후의 모습을 컬러 처리된 화면으로 우리는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체펠린 사는 원인에 대해서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으나, 젖은 외피에 전류를 흘려 발화시키는 실험을 한 결과, 외피가 사고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실을 체펠린 사가 공개하지 않은 것은 보험금 문제 혹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의 압력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체펠린 사는 외피 도료를 개량한 신형기를 만들었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해체되었다.
<출처: This Day in Aviation>
그 뒤 1997년에 NASA 케네디 우주 센터의 전 수소 계획 매니저, 에디슨 베인(Addison Bain)이 당시의 증언, 영상 분석, 그리고 실물 외피의 분석을 통해서 사고의 원인은 힌덴부르크 선체 외피의 산화철·알루미늄 혼합 도료라고 발표했다.
그의 설은 힌덴부르크는 비행 중에 축적된 정전기가 착륙 시, 착륙용 밧줄이 내려졌는데(날아가지 않도록 지상에 계류하기 위해서) 순간 외피와 철골 사이의 연결 방식에 문제가 발생해서 충분히 전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전위 차이가 생기면서 오른쪽 꼬리 날개 앞쪽 끝 부분 부근에서 방전이 일어나면서 발화·화염에 휩싸였다는 것으로, 현재는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
참고로 독일 정부 공작원의 자살폭탄 테러 음모설도 있다. 당시 비행기의 실용화를 추진하던 독일은 비행선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시각이 강해졌으며 대중들의 눈앞에서 비행선의 위험성을 부각시켜서 항공기로의 수요를 증대시키려고 했다는 이 설에는 증거가 될 증언이나 물적 증거는 일절 나오지 않았고, 비행선 제조회사와 당시 독일의 집권 정당이었던 NSDAP는 사이가 틀어졌다는 정황증거만 근거로 하고 있다.
<출처: This Day in Av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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