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기술전에서 JR 소속 운전사의 시뮬레이터 시연 모습(출처:dot.asahi.com)>
5. 사고 승무원 문제
<JR 서일본 승무원들의 복장. 왼쪽은 춘추복, 오른쪽은 하복(출처:travel.watch.impress.co.jp)>
- 사고를 낸 기관사는 운전 경력 11개월에 불과, 운전 기술이나 근무 자세 면에서 미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배경에는 국철 분할 민영화 이후에 인원 감축과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 감소와 맞물리면서, 신규 채용이 많이 늘게 되었다. 특히 JR 서일본에서는 다른 JR 회사와 비교해서 신규 채용자의 수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 결과, 운전 경험이 적은 신입사원들에게 운전 기술을 가르치는 중견 및 베테랑 기관사도 당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1) 사고 당일, 기관사의 행동
- 사고 당일 승무 시작부터 사고 발생까지, 기관사는 몇 차례 실수가 있었다.
9시 전, 다카라즈카 역 정차 중에 차장이 반환을 위해서 아마가사키 쪽 1량째부터 7량까지 이동할 때, 해당 열차 기관사는 맨 뒤쪽의 운전석에서 3분 이상 앉아 있었고 차장이 기관사에게 직전 정차에 관해서 물었으나 그는 언짢은 기색으로 말없이 떠났다고 한다(참고로 다카라즈카 역은 후쿠치야마 선의 중핵 역으로, 특급을 비롯한 모든 열차가 정차하는 종착역이다).
9시 1분경, 원래 기관사가 사용할 수 없는 무선의 시험 신호가 지령실에 수신된다. 사고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기관사는 자잘한 실수가 겹치면서, 다카라즈카역 도착 전후에는 이미 심신에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소위 멘붕상태). 거듭된 실수를 차장이 지령실에 보고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선에 신경 쓰는 바람에, 이타미 역 앞 정차소리를 놓쳐서 이타미 역을 72m 지나쳤다.
이타미 역을 1분 30초 만에 출발 후, 차장을 불러내서 '좀(오버런 된 거리) 깎아줄래요?' 요청했다. 그러자 차장은 '꽤 갔다고?'라고 답변을 했고, 기관사는 재차 깎아줄 수 있냐고 말을 다시 건네는 그때, 차내의 승객 중 한 명이 승무원실의 칸막이 창 너머로 차장에게 클레임을 걸어서 차장은 전화를 끊었다.
차장 측 상황을 모르는 기관사는 자신의 요청이 거부당한 것으로 오해했고, 다시 한 번 운전사는 차장과 지령원의 교신 내용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 때문에 커브의 인식이 늦어져서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것도 시간에 맞지 않아 탈선했다. 또, 운전기사의 오른손 장갑이 빠져 있었고 운전석에 빨간 연필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사고 직전에 운전기사는 교신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고 추측되고 있다(메모는 운전기사용 시간표 케이스에 기록되었다고 예상했으나, 사고의 충격으로 케이스가 완전히 분쇄되었기 때문에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사고 보고서는 열차가 사고현장의 커브를 고속으로 진입한 것은 운전사가 의식적으로 한 게 아니라, 차장과 지령원의 교신에 정신이 팔려서 브레이크 조작이 크게 지연됐으며 충분히 감속되지 않은 채 현장 커브로 진입해서 탈선했다고 밝히고 있다.
6. 기타 문제
<사고 당시 다친 승객들의 모습(출처:http://blog.livedoor.jp/lovemedia88)>
- JR 서일본이 얽힌 중대한 열차 사고가 이 전에도 한번 있었는데, 1991년 5월에 시가라키 고원철도 열차와 JR 서일본 직통 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고(당시 42명 사망)가 있었다. 이때 사고에 대한 반성과 교훈은 잊어버리고, 안전을 경시하면서 결국 이러한 참사를 빚게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애초에 사고 자체가 안전불감증이었으니...).
또, 사고 열차에 JR 운전사(당시 비번)가 두 사람이나 타고 있었지만, 운전 구장(運転区長)의 업무를 우선시하고, 오사카 지사장 강연회 출석의 지시에 따라서 구조 활동을 시행하지 않은 점을 비판받았다. 철도 사고 조사 보고서 29페이지에도 해당 비번 직원과 회사와의 연락기록이 적혀있었는데,
직원: 전철이 탈선했다. 거기에 타고 있어요.
회사: 출근은 몇 시인가?
직원: (소정의 출근 시각은) 14시입니다.
회사: (그 시각까지)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해당 직원들은 그냥 직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회사가 일으킨 중대사고에 대한, 그 인식의 느슨함과 안이함이 엿보인다. 또, 다른 직원은 함구했는지 보고서에 진술에 관한 내용이 일절 기재되어있지 않았다.
그밖에 JR서 일본 관내 ATS에서 제한 속도 설정을 잘못한 부분이 다수 확인되었다. 안전에 대한 배려는 당시 JR 서일본 자료에서 '안전'의 기재는 단 1곳밖에 없어서 안전은 말 그대로 경시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7. 노선의 주변 환경
- 전차가 격돌한 아파트는 2002년(헤세이 14년)11월 하순에 세워졌고, 선로와 맨션 사이의 거리는 6m에 못 미쳤다. 외신은 사건 초기 이 점에 대해서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서 프랑스의 TGV에서는 개업 당시 선로와 가장 가까운 주거의 거리는 150m 이상 떨어져 있다.
4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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