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海外日本俳優女優まとめ>
- 나오미 캠벨(Naomi Elaine Campbell)은 영국 패션모델이다. 런던에서 스카우트되면서 1980년대부터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전성기 때는 국제적인 온갖 패션 잡지들의 표지를 장식하고 밀라노와 파리 등 유명 패션쇼의 런웨이를 걸으면서 모델로서의 정점을 찍은 인물 중 하나다. 이 나오미라는 이름은 구약성서 룻기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름(나오미 혹은 네이오미)에서 유래하였고 히브리인과 유럽, 미국에서 보이는 이름이다.
<컬처클럽의 뮤비에 출연한 당시(1982), 나오미의 모습(화살표)>
그녀의 첫 미디어 출연은 7살 무렵이다. 1978년 2월에 레게 음악의 전설인 밥 말리(1945~1981)의 곡 [Is This Love]의 뮤직비디오에서 학생 역으로 출연했으며, 1982년에는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인 '컬처 클럽'의 곡 [I'll Tumble 4 Ya]의 뮤비에 탭댄서로 출연하고 있다.
15살의 어느 날, 코번트 가든(런던 시티오브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지역)에서 윈도 쇼핑을 하다가 포드 모델의 사장 베스 볼트에게 스카우트되었다. 캠벨은 곧바로 풀타임 모델로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고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쇼 모델로서 경력을 시작하였으며, 곧 올림푸스를 포함한 여러 광고에 기용되었다. 그것들은 그녀에게 미국시장에서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고, 1986년 4월에 [엘르]의 표지를 장식한다.
<1988년, 파리 보그지 표지를 장식한 나오미의 모습 (출처:dazeddigital.com)>
1988년 8월, 흑인 모델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판 [보그]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것은 해당 잡지가 흑인 모델의 기용을 거절한 것에 분개한, 나오미와 친분이 있던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1936~2008)'이 자신의 브랜드 광고를 지면에서 모두 빼겠다고 압박을 준 것이 이룬 쾌거였다.
파리 외에도 최초의 흑인 슈퍼모델이었던 '도니알 루나(Donyale Luna, 1945~1979)' 다음으로 영국판 보그의 표지를 장식하고(해당 잡지에서 일하길 그만둔 베로니카 웨브[Veronica Webb, 1965~]의 대체였다), 일본판과 중국판 보그는 물론이고 [타임]의 표지도 장식했다.
잡지 [플레이보이]에서 누드를 촬영하거나 '마돈나(Madonna Louise Ciccone, 1958~)'의 1992년 사진집인 [SEX]에서는 래퍼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1968~)'과 함께 포즈를 취했으며, 캠벨은 지금까지 100종류 이상의 잡지 표지를 장식했다.
<1991년, 마이클 잭슨 'In the Closet'의 나오미의 모습 (출처:핀터레스트)>
그녀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1963~2016)의 뮤직비디오 [Freedom! '90]에서 당대 슈퍼 모델인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 1965~)', 크리스티 털링턴(Christy Turlington, 1969~)', '신디 크로퍼드(Cindy Crawford, 1966~)', '타탸나 파티츠(Tatjana Patitz, 1966~)'와 함께 뮤비의 주연을 맡았다.
1992년에는 마돈나 [Erotica]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그것은 사진집 [SEX]의 촬영 장면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밖에 마이클 잭슨, 재기드 엣지, 제이Z, 노토리어스 B.I.G.,프린스, 어셔 등 당대 톱스타들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그녀 경력의 절정기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이때 '신디 크로퍼드', '클라우디아 시퍼(Claudia Schiffer, 1970~)', '크리스티 털링턴', '린다 에반젤리스타', '케이트 모스(Katherine Ann Moss, 1974~)'와 나란히 빅 식스(Big 6), 털링턴,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나란히 삼위일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부와 명예 모두를 거머쥐었다.
<최근 나오미의 모습(2019년 1월), (출처: PopSugar)>
2008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슈퍼모델이라는 말이 좀 가볍게 쓰이는 것 같아. 케이트 모스는 분명히 슈퍼 모델이야. 그렇지만 '지젤 번천(Gisele Bündchen, 1980~)' 이후로 슈퍼 모델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참고로 지젤 번천은 모델계의 레전드이자 마지막 톱 슈퍼 모델로 일컬어지는 끝판왕으로, 전성기에서 내려온 2015년에만 340억이나 수익을 기록하면서 모델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 자존심 세고 성깔 있는 나오미가 인정할 정도면 말 다한 셈).
2009년 잡지 [글래머]의 인터뷰에서 캠벨은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일지 모른다. 그러나 흑인 여성으로서 나는 아직 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예외다. 나는 항상 동일하게 취급당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라고 말하며, 아직도 패션계에 인종차별이 있음을 비판했다.
캠벨은 뉴욕시의 IMG 모델, 런던의 스톰 모델 매니지먼트, 파리의 마릴린 에이전시, 밀라노의 매니지먼트 그룹과 각각 계약하고 있다.
<최근 나오미 캠벨의 모습(2019년 3월)(출처: 나오미 캠벨 인스타그램)>
-기타 경력-
<가수활동>
- 1991년에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 1967~)'의 싱글 [Cool as ice]에서 피처링을 맡았고, 1995년에는 '퀸시 존스(Quincy Delight Jones Jr, 1933~)'의 앨범 [Q's Jook Joint]의 수록곡 [Heaven's girl]을 불렀다.
1995년 데뷔 앨범 [Baby Woman]을 발표했다. 앨범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선 히트하고 세계적으로 100만 장 정도 팔렸다.
1996년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 1972~)' 주연의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ロングバケーション)' 의 주제가가 된 '쿠보타 토시노부(久保田利伸, 1962~)'와의 피처링으로 참여한 싱글 [LA·LA·LA LOVE SONG]이 약 2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작가>
1994년 9월, 소설 [Swan]을 발표했다. 과거의 비밀로 협박당하고 있는 슈퍼 모델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캠벨은 나중에 이 소설은 대필작가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밝혔다. 캠벨은 자신이 쓰지 않은 이유를 "앉아서 책 쓸 시간이 없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물론 평가와 판매량 둘 다 영 아니었다). 대신 1996년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인 '리처드 애버던(Richard Avedon, 1923~2004)'을 포함한 다수의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집 [Naomi]를 발표했다.
<패션>
1999년에 스핀오프(기업분할) 회사인 [디자인 하우스 오브 나오미 캠벨]을 설립했다. 캠벨은 여성용 향수를 7가지 발표했으며, 대부분은 유럽에서 발매되었다. 200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향수, [나오미 캠벨]을 발표했다. 2001년에 [캣 디럭스], 2003년에는 [미스터리], 2004년은 [선셋], 2005년 [파라다이스 패션]가 각각 발표되었다. 가장 최근의 향수는 캣 디럭스의 새로운 버전인 [캣 디럭스 앳 나이트]다.
<영화배우>
캠벨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1976년에 차일드 필름 재단 시리즈 영화에서 백설공주를 연기했다. 그후, 1996년에 [Girl 6], 1999년 [Prisoner of Love], 2004년 [Fat Slags] 등이 있다(흥행 비평 다 참패). 1994년에는 [Pret-a-porter], 2002년 [못 말리는 알리]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로 출연했다.
<자선 사업>
1997년 이후. 캠벨의 자선 활동은 아프리카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2013)'와 함께 일했고, 2007년 7월 7일 열린 [Live Earth]의 요하네스버그 공연의 사회를 맡았다. 2005년에는 [Fashion for relief]를 개최했고, 당시 미국 뉴올리언스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한 모금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모았다.
2010년 2월 12일에는 그해 1월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 피해자를 지원하는 쇼 [Fashion for relief Haiti]를 뉴욕에서 개최했다. 이 쇼를 140명의 패션 디자이너가 협력해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출처: dailymail.co.uk>
-구설수 및 법적문제-
1. 2000년에 캠벨은 1998년, 어시스턴트에 대한 폭행을 토론토 법정에서 인정했다. 알려진 얘기로는 캠벨이 호텔 방에서 전화기로 어시스턴트를 때리면서 그녀를 주행 중인 푸조(자동차)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했다. 금액은 밝혀지지 않지만 합의금을 지불하면서 원만히 해결되었고, 분노 제어를 위한 클래스에 캠벨이 참여하기로 동의했다.
2. 2005년 3월, 캠벨이 어시를 블랙베리 휴대폰으로 흠씬 두드렸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캠벨 대변인인 롭 슈터는 사건을 부인했으나, 2006년 7월에 당사자인 블랙은 캠벨에 대한 법적 조치를 시작했다. 캠벨이 말과 신체적으로 학대했다고 주장했으며, 블랙은 캠벨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고 호소했다.
또, 이탈리아의 여배우인 이본느 스키오를 로마의 호텔에서 같은 드레스를 입었다는 이유로 캠벨과 말다툼을 하다가 스키오가 떡이 되도록 맞았다고 주장했다. 스키오가 말하길, '"그녀는 내 얼굴을 때렸다. 그녀는 마치 마이크 타이슨(?) 같았다"라고 말했다.
3. 2006년 3월 30일, 캠벨은 보석이 장식된 휴대 전화를 가정부에게 던져서 머리를 다치게 한 상해 혐의로 체포되었다. 캠벨은 2급 폭행죄(징역 최고 7년) 등의 중죄 혐의를 받았고, 9월 28일 뉴욕시에서 열린 필수로 참석해야 할 재판에 불참했다.
결국 10월 25일, 폭행 혐의로 런던에서 체포되었고 캠벨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다. 11월 14일에는 상기한 가정부 말고 다른 전 가정부였던 깁슨이 밝혀지지 않는 캠벨의 다른 폭행사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새로운 소송을 시작했다. 깁슨은 캠벨이 "광폭하고 엄청난 고집불통"이라고 호소했으며, 11월 14일에 캠벨은 3월 폭행 사건에 관한 재판 때문에 뉴욕시의 법정에 출석한다.
2007년 1월 16일 캠벨은 3월에 있던 가정부에 대한 폭행죄를 인정했다. 그녀는 5일간의 지역 봉사 활동과 분노 관리 클래스 이틀 참석을 지시받았다. CNN의 보고서는 "아이 때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오랜 분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라면서 비난했으며 3월 19일, 뉴욕 시내의 쓰레기 처리 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4. 2008년 4월 3일,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자신의 가방이 1개 없어진 것으로 경찰관을 덮친 혐의로 체포(허...)되었다. 캠벨은 그 뒤 영국항공 블랙리스트로 이용을 금지당한다. 6월 20일 캠벨은 일부 혐의를 인정했으나, 폭행의 원인으로 공항 직원들의 인종차별적 욕설과 폭언이라고 말했다. 공항 직원이 자신을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슈퍼 모델'로 불렀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나 증언은 없었고, 캠벨은 결국 200시간의 지역 봉사 활동을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2010년에 있던 운전기사 폭행 혐의,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내전에 대한 국제재판소에서 증인(예전에 시에라리온의 독재자인 찰스 테일러에게서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과 관련된 증언을 위해서) 출석하는 등, 굴곡진 사생활을 보내고 있다.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26일> 1828년 5월 26일 - 독일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소년, <카스파 하우저> (0) | 2019.05.26 |
---|---|
<5월 23일> 2009년 5월 23일 -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및 일대기 (0) | 2019.05.23 |
<5월 21일> 1938년 5월 21일 - 쓰야마 30명 대량살인 사건 (0) | 2019.05.21 |
<5월 19일> 1971년 5월 19일 - 소비에트 연방의 화성탐사선 마스 2호 발사 (0) | 2019.05.19 |
<5월 18일> 1980년 5월 18일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0) | 2019.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