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11월 23일> 2010년 11월 23일 - <연평도 포격 도발>

!@#^& 2019. 11. 22. 21:50



- 연평도 포격 도발(Bombardment of Yeonpyeong)2010년 11월 23일 대연평도 근해에서 일어난 북한군도발과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교전 및, 그것을 발단으로 한 대한민국 북한 긴장 고조 등 일련의 사건을 뜻한다.


<당시 연평도로 향하던 여객선에서 촬영한 영상>


[개요]

한국 시각으로 2010년 11월 23일 14시 34분경, 북한군북방한계선(NLL)을 넘어선 대연평도를 향해 갑자기 포탄 약 170발을 발사, 90발해상에 떨어지고 80발해당 섬에 떨어졌다.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배치하고 있는 6문K9 자주포 4문을 동원, 한 달에 한 번 있는 육·해 합동 사격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해당 부대는 기지에서 남남서 쪽, 4.8㎞ 떨어진 해상으로 1문 15발씩 총 60발을 발사하고 마지막 사격을 시도한 4번 포불발탄이 발생한 순간, 북한의 포탄이 부대강타한다. 

부대 내에 떨어진 포탄 4발 1발첫 포포대강타. 1발3번 포외벽파괴하였고, 훈련 후에 반납하기 위해 포 뒤에 끌고 있던 장약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고 1번 포3번포 2문전기 계통마비된다. 이때 3번 포의 화재진화, 수동 조준으로 전환하고 응사에 나선다. 포탄의 직격탄을 맞은 첫 포의 화재는 심각해 응사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며, 해당 부대는 북한군의 포대목표80발대응 사격을 했다. 또 F-15KKF-16 전투기 4대씩을 해당 섬으로 비상 출격한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원 2명(서정욱 병장·문광욱 이병), 민간인 2명이 숨졌고 해병대원 16명중경상, 민간인 3명경상을 입었으며 산불가옥의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섬에 살던 주민 1,300명에게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고 합동참모본부는 즉각 진돗개 1호(비상사태 경보)를 발령, 김황식(1948~) 당시 국무총리전 공무원에게 비상 대기 명령을 발령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포격이 우리 군훈련에 대한 반발이라는 견해를 보인다. 사건 발생 시 한국군은 서해 부근으로 실탄을 이용한 군사훈련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은 [우리나라영해포격이 이뤄질 경우, 즉시 물리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팩스로 통보했지만, 한국군 측은 이를 무시하고 훈련을 진행했다.

사건의 이틀 전11월 21일, 김정일(1941~2011)과 아들 김정은(1984~)이 포탄을 발사한 개머리 해안포 기지무도기지포병 대대시찰하고 있었다고 여겨져 있다. 그래서 북한 수뇌부가 실시를 직접 계획, 지시·승인한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2012년 2월 16일 북한 노동신문[이 포격김정은지휘했다]고 발표했으며 해당 포격은 북한 군부 내에서 강경파로 알려진 김격식(1938~2015)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신문은 [김정은 영도자의 비범한 지략전술도발좌절당하고 연평도는 불바다가 되었다]주장했다.

11월 26일 연평도에서 북한 측으로부터 6발포성이 알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 관계자[북한의 훈련]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경]

한국전쟁에서 유엔군북한군휴전에서 군사분계선으로 휴전선이 설치되어 한국과 북한도 이에 합의했지만, 해상 경계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었다. 정전 뒤 1개월 만에 유엔과 미국이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했지만, 북한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 일대에서 군사 행동 반복하고 있었다. 

1999년에는 북방한계선보다 남쪽풍부어장과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연평도를 비롯한 도서북측포함, 해상 군사분계선을 북측이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이를 근거로 북한군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몇 번이나 북방 한계선을 넘어 한국군과 충돌하고 1999년에는 제1연평해전, 2002년에는 제2연평해전이 벌어졌다.

또 연평도 부근은 아니었으나 2009년대청도 근해에서 교전을 일으키고 있었고(대청 해전), 마찬가지로 2010년에는 백령도 서남쪽 해역 부근에서 한국 해군 초계함침몰하는(천안함 피격 사건)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대별 사건 진행]

- 2010년 11월 23일

8시 20분: 북한이 한국의 호국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텔렉스를 송부

10시 00분: 한국군은 이 요구를 무시하고 훈련을 시작

시간 불명: 북한 공군의 MiG-23 전투기 5대가 초계 비행

14시 34분: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 개시, 북한이 약 150발을 발사했고 그 중 약 70발이 섬에 명중

14시 38분: 한국 공군 KF-16 전투기 2대가 긴급 출동

14시 49분: 한국군이 약 50발의 대응 사격을 시행, 도민은 방공호 등으로 대피

14시 50분: 한국군이 주변 해역에 진돗개 1호를 발령

14시 55분: 교전이 일시 중단

15시 00분: 연평도의 관광객 약 200명이 고속선으로 섬에서 피난. 도민 일부도 어선으로 탈출

15시 10분: 교전이 재개

15시 20분: 일본 정부, 관저에 위기관리 센터를 설치

15시 41분: 교전 종료

15시 48분: 한국군이 도발을 중단할 것을 북한에 통보

15시 50분: 한국 소방방재청이 민방위대의 동원 준비를 전달

16시 05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냉정한 대응을 주문

16시 30분: 한국, 전 공무원에 비상 대기 명령

16시 35분: 한국 정부, 안보관계장관회의 개최

17시 00분: 소방구조대가 인천항에 도착, 일본은 간 나오토(菅 直人, 1946~) 당시 총리가 전 부처에 정보수집과 대비태세 준비를 지시

18시 06분: 청와대가 정부 성명을 발표

18시 40분: 미국, 백악관이 비난 성명을 발표. 미국 현지 시각 오전 4시 40분으로 이례적인 긴급 성명

18시 56분: 조선중앙통신이 북한의 성명 발표를 속보로

19시 28분: 조선중앙방송(라디오) 임시 뉴스로 성명을 발표

20시 30분: 김성환(1953~)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주한일본대사에게 상황을 설명

20시 37분: 이명박(1941~) 당시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를 시찰.

20시 45분: 일본 정부, 관저에서 긴급 각료 회의

22시 00분: 스티븐 보즈워스(Stephen Warren Bosworth, 1939~2016) 미국 정부 특별 대표가 베이징 호텔에서 [미·중은 자제적 대응을 취하기로]



- 2010년 11월 24일 이후

11월 24일: 한국, 새롭게 민간인 두 명의 사망을 확인

11월 25일: 한국, 당시 국방부 장관 김태영(1949~)이 사건 대응을 둘러싼 인책 사퇴. 다음날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후임으로 당시 합동참모의장인 김관진(1949~)을 지명(12월 4일 취임).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 당시 중앙위원회 위원이 포격기지 방문

11월 26일: 오후, 연평도 주변에서 6회 20발 이상의 포성이 들린다. 바다 건너 북한군이 내륙에서 사격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 중국, 11월 28일부터 서해에서 시행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반대

11월 27일: 한국, 연평도 포격에 대해 북한을 국방상 [주적]으로 하는 개념을 부활시킬 검토를 개시했다고 보도

11월 28일: 한국, 한미연합훈련 시작(12월 1일까지). 북한, 실크웜 대함미사일, 대공미사일을 서해 연안지대로 집결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

미국-중국, 힐러리 클린턴(Hillary Diane Rodham Clinton 1947~) 당시 미 국무장관과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国, 1941~) 당시 국무 위원이 전화 회담

11월 29일: 한국,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

12월 1일: 한국, 한미합동군사훈련 종료. 한국군은 6일부터 자체 포격 훈련을 시작한다고 밝힘

12월 3일: 일본-미국, 통산 10회째인 미일합동군사훈련을 시작. 한국군 옵서버로 첫 참가

12월 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6일부터 시작된 한국의 포격훈련에 대청도 앞바다가 포함되는 것에 반발한다고 밝힘. 미국-중국,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II, 1961~) 당시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후진타오(胡锦涛, 1942~) 당시 주석이 전화회담

12월 6일: 한국, 육·해·공군 합동으로 대북폭격훈련을 시작(최장 12일까지로 예정).

12월 8일: 한국군이 포격을 감지, 백령도 북동쪽 북방 한계선보다 북쪽의 북한 영해 내에 통상적인 사격 훈련으로 추측

12월 18일: 한국 정부 당국자, 한국군이 북한의 포격을 당했던 연평도 주변의 서해에서 18일부터 21일 열리는 해상사격훈련을 현지의 기상 조건 고려하여 20일이나 21일, 연평도 인근에서 사격 훈련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발표. 북한은 이에 반발, 재포격 가능성을 경고

12월 19일: 국제연합(UN), 러시아의 개최 요구에 따라 안보이사회가 긴급회합

12월 20일: 한국, 육·해·공군이 합동으로 연평도에서 사격 훈련을 약 1시간 반 동안 실시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공격을 받은 해병대 연평부대 기지의 모습>


[피해 상황]

1. 한국

- 사망: 4명(해병대원 2명, 민간인 2명)

- 부상자: 19명(해병대원 16명, 민간인 3명)

- 피난 인원: 약 1,400명

북한의 포탄은 대연평도중앙 구릉을 넘어 섬의 남동부에 있는 시가지까지 도달하였고, 화재도 발생했다. 한국 측 병사 2명이 숨지고 KBS에 의하면 한국 측의 사상자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11월 24일 해양경찰 당국이 대연평도의 피해조사한 결과, 착탄한 해병대 관사건설 현장에서 작업원 2명시신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른 희생자병사 2명, 민간인 2명총 4명으로 늘었다.

사건이 일어난 23일 21시 넘어서부터 주민의 피난이 시작되었고, 24일 1시 30분쯤까지 주민 394명인천 중심부에 도착. 이날 오전 중 나머지 주민 450여 명이 도착했다.

26일 오전에는 북한에서 다시 포격이 들리자, 주민은 다시 인천 중심부 등으로 대피했다.

28일 11시 18분 [북한의 도발 징후를 포착]했다는 이유로 긴급 대피 명령이 발령됐지만, 30분 뒤 해제한다.

건설 작업원과 해병대원들이 사망하였던 중대한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약 1,660명 주민 중 희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요인에는 섬사람들이 유사시에 대비해 마련한 대피소의 존재를 들 수 있다. 원래 북한까지 불과 1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섬이어서 포탄이 날아드는 것을 상정한 방공 시설이 많았으며, 주민은 일상적으로 대피 훈련을 시행하는 등 위기의식의 인식이 피해를 최소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피난 중에 이른바 도둑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고, 피난한 주민들이 기르던 애완동물이 연평도에 남겨지면서 동물 복지 단체는 이들 애완동물을 보호하였다.


2. 북한

현재까지 북한으로부터 피해 등의 영향에 대해 공식 발표는 없다. 한국 국내에서도 상세불명으로, 정보 통제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위성 사진으로 시설파괴된 모습이 촬영되고 있지만, 인적 피해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민간단체북한 소식통을 인용, 북한 장교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중상을 입었다고 말했으나 한국군 당국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후에 미국정보 관련 회사북한 쪽 사진공개했지만, 표적으로 된 군사 시설을 뛰어넘어 주변 논밭에 떨어진 흔적14군데 발견됐다. 이에 관해서 한나라당 김무성(1951~) 당시 원내대표는 2일 당 회의에서 [한국군연평도에서 반격으로 발사한 자주포 포탄 80발 중 위성 사진으로 탄착점확인된 것은 45발로, 나머지 35발바다에 떨어졌음]을 밝히고 [그 45발14발을 앞의 사진으로 확인한 결과로 표적인 북한 포대에는 1발명중하지 않고 모두 주변 논밭에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군이 추락 지점 반경 50m[폐허가 되었다]라고 보고한 포격의 위력에 대해서도 [논밭이 조금 흐트러진 흔적밖에 확인 못 했다]라고 말했다. 

초기 대응 지연에 덧붙여 응사가 효과를 발휘하지 않아 사건 대응을 둘러싼 이명박 정권새로운 비판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편, 중국 소식통은 북한의 피해는 한국보다 크다고 말했으며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한 관리들이 자국 피해가 남한의 몇 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단, 소식통은 북측의 피해 규모에 대해서 군대만의 피해인지 민간인을 포함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진 게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중국 국무위원인 다이빙궈는 2010년 11월 27일 방한 당시, 북측도 상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에서 2년 지난 2012년에는 연평도에 포격한 부대인 조선인민군 제4군단과 연락이 된 황해남도의 한 소식통이 미국 자유 아시아 방송3월 2일 방송에서 [연평도 전에서 북한군 10여 명사망하고, 약 30명부상했다는 소식을 북한군의 대대장에게서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북한군이 포격에 사용한 무기는 76.2mm 포와 100mm 이상의 포, 자주포, 다연장 로켓이 아니냐는 분석되고 있다. 또 100mm 이상의 포는 122mm로 혹은 152mm로 등의 보도도 있는 등, 정보엇갈리고 있다. 로켓포 무기 이름은 불명이나 BM-21(북한명, BM-11)가능성이 높다.

동아일보2010년 12월 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군이 전파 방해(ECM)를 시행하여 그 때문에 큰 피해가 생겼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있었음을 보도했다. 그 증언에 의하면, 포격에 앞서 북한군이 전자 펄스(EMP)에 의한 전파 방해를 시행. 그 때문에 한국군의 대포병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북한군의 포탄 발사 지점특정하지 못하고, 북한의 무도에만 반격. 최대 위력을 발휘한 다연장로켓포가 있는 개머리 해안에 대한 응사가 늦어져 피해가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일본군사 평론가 다오카 슌지(田岡俊次 1941~)[17km 거리곡사, 그것도 간접 조준으로 170발 중 80발이라는 놀라운 명중률]을 지적하면서 구식 무기가 많고 병사의 질이 떨어지며 군사 기술은 높지 않다고 하는 통설과는 달리 북한군의 군사 기술이 결코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초대 방위 대신 보좌관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1941~) 또한, 북한에서는 섬의 중앙에 있는 산에서 사각이 된 시가지를 정확히 겨냥하여 포격하고 있는 것, 그리고 포탄이 한 발도 섬을 뛰어넘어 바다에 추락하지 않은 점을 들어 북한군의 포격 정확도높은 것을 지적하고 있다.


<폭격으로 파괴된 민가>


[대응 조치]

1. 한국

청와대[우리 군교전수칙에 따라 즉각 대응했다. 추가 도발단호히 대응하겠다]라는 성명발표. 이명박 대통령을 필두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 이 대통령은 확대방지하도록 지시했다. 통일부2010년 11월 25일예정됐던 남북적십자회담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29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 군사적 대응도 서슴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

- 한국군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숙지하고 있다

- 북한의 무력도발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 민간인에 대한 군사공격은 반인도적 범죄다

- 북한의 핵 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 향후 북한의 도발에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 미국·일본·영국·독일 비롯한 여러 나라가 한국을 지지하고있다

- 특히,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강력한 대응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 서해 고토를 어떤 도발도 좌시하지 않겠다

또한, 당시 미국의 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12월 [국지 대응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보복]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것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한반도 전쟁을 우려하는 미국이 자제촉구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군이 대처시간이 걸렸다고 비판되면서 이스라엘제 미사일 스파이크를 배치하는 등 연평도의 군비 증강요새화를 추진하였다.



2.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으로 [남조선우리 영해에서 사격훈련을 하는 무모한 도발 행동을 취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이에 대해 단호한 군사적 조처를 했다. 앞으로도 남조선이 우리 영해에 침범한다면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 더하여 [우리가 설정한 분계선만이 존재한다]라고 떠들었다.

- 남조선은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 도발은 북방한계선을 고수할 악성 기도다

- 우리 혁명무력은 군사적 도발에는 즉각적인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응한다

- 도발자를 무자비한 철망치로 다스리는 것은 우리 군의 전통이다

- 향후에도 남조선이 우리 영역을 0.001mm라도 침범하면 주저 없이 군사적 타격을 가할 것이다

- 서해에는 유일하게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한다


27일에야 [민간인 사망자발생한 것사실이라면 지극히 유감]이란 논평을 낸다. 이것은 28일부터 한미합동훈련을 앞둔 한국 여론을 누그러뜨릴 의도가 있다고 여겨진다.

-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라면 매우 유감이다

- 미국과 남조선은 사태를 날조하고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대해서만 선전하고 있다

- 이번 책임은 [인간 방패]를 형성한 적의 비인간적 행동에 있다

- 적측의 포탄은 우리 진지에서 멀리 떨어진 민가 주변까지 무차별적으로 날아왔다


[각국의 반응]

1. 일본

- 초동: 포격시작30분 뒤15시 10분 지나서 일본 정부한국·중국·미국·러시아에서 정보 수집을 시작. 15시 20분에는 총리 관저정보 연락실이 설치되며 총리대신 관저에 있던 간 나오토 총리15시 30분경 알려졌다.

- 지시, 발언: 국회 대책을 마친 간 총리는 16시 45분, 관저로 가서 관련 장관들과 협의. 17시 10분경부터 보도진의 취재에 응하며 어느 나라보다 빨리 정상에 의한 사건 공식 발언이 나왔다.

- 정부의 견해: 이 되자,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1946~) 당시 내각 관방장관기자 회견을 하고 [북한포격용서할 수 없다] 등으로 일본 정부 견해를 발표한다.

[북한을 강하게 비난한다]

[한국 정부의 견해를 지지한다]

[이러한 행위를 즉각 그만두도록 촉구한다]

[관계국과 긴밀히 연계하여 대응하고 싶다]

- 국회: 26일 중의원·참의원 양원[무차별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포격은 언어도단의 폭거. 일반 주민연루시킨 무력 도발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북한을 비난하는 결의만장일치로 채택한다.

-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 禎一, 1945~) 당시 총재[미국한국과 제대로 제휴해, 중국에도 압력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 [일·미 동맹흔들림이 문제]라고 쓴소리를 했다. 또, 정부의 대응 지연에도 비판하고 있다.


2. 미국

로버트 기브스(Robert L. Gibbs, 1971~) 당시 백악관 대변인북한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이례적인 오전 4시 반(현지 시각)발표하면서 한국전쟁 휴전 협정준수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침 중이던 오전 3시 55분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고 한다.

필립 크롤리(Philip J. Crowley, 1951~) 국무부 공보담당차관보[북한의 도발 행위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중국매우 중요하다. 미·중 양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며칠 안에 대책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북한의 도발을 막도록 요구할 방침을 밝혔다.


3. 중국

중국 외무성[관련국들이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서 노력하길 바란다]와 한국·북한 양측에 냉정한 대응을 요구하며, 향후의 동향주목하였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복원에 나섰던 외교 상황다시 악화시킬 것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사태 타개를 위한 11월 28일에는 [중요한 정보를 발표하겠다]라고 예고한 후, 6자 회담 참가국 수석 대표 회의 개최를 제안했으나 한미일 삼국이 응하지 않았다.


4.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Серге́й Ви́кторович Лавро́в, 1950~) 당시 외교부 장관사건 자체비난했지만, 딱히 북한을 거명하진 않았다. 그리고 사건이 군사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표명한다.


5. 영국

윌리엄 헤이그(William Jefferson Hague 1961~) 당시 외교부 장관[북한한국이유 없는 공격을 강력히 비난한다]라는 성명을 냈다.


6. 프랑스

미셸 알리오 마리(Michèle Jeanne Honorine Alliot-Marie 1946~) 당시 외교부 장관[가장 단호한 태도로 비난한다]라고 성명.


7. 오스트레일리아

줄리아 길라드(Michèle Jeanne Honorine Alliot-Marie 1961~) 당시 총리[동아시아의 안정위협하는 것] 이라며 북한에 국제법준수적대적 행동중단을 촉구했다. 또 케빈 러드(Kevin Michael Rudd~) 당시 외교부 장관한일대응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8. 국제연합

반기문(1944~) 당시 사무총장[깊이 우려한다. 한국전쟁 종결 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라고 북한을 비난한다.


9. 국제형사법원(ICC-PCI)

ICC는 12월 6일, 지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이번 사건이 북한의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지 예비 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폭격으로 파괴된 민가 2>


[사건의 영향]

1. 시장

포격 소식이 알려진 시점에서 외환시장에서는 US 달러유로, 엔화에 대해서 크게 상승한다.

선물 시장에서는 미국 10년물 국채상승, 환율1달러 1,180원으로 급락. 미국 원유 선물23일 아침 유럽 거래하락, 한국은행은 시장의 영향우려하며 18시부터 임시 회의를 열었다.

증시에서는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지금까지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한 행동과는 다르므로 내일 시장하락세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포격미사일 발사보다는 문제지만 핵 실험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도 증시에 가해진 충격은 덜했다.

2. 스포츠

포격이 일어난 날은 정확히 중국 광저우에서 2010년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 종목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양궁 여자 개인 부문에서 한국 윤옥희(1985~)금메달, 북한 권은실(1983~)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나란히 시상대에 섰다. 

3. 여행

포격 사건 발생 이후 한국 여행취소외국인 관광객5,500명에 달했다. 가장 많았던 것은 일본 관광객 약 4,000명으로 절반 이상수학여행단체 손님이었다. 물론 사건이 어느 정도 지난 후, 금방 관광객 수는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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