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롬비아 일본인 부사장 납치 살인 사건(일본명, コロンビア邦人副社長誘拐事件)은 2001년 콜롬비아에서 야자키 그룹(矢崎総業グループ) 현지 법인 부사장이 좌익 게릴라에게 유괴되어 약 2년 9개월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2015년, 시리아에서 야스다 준페이(安田純平, 1974~)가 유괴되어 약 3년 4개월 후인 2018년 해방될 때까지 해외에서 발생한 일본인 납치 사건 중 최장기간이었다.
참고로 한국은 2011년 4월 30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제미니 호]에 탑승했던 한국인 선원 4명이 1년 7개월 동안 붙잡혀 있던 기록이 최장기간이다.
<야자키 그룹 본사>
[사건 발생]
2001년 2월 22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야자키 그룹의 현지 합작 기업 [야자키 시 메일(矢崎シーメル)]의 일본인 부사장(당시 52세, 아이치현 신시로시 출신)이 귀가 도중 보고타 북부 치아(Chia) 길거리에서 경찰관을 가장한 남자들의 정차 명령을 받고 끌려갔다.
그들은 부사장의 신병을 약 25만 달러(약 2억 9,000만 원)에 중남미 최대 좌익 반군 단체인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FARC)의 제53전선(로마냐 사령관)에 인도했다. 그 뒤 FARC는 일본인 부사장에 대한 몸값 2,500만 달러(약 294억 원)를 요구했다고 여겨진다.
야자키 그룹은 미국의 납치 중재 전문회사를 중개해 협상에 임했다. 애초, 일본 정부와 야자키 그룹은 사건을 극비로 했으나 그해 3월 중순, 콜롬비아의 엘 에스펙타도르(El Espectador) 신문이 부사장의 유괴를 보도하면서 사건은 일반에 알려진다.
[사건의 장기화]
부사장의 소식은 4월 하순, 보고타 남부 후닌 부근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끊겼고 부사장의 안부나 건강 상태 등 자세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은 채 사건은 장기화한다.
2002년 3월, 부사장의 가족이 현지에 부사장의 조기 석방을 호소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2002년 5월 20일, 콜롬비아 대통령부 치안국(DAS)은 보고타 교외에서 부사장의 유괴에 관여한 유괴단 [로스 칼 보스]의 멤버들을 체포했다. 이들은 재판에서 주범은 징역 40년, 공범은 16년부터 32년형까지 선고됐다.
2002년 7월, 콜롬비아 중부 산악 지대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이 부사장은 아니냐는 소식이 전해지자, 콜롬비아 주재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해당 장소를 방문했으나 해당 인물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2003년 8월, FARC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콜롬비아인 남성이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남부 메타주 인질 수용소에서 부사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해 10월 30일, 콜롬비아 정부군 제5사단은 보고타 북부에서 FARC 서방 사령관 마르코를 사살하였는데 당시 마르코는 [부사장을 정중히 대우하라]는 FARC 최고 간부 [빅토르 훌리오 수아레스 로하스(Víctor Julio Suárez Rojas, 1953~2010, 통칭 모노 호호이, Mono Jojoy)]의 지령서를 휴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부사장의 생존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시신 발견]
2003년 11월 24일, 콜롬비아 국군이 보고타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쿤디나마르카주 산후안 데 리오세코 부근 산중에서 부사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전투복 차림이었고 가슴과 옆구리에 여러 개의 탄흔이 있었다.
시신은 다음날 보고타 법무감찰 의무원에서 부검 되어 지문이나 치열, DNA 등으로 부사장 본인임이 확인되었다. 사인은 가까운 거리에서 AK-47 소총을 맞은 데 따른 과다출혈로 판명되었다.
콜롬비아 국방부에 따르면 24일 오전 10시 반경, 현장 부근에서 순찰 부대가 총성을 듣고 수색 중 오후 1시 반경 부사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야자키 그룹은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지급한 사실이 없다고 표명했다.
알바로 우리베(Álvaro Uribe Vélez, 1952~) 당시 콜롬비아 대통령은 27일 대통령 궁에서 야자키 그룹 관계자들과 면담하며 애도의 뜻을 표명. 대통령 본인도 아버지를 FARC에 살해당한 과거를 가졌기에,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하며 치안 회복에 전력을 다할 뜻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에 부사장 살해범 처벌을 요청했다.
부사장의 시신은 28일, 컨티넨탈 항공기로 콜롬비아를 떠나 미국을 경유해 30일 밤, 아이치현 신시로시에 있는 본인의 집에 도착했다.
부사장의 장례식은 12월 2일,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 있는 야자키 그룹 본사에서 열렸고 사장이 장의위원장을 지냈으며 해당 장례에 관계자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부사장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FARC 제22부대의 통칭, [우고] 사령관을 체포한 모습>
[범인의 체포와 죽음]
12월 6일 콜롬비아군은 보고타 교외에서 부사장을 납치, 감금했던 FARC 제22부대 소속 병사 두 사람을 구속했다. 두 사람은 부사장의 살해 직전까지 부사장의 감시역을 지냈고 군부대가 접근하자 캠프에서 도망쳤지만, 사령관이 부사장의 살해를 명령했다고 증언했다. 구속된 두 사람은 부사장의 살해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둘이 도망간 직후에 총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또 부사장 살해 이틀 전, 제22부대의 병사들이 군대에 투항하고 부사장의 감금 장소를 가르쳤다. 이렇게 군부대의 접근을 알아차린 게릴라가 인질 탈환을 우려해 부사장을 살해한 것으로 단정 지었다.
12월 15일 DAS는 보고타 교외에서 부사장의 살해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FARC 제22부대 지휘관인 [우고]를 체포했다. 우고는 그해 2월 보고타시 내에서 발생한 고급 나이트클럽 폭발 사건에도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26일 콜롬비아 검찰청은 우고를 유괴와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2004년 1월 9일, 콜롬비아군은 보고타 교외에서 부사장의 살해를 실행했다는 FARC 제22부대 병사로 통칭 [헤레미아스]를 총격전 끝에 사살한다. 국군은 이날 구속한 다른 병사 두 사람의 진술에서 헤레미아스가 부사장을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2005년 5월 2일, DAS는 보고타 교외에서 부사장의 유괴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3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2006년 8월 31일, 콜롬비아 검찰청은 부사장의 유괴를 계획했다며 FARC 최고 간부 [마누엘 마루란다(Manuel Marulanda, 1930~2008)]를 기소했다. 검찰 당국은 유괴가 FARC에 의한 계획적 범행이었다고 단정했다.
2009년 3월 2일, 콜롬비아 국군은 부사장의 유괴 살해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FARC 간부를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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