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경향신문>
1. 1985년 5월 7일 경향신문: 200년 묵은 잠수복
- '괴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2백 년 전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잠수복이다. 쇠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잠수복은 최근 영국 그리니치에서 열린 핀란드 골동품 전에서 공개됐다.'
참고로 잠수복은 18세기 초에 처음으로 영국에서 개발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같은 성능을 기대하면 곤란하고, 오로지 근해에서 잠깐 잠수(18m)하는 용도였습니다.
잠수복은 습식, 반건식, 건식으로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에 나오는 잠수복은 당연하게도 건식(잠수복 내부는 젖지 않는다)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는 좀 성에 차지 않아서, 예전 잠수복 몇 가지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레딧에서 찾은 1715년경 잠수복입니다. 댓글에는 'SM 슈트 같다(...)'라고 하네요.
<출처: w-freedom>
해외 시중에서 판매되는 SM 관련 슈트 중 하나. 비슷....한건가?
<출처: 9GAG>
처음 올린 신문기사의 사진과 동일한 잠수복입니다. 다른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엄청나게 불편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며, 무거워 보일것 같습니다. ㄷㄷ...
<출처: Science Photo Library>
이것도 18세기 잠수복입니다. 이건 건식이 아닌것 같습니다.
<출처: CCTV뉴스>
2. 1995년 5월 7일 동아일보: 점집 찾는 정치인들(예나 지금이나...)
- 정치인 중에 점을 즐기고 관상 믿는 이가 적지 않다. 그 직업의 불확실성이랄까, 불가측성이 그렇게 만든다는 얘기다. 예컨대 투표라는 남의 선택에 매달리는 것부터가 그렇다. 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여론이라는 뜬구름이 정치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철은 으레 역술인의 대목이란다. 어떤 정권 때는 선거일도 집권자 운세에 맞춰 길일을 잡았다.
정당 가에는 많은 점술 일화가 남아있다. 아침에 당사에 가면서 반드시 하루 일진을 먼저 보았다는 이도 있다. 찰색이라해서 얼굴색 변화로 길흉을 살핀 단골 역술인도 있었다.
3공 시절 막강한 정치기구였던 정보부(국정원)가 역술 감정보고서까지 내기도 했다. 70년대 김 모 국장 지휘하에 지금의 3김씨 등 지도급 정객의 운명감정서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묵은 시절 얘기다.
<출처:2ch>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아내 낸시와 함께 점성가나 만난다고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일본의 나카소네 전 총리도 운세감정에 흥미가 깊었다. 수첩에 운세감정 내용을 적어 국회 답변 중에 무료한 시간을 틈타 들춰보곤 했다. 그러다 그만 들키고 말았다. 멀리서 사진기자가 줌렌즈로 그 부분만 정확히 찍어냈다. 한마디로 망신이었다. 왜 망신인가. 비과학적 미신에 집착하는 게 지도자냐는 여론이었다.
묵은 구습을 털고 세계화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집권 민자당이 점술 무속인을 직능단체로 모으기도 했다. 정책정당을 만들기 위한 첫 직능조직이라니 더 우습다. 세계화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과확화 해가자는 얘기가 아닌가.
점을 즐기기는 야당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그들마저 [반시대적 반과학적]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정당의 무속화인지, 점술인의 정치화인지, 어딘지 어지럽고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2. 1998년 5월 7일 동아일보: 이땅의 아버지들 - 그래도 찡한 부정(父情)
"운동회날인데요.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오셨는데, 저만 아빠가 왔지 뭐예요. 왜 아빠가 오셨느냐고 막 신경질을 냈걸랑요. 그랬더니 아빠가 너무 미안해하면서 안아주셨는데, 그러면서 막 우시는 거예요." 지난해 아버지가 실직해 엄마가 식당에 나간다는 P 초등교 4년 최모 양의 얘기다.
외롭고 힘 빠진 아버지들. 허덕이는 일상 속에서 모래알을 삼킨 것처럼 푸석푸석해져 있는 가슴 속. 그러나 그 속에 아직도 한 줄기 따뜻한 강물이 흐른다. 자식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구나. 연탄가스 때문에 걱정이다. 동네 개나 큰방 개가 짖어댈 때는 잠을 자지 말고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이 삶의 큰 지혜가 아닌가 한다."
연탄을 피우는 단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딸에게 보낸 한 아버지의 편지(문이당 발행, '아버님 전상서'中). 딸의 고생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행간에 배어있는 이 편지처럼 아버지의 사랑은 요란하지 않다.
하지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깊이와 넓이. 모성애가 그렇듯 부성애도 시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IMF 시대라 해서, 괴성을 지르던 X세대가 아버지가 됐다 해서 부성애가 사라지진 않는다.
결혼 전 사귀던 여인을 잃었을 때 자살을 결심할 만큼 깊은 사랑을 했었다는 김모 씨(28, K 산업). "당시엔 그녀에 대한 사랑이 이 세상, 온 우주의 무엇보다도 깊고 큰 사랑이라고 자신했었죠. 그러나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보니 이성에 대한 사랑이란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의 천만분의 일도 안 된다는 걸 실감해요."
아버지들은 사랑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웠던 구회씨(38, 경기 부천시 고강본동)의 회상. "늘 엄하게만 생각됐던 아버지가 다 큰 자식의 대소변 수발은 물론이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마사지하고 굽혔다 폈다 해주시기를 하루에도 수백 번... 어느 늦은 밤 병동 사람들이 다 잠든 후, 아들에게 들킬세라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침상 위에 피보다 더 진한 눈물을 토해내시더군요."
자식들은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그의 사랑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마련. "아빠, 이 엽서가 아빠가 계신 곳까지 전달될 수만 있다면 1억 원짜리 우표라도 붙여 보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8년 전 아빠는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저희 곁을 떠나셨지요. 저는 한 남자의 아내가 돼요. 하나밖에 없는 딸 너무도 예뻐하셔서 이름 대신 항상 공주라고 불러주신 아빠. 이젠 전 누구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나요. 하지만 아빠, 하늘나라 어디선가 아빠가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절대 울지 않을게요." (태평양생명주최, '아빠사랑캠페인'에 접수된 엽서 中)
결혼을 앞둔 김 씨는 꼽추인 아버지가 창피해 결혼식장에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오빠는 김 씨의 따위를 때렸지만, 아버지는 "걱정 말그래이, 요즈음 허리가 하루가 다르게 아파오니 어차피 식장에는 못 갈 것 같구나."라고 딸의 마음을 어루만진 채 결혼식 날, 홀로 골방에 누워 계셨다.
그 뒤 임신한 김 씨. 어느 날 집 근처 가게 아줌마에게서 청국장 보따리를 전해 받았다. 입덧하는 딸에게 주려고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온 아버지가 혹시 딸이 시댁 식구 앞에서 불편해할까 봐 짐과 메모를 맡긴 채 말없이 돌아가 버린 것.
"야야, 너거 어미가 올라카다가 일 나가서 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대이. 하나는 청국장이도 하나는 겉절이다. 배곯지 말고 맛있게 먹그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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