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혼 TV 시청률 매수조작 사건(일본명: 日本テレビ視聴率買収事件)은 2003년, 니혼 TV의 프로듀서가 부정한 방법으로 시청률을 조작한 사건으로, 일본 방송 역사의 흑역사 중 하나다.
니혼 TV 제작국에 소속된 오락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 A는 자기가 제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오르도록 사이타마현 내의 탐정 업체에 비디오 리서치의 차를 1미행하도록 의뢰했고, 이 회사가 모니터한 가구를 산출, 프로그램 2설문이나 기계 점검을 가장해서 23가구에 접촉하였고 부풀린 프로그램 제작비를 사적으로 빼돌린 돈을 주면서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 시청을 의뢰한다.
2003년 10월 24일, 사건이 발각되면서 A는 11월 25일 해고 처분을 받았으나 사건 발각 후에 빼돌린 금액을 니혼 TV에 전액 반환하였기에 형사 고소는 하지 않았지만, 덴츠·비디오 리서치에서 민사 소송을 제기하였다. 비디오 리서치는 원래 3위계 업무 방해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검토했지만 [수사가 리서치 조사를 협력해준 가구에 이르고 폐를 끼치게 되므로]라는 이유로 포기한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1940~) 당시 총무대신은 일본 TV에 대해 문서로 엄중 경고하고, 재발 방지책을 취하도록 행정 지도하는 동시에 반년 후를 목표로 그 후의 상황을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민간 방송이 총무성의 행정 지도를 받은 것은 1999년 6월 4지역 방송국의 [의도적인 광고 배제 사건] 이후였다.
또, 10월 25일 방송된 비평 프로그램 [당신과 닛테레(あなたと日テレ)]에서 정보 검증이 시행됐다.
<1961년 [니혼TV 노래 컬러판]>
문제가 된 프로그램과 시청률은 다음과 같다.
시청률은 모두 비디오 리서치 조사로, 지역은 간토(関東) 지구
- 2002년 9월 19일 [芸能人犯罪被害スペシャル] 15.5%
- 2002년 9월 26일 [奇跡の生還芸能人版] 15.7%
- 2002년 12월 27일 [ウリナリ芸能人社交ダンス部] 18.9%
- 2003년 1월 1일 [生でハッスルテレビ] 11.1%
- 2003년 1월 1일 [びっくり人間スペシャル] 17.1%
- 2003년 4월 3일 [芸能人犯罪被害スペシャル] 10.5%
- 2003년 9월 24일 [奇跡の生還芸能人版] 10.2%
니혼 TV는 여러 오락 프로그램, 뉴스, 와이드 쇼,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인기에 힘입어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9년 연속 시청률에서 독보적으로 앞섰으나, 사건이 발각되자 경쟁사인 후지 TV(フジテレビ)가 반격하면서, 니혼 TV의 인기 프로그램 중단이 잇따랐다. 이것은 프로그램보다는 시청률을 더욱 중시하고 시청률에 대한 집착이 이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TBS(株式会社TBSテレビ) 프로듀서의 이야기에 의하면, 니혼 TV의 제작자들은 상부로부터 시청률에 대한 부담을 받아왔으며 사건 발생 이전부터 정신적으로 꽤 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건이 발생한 해 요미우리 신문에 [시청률 3관왕을 달성했다]는 내용의 광고를 니혼 TV에서 내세울 정도로, 시청률에 집착하고 있었다.
A도 [곱게 말 안 하는 사장의 자세에 감명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다른 니혼 TV 직원들은 [시청률 지상주의 회사 방침이 힘닿는 데까지 몰고 간 결과], [우리 회사의 경우 보도 현장에서도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뉴스가 톱뉴스가 되고, 뉴스로서 가치 있는 것이 방영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현장의 불만이 들릴 정도다]라고 증언했다.
<니혼 TV 프로그램 제작 현장>
일본민간방송노동조합연합회(日本民間放送労働組合連合会)는 [프로듀서 본인의 징계 해고 처분과 비교하면, 경영진의 책임에는 의문이 남는다], [성과주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방송 제작 현장의 윤리 붕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제대로 된 책임 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내 윤리 확립은 어려운 것 아닌가]라는 의견으로 니혼 TV의 경영자를 비판하였다.
일본민간방송연맹 및 후지 TV의 히에다 히사시(日枝久会長, 1937~) 당시 회장은 [시청자, 광고주의 신뢰를 저버린 이번 일은 유감]이라고 말했고, TV아사히(テレビ朝日)도 [사실이라면 TV의 신뢰를 흔드는 중대한 부정행위], TBS도 [시청률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 NHK는 [프로그램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를 묻게 된다]라는 담화를 발표한다.
당시 하기와라 토시오(萩原敏雄, 1936~) 니혼 TV 사장은 2003년 11월 18일에 연 회견에서 [지금도 시청률이 높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시청률이 매체 가치를 나타내는 유일한 지표임은 부정할 수 없다. 기업으로서 시청률을 목표로 삼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지론을 폈다. 그리고 우지이에 세이치로(氏家齊一郎, 1926~2011) 당시 회장도 [대주주인 요미우리신문의 수석에게 상담하러 갔을 때, 그 이야기가 있었다. 판매 부수는 신문사의 사활 문제이며 시청률도 그렇다. 그렇기에 시청률을 저속화하면 안 된다, 지금은 질 낮은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안 된다. 프로그램의 질적인 향상과 시청률은 병행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우지이에 회장은 [저희는 사외 임원 4명과 상담했으나, 이사회 책임이 없다는 것이 되었다]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사회에 책임이 없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세세하게 논의하면 법률적으로 위반하고 있는지가 된다. TV 업계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일어났다는 판단으로, 감시를 위해 존재하는 사외 이사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영 책임에 대해서는 [도의적 책임은 있다. (그러나) 감정적 논의를 해도 소용없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하기와라 사장은 사건의 당사자 A에 대해서, [어느 쪽인가 하면 생각이 격렬하고, 질주하는 타입. 이는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완전한 단독범으로, 모의한 사람이 없었다고 본인은 말한다, 흥신소에 부탁하면(시청률 조사 대상 가정을) 알아낼 수 있다는 건, 제 40년 경력에서도 처음 알았습니다]라고 설명하면서 프로듀서 개인의 문제임을 강조하기에 바빴다.
<당시 니혼 TV 회장이었던 우지이에 세이치로. 51년 요미우리 신문사 입사, 회사 상무를 거쳐서 82년에는 니혼 TV 부사장, 92년에는 사장, 2001년 회장 겸 CEO의 경력을 거친 니혼 TV의 실세이자 거물이었다>
하기와라 사장은 부사장으로 강등, 우지이에 회장은 최고직에서 사퇴하였고 A의 상사인 책임 프로듀서는 출근 정지 5일, 당시 편성 국장은 감봉 2개월(10%)을 받았으며 우지이에 회장, 하기와라 사장은 감봉 3개월(50%), 임원·감사역 5명이 감봉 3개월(10%) 등으로 처분되었다.
이 사건으로 니혼 TV는 경쟁사인 후지 TV에게 한동안 시청률을 내주면서 고전하였으나, 이후 2011년 시청률 삼관왕을 달성하면서 왕좌 복귀에 성공한다.
- ビデオリサーチ: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청률 조사,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율 조사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 리서치와 마케팅 리서치를 하는 회사이다. 일본의 광고 회사 덴쓰가 전체 주식의 34.2%를 보유하고 있으며, 덴쓰의 지분법을 적용받고 있다. [본문으로]
- 탐정 업체는 미행을 눈치챈 비디오 리서치에서 항의문이 도착해서, 몇 건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 시점에서 A와 상담하고 조사를 중단했다. [본문으로]
- 이 중, 덴츠는 2005년에 1000만 엔의 손해 배상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본문으로]
- 総務省: 총무성은 일본의 행정기관으로 대한민국 행정안전부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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