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kawairyota2.sakura.ne.jp>
- 카스파 하우저 또는 카스파르 하우저(Kaspar Hauser, 1812년 4월 30일 ~ 1833년 12월 17일)는 독일의 고아이며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16살 때까지 장기간에 걸친 지하감옥에 갇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성장 과정부터 자주 야생아로 분류되지만, 대부분의 역사가는 그가 사기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발견 후에 교육을 받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스스로 과거 등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상세하게 밝혀지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암살되었기 때문에, 그의 정체와 출생으로부터 당국에 의해 보호받기까지 그사이의 정확한 경위는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다.
카스파 하우저는 특이하고 예민한 오감을 갖고 있던 것으로도 유명하였고, 기박한 생애는 전문적인 연구서에서부터 문학, 음악 등 독일의 다양한 장르에서 거론되고 있으며, 살해 현장이 된 안스바흐(Ansbach, 독일 바이에른주 인구 41,000명의 작은 도시로 미텔프랑켄 현의 현도다)에서는 현재까지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2년마다 열리고 있다.
<출처: 게티 이미지>
1828년 5월 26일, 성령강림주일(오순절, 부활절 전 50일째 되는 날)이 끝나자마자 바이에른 왕국 뉘른베르크의 운쉴리트광장(Unschlittplatz)에서 16세가량의 소년이 발견된다. 신원 등 몇 가지 질문을 받고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년은 위병 대기소로 끌려갔다. 위병들로부터 필담은 가능할까 싶어서 종이와 연필을 건네주었는데 소년은 카스파 하우저라는 이름을 썼다.
소년은 뉘른베르크 주둔 제6기병연대 4대대 소속 프리드리히 폰 베스니히 대위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니고 있었다. 편지는 오자, 문법 오류투성이었고 내용은 소년의 이름은 카스파, 생일은 1812년 4월 30일이며 소년의 아버지는 기병이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로 아버지와 같은 기병에 채용하길 바라지만 받아줄 수 없다면 죽든지 말든지 놔두거나 아무 곳에 버려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은 베스니히 대위는 아무런 짐작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카스파는 고아로 시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법학자와 신학자, 교육학자들이 관심을 가졌고, 이들은 카스파에게 여러 가지 검사와 함께 교육을 시도했다. 종교철학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다우머는 카스퍼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쳐서 그는 어느 정도 소양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다우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신(神)의 개념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또, 그의 보호 양육을 맡은 법학자 안젤름 포이에르바하에 따르면 카스파는 애초 고기나 우유를 입에 대면 토해 버렸고 오직 빵과 물만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 툭하면 거울을 잡으려고 하는 등, 자주 상식이나 인간다움을 잊었다고 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카스파가 꽤 오랫동안 고독한 상태에서 지하 감옥에 갇혔을 것으로 추측했는데, 이런 특별한 인간들에 대해서 기록된 수많은 전기는 그런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두운 방에서 외부와 모든 접촉을 끊고 살아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을 잃었다고 한다.
카스퍼의 감각기능은 발견 초기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에서 발휘된 지각은 대단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서도 성서를 읽을 수 있거나 색채를 판별할 수 있었고, 금속을 쥐어도 철이나 놋등 그 재질을 간파하거나 멀리 떨어진 거미줄에 먹이가 걸려 있는 것을 맞추는 등의 놀라운 능력을 그는 당연하게 해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일반적인 생활에 순응하면서 특수한 시각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과거는 완벽한 수수께끼에 감추어졌고 특이한 감각능력의 소유자인 그에게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크게 늘었고, 군중 앞에 그를 데려오기도 했다. 이때 카스파 자신은 감각의 과민함과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빛과 소음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괴로움도 생활에 익숙해지자 조금씩 경감되었고, 마침내 카스파는 많은 사람 앞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뉘른베르크 사람들도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출처: istockphoto.com>
1833년 12월 17일, 카스파는 14일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습격당했는데 그때의 자상이 원인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카스파 자신이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막다른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려던 바로 직후여서, 마치 입막음 때문에 살해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죽기 몇 년 전인 1829년에도 괴한에게 습격을 받은 적이 있던 카스파는 당시엔 경상에 그쳤다.
카스파 자신에 대한 설명은 남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 몇 년 동안 지하 감옥을 연상케 하는 어둡고 작은 곳에 갇혀서 장난감의 말을 받았고 그곳에서 자랐던 것 외에는 사소한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안스바흐의 법의학자 크리스티안 빌헬름 알베르트는 동료 크리스토프 코펜과 함께 법의학 해부를 맡았다. 이와 함께 의사인 요한 칼 폰 호알라햐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든라이히가 참관인으로 초청받았다.
당시 바이에른 국왕인 루드비히 1세가 살해자를 체포하기 위한 정보 제공자에게 줄 포상금까지 걸었으나, 범인과 관련된 정보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대신 2년 뒤에 왕궁 정원에서 30cm 정도의 다마스쿠스 양날 단검이 발견되었는데, 이 단검의 칼날과 카스파의 상처가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한다. 이 칼은 프랑스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1926년에 밝혀졌다.
<출처: NAVER まとめ>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퍼지곤 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추측으로는 필라흐 성주이자 지방 영주였던 바멜르트 공작, 혹은 친척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 바이에른 대공의 아들이었다는 설이다. 이들에 관한 얘기는 바이에른 대공가가 오늘날까지 가문의 기록 문서 수장고의 열람을 거부해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은 미해명 상태다.
유전자 정보 분석의 도움을 받아봤지만, 카스파의 신원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1996년 슈피겔지와 안스바흐 시당국이 유전자 분석을 위해서 카스파가 신었던 것으로 알려진 바지에 남는 혈흔을 분석했다. 이 조사 결과 바지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대공가와 관련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2년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교의 법의학연구소가 카스파 실크햇의 땀 얼룩과 카스파 하우저 박물관(슈피겔지의 조사 이후 전시는 종료)에 있던 머리카락, 그리고 그의 양아버지 안젤름 폰 포이에르바하의 유품 속에 있던 머리카락을 분석했다.
<출처: 今日の名画座>
그 결과,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현재까지의 시점에서는 카스파 하우저가 바덴가의 생물학적 친자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직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발표하였다. 게다가 바지에 남았던 혈흔이 DNA 감정 결과, 머리카락과 일치하지 않아서 그 혈흔이 카스파의 것이 아녔느냐는 의심이 생겼다.
2번째 DNA 감정 결과, 카스파의 지문에서 검출한 것이 상당 부분 아스트리드 폰 메르딩거(바덴 대공 카를의 왕비였던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후손)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그것이 뭔가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점에서 일치하지만 3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유전자 해석의 대상이 된 카스파의 것으로 되어 있는 물품들이 정말로 그의 것인지에 대한 여부에 대하여 의심스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뉘른베르크에서 약 35km거리에 위치한 지방영주의 성인 필라흐 성에서 1924년 우연히 발견된 비밀의 방이 있었는데, 그 크기나 형태는 카스파가 설명했던 모습과 일치했다. 그리고 1982년 개장 공사에서는 잔해 밑에서 장난감 말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카스파 하우저가 설명해 준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으며 곰팡이가 핀 옷의 일부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필라흐 성에서 발견된 비밀의 방(출처: historicalblindness.com)>
안스바흐에서는 2년에 1번, 카스파 하우저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그의 검소한 무덤은 안스바흐 묘지에서 볼 수 있다. 현재의 묘비는 최근 재건된 것이며, 카스퍼가 습격받았던 왕궁 정원 내의 암살 현장에서는 1833년 12월 14일에 기념비가 건립되었는데, 그후 Platenstraße 거리의 중심의 작은 광장에 들어섰다.
마르크그라펜 박물관에서는 카스파 하우저에 대한 전시 코너가 마련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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