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코마 다리(Tacoma Narrows Bridge)는 미국 워싱턴 주의 퓨젓사운드만 해협의 타코마 내로우(Tacoma Narrows)에 설치한 현수교다. 1
초대 다리는 설계상 문제로 1940년 11월 7일, 강풍으로 다리가 무너졌다. 종종 공명 현상의 예로서 언급되지만, 그것은 2오해인 것으로 전문가에 의해 종종 지적되고 있다.
<초대 타코마 다리 개통식 모습>
초대 타코마 다리는 1940년 7월 1일 개통한 유료 도로 다리이며 길이 1,600m, 폭 11.9m로, 해당 다리는 태평양 유수의 항만도시인 타코마시와 미 해군 공창(조선소)이 있는 브레머튼 등이 위치한 키챕반도 지구를 연결할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당시 최신 이론에 기초하여 설계된 이 다리는, 준공 당시 세계 3위 길이로 설계는 미국에서 교량 설계의 일인자였던 레온 모이세프(Leon S. Moisseiff, 1872~1943)가 하였다.
1920년대부터 도로 계획은 거론되고 있었으나 건설이 결정된 것은 1937년이었고, 그 이듬해인 1938년 착공됐다. 설계와 건설과정에서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공사는 거의 일정대로 진행되어 1940년 7월 1일 개통됐다.
원래, 여유를 가져 폭넓게 설계될 예정이었으나 비용의 제약으로 인해 자동차의 양방향 통행에만 지장이 없을 정도의 비교적 좁은 폭으로 건설되었다. 설계자인 모이세프는 비용과 구조 합리화의 양면을 고려하여, 다리 본체에 대해 치수를 극히 얇게 한 야심 찬 경량 설계를 채용했다. 당시 최신 다리 설계 이론에 의하면, 얇게 해도 필요한 강도는 확보할 수 있고 강풍에도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되었으나 전문가 일부는 이것을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 불안감대로 건설할 때부터, 타코마 다리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크게 흔들려 휘청거리거나, 뒤틀림 현상이 드러났다. 다리는 상하방향으로 흔들리고 다리 위에 있어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공사 관계자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개통을 한 달 앞둔 6월 1일과 2일에는 다리 중앙부에 메인 케이블과 다리의 횡목을 V자형으로 하는 스테이와 탑과 횡목을 잇는 댐퍼가 설치됐다.
개통 후에도 약간의 바람에도 심한 요동이 치는 관계로,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지상에 케이블이 붙여진다. 그래도 근본적인 흔들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준공 이후까지 그야말로 화려하게(?) 흔들리면서 진폭이 1m를 넘기도 했다.
<타코마 다리의 붕괴 모습을 담은 영상>
다리를 자동차로 건너는 운전자는 주행 중의 이상한 진동으로 멀미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 불안한 사람들은 다리 대신에 그냥 먼 길을 돌아서 목적지로 향했다.
1940년 11월 7일, 이른 아침부터 바람에 의한 진동이 이어졌으나 풍속이 설계 내 풍속을 크게 밑도는 19m/s에도 그동안의 상하 방향 진동에서 더욱 크게 뒤틀린다. 이 같은 흔들림이 1시간가량 이어진 뒤, 최종적인 붕괴가 시작되어 다리가 케이블에서 떨어져 나가며 붕괴하였다.
덧붙여 다리가 무너지기 직전, 심상치 않은 상황을 알아챈 시 당국에서 재빨리 통행 규제를 내렸고 붕괴 직전에는 다리 위의 상황 관찰을 위해 다리에 있던 기술자·연구자들도 육상으로 피난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지만, 다리 위 주차된 차량에 남아있던 아메리칸 코커 스패니얼 개 1마리가 사망했다.
이 다리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붕괴의 순간뿐 아니라 심한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부터 붕괴를 마칠 때까지의 전 과정이 영화용 카메라로 연속 촬영되어 영상으로 완전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세한 기록에 의해 구조물이 바람을 받아 생기는 진동에 관한 연구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개통 직후부터, 바람 한 점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었으며 때마침 워싱턴 대학 연구팀이 조사 중이었다. 풍속 측정이나 사진 촬영에 의한 진동 기록을 포함한 데이터 취득이 계속되었으나 11월 7일 아침에 이상 진동이 시작된 것을 간파한 연구팀은 급히 근처의 사진관으로부터 카메라를 빌려서 다리를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장착, 다리에 일어난 파멸의 자초지종을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로써는 아직 희귀한 컬러 필름으로 담기면서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사고 후 원인 조사에서 다리의 횡목이 얇은 판상으로 되어 있으면 진동이 매우 일어나기 쉬운 것을 알아낸다. 이 진동은 측면에 부는 바람에 의해 위아래로 발생한 공기의 소용돌이가 자리를 위아래로 진동시키고, 더 큰 소용돌이가 발생하여 진폭을 증대시키는 발산진동을 일으켰다. 타코마 다리의 경우는 얇으면서 폭도 좁아서 내구성은 형편없었고, 결국 진폭 증대에 의한 붕괴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러한 반성으로부터, 이후 많은 현수교에는 보강을 위한 트러스가 더 갖추어지게 되었고, 설계자인 모이세프는 망신과 비난을 받으며 3년 뒤인 1943년에 사망한다.
<현재 타코마 다리의 모습>
그 후, 새 다리가 건설되었고 1950년 10월 14일 개통한다. 길이는 1,822m, 높이는 57.15m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교통량이 증가하자 2002년부터 바로 옆에 새로운 현수교 건설을 하였고, 새로운 다리는 2007년 7월 15일 개통되면서 기존 다리는 서쪽, 새 다리는 동쪽의 차선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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