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크 메스린(JacquesRené Mesrine, 1936~1979)은 강도와 탈옥을 거듭한 프랑스의 범죄자로, 붙은 별명은 [민중(사회)의 적 No.1] 이다.
<메스린의 고향인, 일드프랑스 오드센주에 있는 클리시의 모습>
1936년 파리 북부 근교 클리시에서 출생, 가톨릭계 학교에 다니며 꿈은 그랑제콜인 1HEC Paris에서 배우는 것이었지만, 학교랑 그닥 맞지 않아 진학은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 1955년 세네갈인 여성과 결혼했으나, 이듬해 알제리 전쟁 2에 차출됐고 파견 중인 1957년에 이혼한다.
1959년에는 상관의 명령에 거스르지 않고, 알제리 독립파 주민을 사살한다. 그러나 결국 알제리는 독립했고 쓸모없는 행위였다는 것을 알게 된 메스린은 무력감, 허무감에 사로잡혀 제대한다. 귀국후 스페인 여성과 재혼, 큰딸 사브리나를 얻게된다. 그러나 제대한 병사는 국민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고, 또한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측에 협력한 적도 있어서 그런지 아들의 태도에 대해 별말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이 겹친 결과, 결국 메스린은 범죄 조직에 접근한다. 특유의 배짱으로 강도를 반복하면서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러다가 1961년 12월에 검거, 1963년 7월까지 첫 번째 옥중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석방 후에는 모형 제작사에 취직해서 잠시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장남도 얻었지만, 경제적 이유로 해고되자 길이 없어진 그는 다시 범죄를 재개했고 스페인인 아내와도 이혼한다.
1967년, 애인인 Jeanne Schneider와 함께 콩피에뉴(Compiègne)의 숙박시설 지배인이자 도둑 숙소로 활용했다. 1969년에는 둘이서 캐나다로 건너가, 한번은 두 사람 모두 어느 부호 밑에서 잠시 일했으나 4개월 만에 해고되자 납치, 협박하려다 실패하면서 미국으로 도주했지만, 텍사스주 고속도로 순찰대에 체포되어 캐나다로 송환된다.
그러자 8월 17일 구치소에서 탈주하였으나 다시 구속되고 10년의 금고형(애인은 5년 반)을 선고 받고 특별징벌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1972년 8월 21일에 다른 5명의 죄수와 함께 또다시 탈옥을 시도, 4명은 체포되었으나 메스린과 또다른 한명은 성공했다.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무기를 얻어 탈옥한 감옥을 습격, 죄수 석방을 시도했으나 이는 실패하였고 9월 10일에는 Saint-Louis-de-Blandford 부근에서 우연히 조우한 자연 보호관 2명을 사살까지 한다.
<알제리 전쟁 당시 메스린>
그 후, 애인이 아직 수용되어 있음에도, Jocelyne Deraiche 라고 하는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 중남미에서 스페인, 프랑스 서부에 걸쳐 은행강도를 거듭해 현금을 입수. 멍뜨 라 졸리(Mantes-la-Jolie), 불로뉴비양쿠르(Boulogne-Billancourt)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1973년 3월 8일, 베르사유(Versailles)의 사법 경찰국(SDPJ)이 메스린을 체포했으나 6월 6일 법원에 출두하면서 숨긴 권총을 재판장에게 들이대고 인질로 삼아 탈주에 성공. 9월 17일에는 파리 17구에서 국립 은행 지점을 습격, 이후 두 번째 장소 습격 직전에 경찰에게 발견되어 총격전이 벌어진다. 공범 4명 중 1명이 체포되었으나 메스린 본인은 도주에 성공한다. 그러나 파리 경시청 관할과 수사개입부(BRI)의 수사에 의해 그의 아지트가 밝혀지는 바람에 메스린은 자폭하겠다고 으름장을 냈으나 BRI의 설득에 응하면서 투항한다.
그뒤 동료 부부를 납치해서 중요 인물과 교환으로 석방을 기도했으나 곧 BRI가 부부의 아지트도 파악하고, 아내를 체포하면서 이 계획은 파탄 났으며 1977년 5월 19일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1978년 5월 8일 다른 2명과 함께 감옥을 또 탈주하면서 그 와중에 순찰 중인 경찰과 조우하여 1명은 사살되었지만, 메스린과 나머지 한 명은 기어코 도주에 성공했다.
5월 26일에는 도빌(Deauville)에서 카지노를 습격, 11월 10일에는 1977년 재판 때 법원장을 지냈던 재판관 가족을 습격한다. 그리고 1979년 6월 21일에는 사르트주(Sarthe)의 부동산 재벌을 유괴하여 600만 프랑의 돈을 빼앗고, 9월 10일에는 모 주간지 기자를 고문한다.
그러나 10월 31일, BRI와 범죄 대책 중앙부(OCRB)는 그동안의 행적과 공범들을 추적한 끝에 메스린의 아지트 특정에 성공한다.
<메스린의 최후, 엔진 덮개 위에 있는 건 가발이다>
1979년 11월 2일 오후, 메스린이 외출한 것을 파악한 BRI과 OCRB의 합동 부대는 그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메스린이 운전하는 BMW를 트럭으로 협공하고 메스린이 시트 밑 수류탄에 손을 뻗자마자, 경관대는 창문 너머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사살된 장소는 파리 18구 북쪽인 뽀흑뜨 드 끌리녕꾸흐(Porte de Clignancourt) 부근이었고, 시간은 15시 15분이었다.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 <11월 4일> 2000년 11월 4일 - 일본 고고학 최악의 흑역사, <구석기 조작 사건> (0) | 2019.11.03 |
---|---|
오늘의 역사 : <11월 3일> 1957년 11월 3일 - 소련, 스푸트니크 2호에 개(犬), <라이카>를 실어 보내다 (0) | 2019.11.02 |
오늘의 역사 : <11월 1일> 1993년 11월 1일 - 유럽연합의 시작, <마스트리흐트 조약 발효> (0) | 2019.10.31 |
오늘의 역사 : <10월 31일> 1999년 10월 31일 -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0) | 2019.10.30 |
오늘의 역사 : <10월 30일> 1996년 10월 30일 - 일본, <미타케 읍장 습격사건> (0) | 2019.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