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12월 19일> 2013년 12월 19일 - 일본, <교자노오쇼 사장 살인 사건>

!@#^& 2019. 12. 18. 20:18


- 교자노오쇼 사장 살인 사건(王将社長射殺事件, 오쇼 사장 사살 사건)2013년 12월 19일, 오쇼 푸드 서비스(王将フードサービス) 당시 사장오오히가시 타카유키(大東隆行, 1941~2013)살해미해결 사건이다.


<오오히가시 사장이 살해된 오쇼 푸드 본사 건물 앞>


- 2013년 12월 19일 새벽, 교토시 야마시나구의 오쇼 본사 앞에서 오오히가시 사장이 직접 운전하던 자동차 부근에 심폐 정지 상태로 쓰러져있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이 확인된다.

이날 오전 5시 반경, 오오히가시 사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자가용으로 출근하였고 오전 5시 45분경에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내리자 매복한 범인으로부터 피격당한 것으로 보인다.

범행에 사용된 것은 소형 25구경 자동권총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4발의 총탄을 맞았으며 그 모든 것이 급소에 명중했다.

이날 야마시나 구내의 초등학교 12곳에 교사와 학부모 동반의 집단 하교가 시행된다. 또, 교토 시내와 일부 시읍면의 학교에서도 수상한 인물에 주의하라는 전단이 배포됐다.



12월 22일에는 오오히가시 사장의 자택으로 유족이나 회사 관계자 등 약 30명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2014년 5월, 오쇼 푸드 서비스는 오오히가시 사장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추도 교자(追悼餃子)]라는 의미로 사건 후에 약 2,000만 명이 전국 각지의 교자노오쇼 음식점에 다녀간 것과 갓 구운 만두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움직임이 확산된 것을 밝혔고, 후임 사장인 와타나베 나오토(渡邊直人, 1955~)는 [괴로울 때 많은 지원을 받았다. 감사를 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해 6월, 범인이 도주에 오토바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커졌으며 수사본부 등에 정보 제공만 300건이 넘었으나, 모두 범인으로 이어질 유력 정보는 아니었다.

2015년 12월,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유류품에서 검출된 DNA가 규슈 조직폭력배의 것과 일치했지만, 범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지 않았다.

이 폭력단원은 후쿠오카 현경 기타큐슈지구 폭력단 범죄 수사과가 쫓고 있던 인물로 행적을 놓치면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1~2일 전부터 실종된 상태였다.



- 오오히가시 사장은 간사이 경리 전문 학교(現 AST関西経理専門学校)에 입학하였으나 중퇴 후, 신탄, 얼음 판매업의 경영을 거쳐서 매형인 가토 아사오(加藤朝雄)가 1967년에 창업한 교자노오쇼 1호점에 1969년 입점. 1978년 영업 본부장, 1995년 부사장을 거쳐서 2000년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사장 취임 후에는 매일 아침 6시 전에는 출근하면서 본부의 회사 현관을 스스로 열고는, 현관과 주차장을 깨끗이 쓸고 물을 뿌렸다고 한다. 심지어 낮에는 화장실 청소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종업원이 깨끗한 회사에서 기분 좋게 일해줬으면 한다]라는 것이나 [본사 현관이 더럽다면, 가게에 갔을 때 '더럽다'고 지적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사장 전용차량이 있었으나 운전기사는 붙이지 않으며 스스로 운전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직영점 점장 300명 이상의 이름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업소 주인의 이름까지 전부 외우고 있었으며, 본부의 실내 벽에는 전원의 얼굴 사진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원의 생일에는 스스로 써낸 자기계발서를, 사원의 배우자 생일에는 꽃다발을 각각 증정하였다 한다.

2012년은 용돈으로 교자노오쇼를 이용하던 교토의 다치바나 고등학교 축구부 부원들이 전국 고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을 축하하고자 학교 근처의 점포를 임시 휴업시키고, 그들과 관계자를 포함하여 약 100명을 초청하면서 160인분의 만두 등 총 30만 엔 분을 준비한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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