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 유학생 사살 사건(日本人留学生射殺事件)은 1992년 10월 17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시 교외에서 일본인 유학생이 사살된 사건이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핫토리 요시히로(服部 剛丈, 1975~1992)(이하 피해자)는 영어에 관심이 큰 어머니의 영향도 있어서 어려서부터 미국에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치현 현립 아사히가오카 고등학교에 다니던 2학년 여름, 교환 유학(AFS)을 통해서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대학교수인 아버지, 의사인 어머니와 또래 고등학생인 장남(이하 A)까지 총 3인 가족의 집에서 홈스테이하고 있었다.
1992년 10월 17일 밤, 피해자는 A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둘이서 할로윈 파티 장소로 향했다. 이때 피해자는 영화 [금요일 밤의 열기(1978)]에서 주역을 맡은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 1954~)의 의상을 본떠서 빌려 입은 턱시도, 검정 바지, 주름진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동행했던 A는 사건 며칠 전에 수영장에 뛰어들면서 목을 다쳐 깁스붕대를 두르고 반바지와 테니스화를 조합, 머리나 손발에 붕대 등을 두르면서 마치 교통사고 피해자를 본뜬 꼴로 꾸몄다.
그러나 A가 파티장소 지리에 서툴렀기 때문에, 로드니 피어스(Rodney Peairs, 당시 30세)일가가 사는 집으로 잘못 찾아갔다. 자신들이 엉뚱한 집으로 찾아간 것도 모른 채, 두 사람은 현관 벨을 눌렀고 부엌문에서 응대한 피어스의 아내는 현관 앞의 두 사람을 발견하자 곧바로 문을 닫고 남편에게 총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피어스는 침실에서 도트 사이트가 달린 스미스 & 웨슨(Smith & Wesson) 社제 .44 매그넘 권총을 꺼내어 뒷문으로 가는 두 사람에게 총을 겨누면서 [Freeze(꼼짝 마라)!]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파티에 왔어요(We're here for the party)]라고 설명하면서 차고 안으로 들어가 부엌으로 다가갔고, 이에 피어스는 바로 총을 발포한다.
총알은 피해자의 왼쪽 폐를 관통했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이송 중에 사망한다.
<핫토리를 사살한 피어스(왼쪽 넥타이 맨 남성)와 아내(오른쪽 안경 쓴 여성)의 모습>
피어스는 일본의 형법으로 상해 치사죄에 해당하는 [우발적인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배턴루지 지방법원 배심원은 12명(백인 10명, 흑인 2명) 전원 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그때 피어스 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피어스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멈추지 않고 가까운 거리까지 계속 걸어왔기 때문에 위협에 느껴 발포했다. 그리고 피해자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흉기로 오인해 버렸다]
평결 이유는 재판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루이지애나주의 법률에서는 건물 안의 침입자에 대해서는 발포가 용인되고 있었지만, 총을 맞았을 때 피해자는 부지 내에 발은 들여놓았지만, 건물 안으로 출입한 것은 아니었다.
무죄 평결이 나왔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된 것인지, 상해 치사죄의 구성 요인을 갖추지 못해서 배심원이 판단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본 언론은 발포가 정당방위로 인정받고 무죄로 된 것, 피해자들이 경고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등의 문화 차이를 원인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피어스는 형사 재판 후 [뉴욕 타임스]의 기자에게 [다시는 총을 손에 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총을 포기했는지는 지금도 확인할 수 없다.
<피해자의 생전모습>
이후에 유족이 손해배상을 요구한 민사 재판은, 형사 재판과 정반대의 결과가 되었다. 먼저 원고 측의 변호사는 재판의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정에 판결이 좌우될 수도 있는 배심원 재판이 아닌, 증거를 토대로 판결을 하는 판사재판으로 할 것을 노렸다. 미국에서는 배심원재판으로 진행할 경우, 원고·피고 중 한쪽이 사전 신청과 비용 부담이 필요하며 그것이 없을 때는 자동으로 판사재판이 된다. 원고 측 변호사는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배심원 재판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 제출기한까지 비용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 측 변호사가 눈치채는 것이 늦어졌고 원고 측 계획대로 판사 재판이 되었다.
우선 원고 측은 피어스와 피해자의 거리에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 재판에서 피어스 측 변호사는 두 사람의 거리가 90cm~150cm의 근거리였다고 주장했지만, 피어스의 팔 길이와 길이 21cm의 매그넘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거리는 최소 1m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고 측 변호사가 총기 전문가에게 확인한 결과 걸어오는 인간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쏠 경우, 맞은 인간은 걸어가면서 1m 정도 앞에서 쓰러진다고 증언했다.
형사 재판에서 전문가가 제출한 [90cm~150cm]라는 수치는 총구에서 피해자까지의 거리이며, 다른 전문가의 감정에 의하면 두 사람의 거리는 [190cm에서 250cm] 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피해자는 실내에 출입한 것도 아니었고 현관에서도 몇 미터 떨어져 있었던 것이 되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서 문을 닫거나 응대하지 않고 경찰을 부르는 등의 선택사항도 있었을 텐데 피어스는 위협사격이 아니라, 갑자기 피해자의 가슴을 향해 총을 쏜 것이 된다.
형사재판에서 피어스 측은 이 사실을 숨기고, 피어스와 피해자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고 주장하며 배심원들을 무죄 평결로 이끈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형사 재판에서 피어스 측은 피해자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흉기로 오인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민사 재판에서는 빈손으로 보였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재판에 출두하는 피어스와 아내의 모습>
그밖에도 키 170cm, 체중 61kg의 피해자에게 키 188cm, 체중 84kg의 상대적으로 건장한 체격인 피어스가 자신보다 왜소한 피해자에게 공포감이나 위협을 느꼈을지? 그리고 제대로만 맞추면 곰도 쓰러트릴 수 있는 매그넘을 겨누면서 공포를 느껴 위협사격과 다리 등 사격도 없이 갑자기 급소를 향해서 발사한 것은 부자연스러우며 살의가 있는 증거라고 원고 측 변호사는 주장했다. 또한 .44매그넘 권총은 집에 있던 6정의 총 중 하나이지만, 현관에 있던 소총을 놔두고 굳이 침실까지 가면서 옷장 안에서 권총을 꺼낸 것을 지적했다.
원고 측은 새로운 사실로서 피어스는 당시 집에 6정 이상의 총을 가진 권총 마니아로, 사슴 사냥이 취미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종종 근처나 자택 부지에서 개와 고양이에 대한 사살 사건을 저질렀고, 심지어 당일은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판단력까지 저하되어 있던 것과 아내의 전남편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사건 전에 전남편에 대해서 [다음에 왔을 때는 죽이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게다가 피어스 부부는 경찰로부터의 청취나 재판에서 모순되는 증언을 하고 있었다. 예컨대 피어스는 과거 2년 동안 총을 사용한 것은 한 번도 없다고 증언했으나, 실제론 그 2년간 200회 이상의 사격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정당방위가 아닌 살의를 가지고 사살한 혐의로 65만 3,000달러(현재가치로 약 18억 원)를 지급명령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듬해 지방 고등 법원이 공소를 기각하면서 판결은 확정되었다.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 숨진 핫토리의 부모>
피어스 및 그 아내와 부모는 법원에 명령받은 배상금 65만 3,000달러 중 현재까지 그 일체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유족에게 지급된 것은 피어스가 자택에 걸었던 보험으로 받은 10만 달러뿐이었다. 그리고 피어스는 이 사건으로 직장이었던 슈퍼마켓에서 해고되었으며, 배상금을 일절 지급하지 않은 채 파산했다.
피해자 부모는 유학생과 핫토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미국의 가정에서 총기의 철거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 운동을 개시하면서 1년여 만에 170만 명분을 넘는 서명을 받아냈고, 1993년 11월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Bill" Clinton, 1946~)에게 서명을 전달되기 위해 만났다.
미·일 간의 문화 차이를 극복, 상호 이해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피해자의 부모는 생명 보험의 지급금을 재원으로 교환 학생으로 일본에 있는 미국의 고등학생에게 매년 한 명씩, 장학금을 제공하는 [YOSHI 기금]을 1993년 6월에 설립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의 유족은 지급된 배상금의 10만 달러 가운데, 변호사 보수 및 재판 비용을 제외한 4만 5,000달러를 토대로 [Yoshi's Gift]를 설립하면서 미국 내 총기 규제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배턴루지에서는 총기 규제 단체가 매년 10월 17일을 [YOSHI의 날]로 기념행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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