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항공기 격추 사건(Siberia Airlines Flight 1812)은 2001년 10월에 발생한 우크라이나 방공군에 의해서 민간 항공기가 격추된 사건이다. 원인은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 방공군의 미사일이 실수로 여객기를 격추한 과실인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해당 사고기가 이스라엘에서 비행하고 있던 것과 미국 9.11 테러 사건 다음 달에 발생하면서 새로운 테러가 아니냐는 논란을 빚었다.
<시베리아 항공(現 S7 항공) 기내 모습(2008년)>
2001년 10월 4일, 러시아의 항공사 시베리아 항공 1812편 투폴레프 Tu-154M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 향해 흑해 상공을 비행 중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44분(현지 시각) 아무런 예고도 없이 추락한다.
여객기에는 승무원 12명, 승객 66명(이중 51명이 러시아계 이스라엘인)등 모두 78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전원,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때 소치에 있는 러시아 지상관제 센터는 갑자기 여객기와의 교신이 불가능해졌고 인근을 비행하고 있던 아르메니아 항공기 조종사가 시베리아 항공기가 공중 폭발 후, 급강하하면서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관제탑에 보고했다.
애초 9.11사건 직후였기 때문에 테러리즘에 의한 파괴 활동이라고 여겨졌지만, 정작 당일에는 흑해 연안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과거 몇 년간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을 실시했으며 현장에서 약 240km 떨어진 크림 반도 동부의 군사 시설에서 시행한 지대공 미사일 발사 훈련에 의한 미사일 오발로 격추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것은 여객기 근처에서 미사일이 작렬, 그 폭발의 충격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추락했다는 것이다.
<당시 격추 순간을 재구성한 장면>
러시아 정부는 사건 이틀 뒤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S-200 지대공 미사일(사거리 300km)이 명중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 5일 후에는 정부의 조사 위원회가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이 사고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1년 10월 12일에는 [시베리아 항공기는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라고 밝히면서 [여객기의 파편에 생긴 흔적이 S-200에 의해서 발생한 특징적인 것이다]며 [미사일 발사와 추락의 타이밍이 일치한다]고 보고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애초 미사일 발사는 계획대로 완료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훈련에 사용한 미사일은 10km 안팎의 사정거리로, 발사한 방향에 항공기는 없었으며 미사일 발사 훈련 시작은 추락 16분 뒤인 오후 2시였다]로 사건에 대한 개입을 전면 부인했으나, 훈련에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사용한 것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격추에 대해서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하면서, 의혹을 받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에 대해서 [오후 1시 41분에 발사되었고 2분 후에 바다로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해당 사고기의 잔해>
이처럼 사건에 대한 관여를 전면 부인했던 우크라이나군이지만, 러시아 정부가 미사일의 출처를 굳이 밝히지 않은 채 지대공 미사일이 명중 또는 인근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추락했다고 발표하면서 사고 원인은 여전히 불분명하였지만, 우크라이나는 관련 사고의 관여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희생자 가족에 대한 보상 협상을 개시했다.
2003년 11월 20일, 보상에 대한 합의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두 정부 간에 서명했다. 그 내용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추락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이 없고, 어떠한 의무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다]였으며, 당시 우크라이나군의 수뇌였던 모 장군(해당 사건으로 후에 사임했다)은 [보상은 인도적 배려로 행해지는 것이지, 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론에 코멘트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의 유족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보상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민사 소송을 제소했다. 그 심리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레이더의 기록을 근거로 [여객기 추락은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 러시아 정부의 조사 결과를 끝까지 부정했다.
<해당 사고의 희생자 추모비>
이에 대해 원고 측 변호사는 [유족과 보상 교섭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스스로 미디어에 발표한 것을 가리키며, [사건에 대한 우크라이나군 관여가 객관적으로 증명된다]고 주장했다. 2004년 6월 21일에 우크라이나 일반 검찰 대변인은 [지금까지 열린 11차례 법의학 실험 모두, 우크라이나의 미사일에 의한 여객기 격추를 증명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훈련 미사일이 시베리아 항공기를 격추했다는 러시아 정부 측의 조사 결과에 부정적이지만, 그 이외의 가능성에 관해서는 주장하지 않았다. 또,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제삼자인 미국 정부 당국자는 사고 직후부터 정찰 위성의 기록을 근거로 [우크라이나의 군사 훈련에서 발사된 지대공 미사일이 시베리아 항공기에 명중한 것 같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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