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8월 12일> 1985년 8월 12일 -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

!@#^& 2019. 8. 13. 00:14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日本航空123便墜落事故)1985년 8월 12일 도쿄 하네다(羽田) 공항에서 출발, 오사카의 이타미(伊丹) 공항(現 오사카 국제공항)행의 이 회사 정기 항공편이었다.

JAL123편(보잉 747SR-46, 등록번호: JA8119, 제조번호: 20783)보잉사부적절한 수리가 원인으로 지목된 압력 격벽(Aft pressure bulkhead)이 비행 중에 파손, 그 여파로 수직 꼬리 날개보조 동력 장치탈락하면서 유압 조종 시스템을 모두 상실했다. 그 결과, 완전 조종 불능에 빠진 비행 끝에 결국 군마현(群馬県) 다노군(多野郡) 우에노무라(上野村)다카마라하가(高天原)능선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524명 중, 단 4명을 제외한 520명이 숨졌으며 일본 항공 역사상 최악의 사고뿐만 아니라 단일 항공기로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기록한 항공 대참사다.


123편 여객기는 상기한 보잉 747SR-46로 1974년 1월제조1985년 8월 19일 등록 말소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의 항공 회사에서 운항하고 있던 같은 기종의 비행기로는 추락 사고에 의해서 등록 말소된 첫 사례였다. 

이 사고가 일어나기 약 7년 전1978년 6월 2일, 하네다 발 이타미 공항으로 향하던 해당 사고기는 도착지인 이타미 공항착륙하려고 할 때, 기체 꼬리활주로접촉하면서 파손되는 사고(테일 스트라이크)가 발생한다. 이 사고로 인해 발생한 손상부위에 대한 수리를 제조사인 보잉사가 진행하였는데, 압력 격벽(벌크헤드)을 수리하는 도중에 발생한 작업 실수가 추락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1985년 2월부터 사고 당일까지, 해당 여객기에서는 객실 뒤쪽화장실 문에 대한 문제28건 발생했다. 사고 조사 보고서에는 테일 스트라이크로 인하여 생긴 기체왜곡으로 인해, 화장실 출입구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사고기 JAL123편의 비행 경과, 기재되어 있는 것은 각 지점에서의 시각비행 고도, 대기속도[각주:1]다>


사고 당일 JAL123은 하네다 공항18시 00분에 출발, 이륙 후에 남서쪽으로 진행한 뒤 이즈오섬(伊豆大島)에서 서쪽으로 순항, 와카야마(和歌山) 히가시무로(東牟婁) 구시모토정(串本町) 상공에서 북서쪽으로 선회, 이타미 공항에는 18시 56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용된 JA8119번기(비행 횟수는 약 18,800회)는 당일 123편명으로 5번째 비행 예정이었다. 이타미 도착 후에는 130편명으로 이타미 발 하네다행 최종 편을 운항할 예정이었기에 연료3시간 15분 정도의 비행이 가능한 양을 탑재했다.

한편, 조종석에 탑승한 조종사와 항공기관사객실승무원은 다음과 같다. 


- 기장다카하마 마사미(高濱雅己), 당시 49세미야자키(宮崎) 출신, 비행시간12,423시간 41분으로 운항 부문 지도 교관이었으며 그날은 첫 비행으로, 기장이었으나 부조종사기장승격 훈련으로 인해서 부조종사석에서 부조종사의 지도무선교신 등을 담당했다. 

- 부조종사: 사사키 유타카(佐々木 祐), 당시 39세구마모토(熊本) 출신, 비행시간3,963시간 34분으로 기장 승격 훈련생이었다. DC-8에서는 기장으로서 승무했으며 사고 당일 다른 비행기에서 승무하고 JA8119에 환승했다. 기장 훈련을 위해 기장석에서 조종승무원 지시를 맡았다.

- 항공기관사: 후쿠다 히로시(福田 博), 당시 46세교토 출신, 비행시간9,831시간 3분으로 엔지니어 부문 교관이었다. 하네다-후쿠오카 선 363・366편으로 JA8119에 승무.

- 수석사무장: 하타노 준(波多野 純), 당시 39세로 총 비행시간10,225시간.

이하 여성 승무원11명.


승객509명으로 탑승방식보딩 브릿지[각주:2]가 아닌 탑승 대합실에서 지상으로 내려가서 도보트랩을 오르는 탑승이었다. 18시 04분 승객 524명을 태운 JA8119기는 JAL123편으로, 정해진 시간보다 4분 늦게 하네다 공항 18번 스팟을 떠나서 18시 12분활주로 15L에서 이륙했다.


<당시 JAL123편 조종사항공기관사의 모습, 좌측부터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다>


이륙 12분 후18시 24분, 사가미만(相模湾) 상공을 순항 고도24,000ft(7,200m)로 상승 중, 23,900ft 통과 지점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JAL123편의 수직 꼬리 날개는 수직 안전판의 하반부만 남기고 파괴, 보조 동력 장치상실하면서 유압 조종 시스템4계통 모두가 손상이 발생한 결과, 조종 시스템에 필요한 유압유가 모두 새어나가서 유압을 사용하는 승강키[각주:3]보조날개조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휴고이드[각주:4]와 더치 롤[각주:5]을 일으킨 기체는 상승하강을 반복했지만, 조종사들의 필사적인 조종으로 17분 동안 20,000ft(6,000m)에서 비행을 유지했다. 18시 40분경, 공기 저항을 이용하는 강하 수단으로 랜딩 기어[각주:6]를 내린 뒤, 후지산(富士山) 동쪽 자락을 북상하고 야마나시현(山梨県) 오쓰키시(大月市) 상공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선회하면서 고도 22,000ft에서 6,000ft로 단번에 15,400ft(4,600m)를 하강하면서, 요코타(横田) 비행장까지 24km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그 후, 기체는 하네다 방면으로 향하다가, 사이타마현(埼玉県) 상공에서 좌회전하면서 군마현 남서부의 산악 지대로 향한다.

JAL123편은 폭발음 발생부터 추락까지 파편을 흩뿌리며 비행했는데, 사가미만추락 현장뿐만 아니라 도쿄도 니시타마군(西多摩郡) 오쿠타마정(奥多摩町) 닛파라(日原)에서도 기체파편이 발견되었다. 그 오쿠타마정에서 일반인촬영한 사진에서 JAL123편이 수직꼬리날개 대부분을 잃은 상태에서 비행 중이던 것이 훗날 드러났다.


<이것이 일반인촬영했다는 추락하기 전의 JAL123편의 모습. 상기한 대로 수직꼬리날개 없이 날고 있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내에서는 충격음이 울린 직후, 각 좌석에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왔고 긴급상황 시 자동으로 나오는 방송[각주:7]이 흘렀다. 승객들은 객실 승무원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면서 담배도 끄는 등[각주:8] 비상상황을 대비하였다. 일부 좌석에서는 입수에 대비해서 구명조끼 착용 등도 진행했다.

수석사무장은 전 객실 승무원에게 기내방송으로 산소탱크준비를 지시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내는 이상이 발생한 직후부터 추락까지 별다른 혼란에 빠지지 않았고, 그 공포의 순간에도 전원 침착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이후, 승객들은 추락 시 충격에 대비해서 이른바 충격방지자세[각주:9]를 취했다고 한다.

승객 중에는 최후를 각오하고, 불안정한 기체 속에서도 열심히 가족에게 유서를 남긴 사람이 여럿 있었다. 이 유서는 나중에 사고 현장에서 발견되어 희생자들의 비통한 마음을 전했는데, 일반적으로 비행기 추락 사고 시에는 몇 분의 여유도 없이 곧바로 추락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사고에서는 30분 이상에 걸쳐서 비행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서쓸 시간이 충분히 있던 보기 드문 항공 사고이다.

(*유서 내용다른 분들이 많이 다루셨기에, 검색하시면 금방 나옵니다. 여기서는 따로 다루지 않습니다.)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자들은 "승무원들은 시종 승객들을 도와주었다."증언하고 있으며, 기체장착보이스레코더(CVR)에는 유아를 동반한 부모에게 아이의 포옹을 지시하는 방송, 신변 확인을 요구하는 방송, 불시착을 예상했는지 "예고 없이 착륙하는 경우도 있다."라는 방송, "지상과 교신되고 있다."등, 추락 직전까지의 방송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객실 승무원 한 명이 불시착 이후에 대비해서 승객들에게 보내는 지시를 열거했던 메모와 이상 발생 후, 객실 내부를 찍은 카메라추락 현장에서 발견되었고 그 당시 기내의 사진이 언론사를 통해서 세간에 공개되었다.


<당시 기내의 모습, 승객승무원들이 비교적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음성 기록장치교신조종사 간 대화 내용>


- 18시 24분 47초: JAL123편이 긴급 구난 신호무선 신호를 발신한다. 신호는 도코로자와(所沢)도쿄 항공 교통 관제부(東京航空交通管制部: 이하 도쿄 ACC)에 수신되었다.

- 18시 25분 21초: 123편 기장기체 이상 발생의 연락과 동시에 하네다로의 귀환 2만 2천 피트(고도 약 6700m)에 대한 강하무선으로 요구, 도쿄 ACC는 이를 승낙한다. 그리고 JAL123편은 이즈오섬레이더 유도를 요구했다. 관제부는 어느 쪽으로 선회할 것이냐고 묻자, 기장은 오른쪽으로 선회하기를 희망했다. 한편, 하네다 공항비상 착륙대비한 준비에 들어갔다.

- 18시 27분 2초: 도쿄 ACC가 123편에 긴급 사태선언하는지 확인하고, 123편에서 선언이 나왔다. 이어서 123편에 대해서 어떤 긴급 사태인지를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 이 때문에 ACC는 JAL 본사에 123편이 긴급 신호를 발신하고 있는 것을 알린다.

- 18시 28분 31초: 도쿄 ACC는 123편에 정동(正東) 쪽으로 가도록 지시하였는데, 이때 기장은 "But Now Uncontroll(조종 불능)"이라고 대답한다. 도쿄 ACC는 이때 처음으로 123편이 조종 불능빠진 것을 알아차린다. 관제실의 스피커가 ON으로 되었고, 123편의 교신이 관제실 전체에 공유된다.

- 18시 31분 2초: 도쿄 ACC에서 123편이 강하할 수 있는지의 질문에, 해당 사고기는 강하 중이라고 답변한다. 도쿄 ACC는 하네다보다 가깝고 선회도 최대한 적게 할 수 있는 고마키시(小牧市)나고야(名古屋) 공항에 비상 착륙을 제안하지만, 123편은 하네다로의 비행을 희망하였다. 항공기와 지상과의 무선 교신규정에 따라서 영어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통제부는 123편의 기장이 사고기의 조종영어로 교신까지 해야 하는 부담을 가졌을 것을 고려해서 일본어의 사용을 허가, 이후의 교신에서 123편은 대부분 일본어로 교신하였다.

- 18시 33분경: JAL은 컴퍼니 라디오(일본 항공의 사내 무선)로 123편에 교신을 요구한다.

- 18시 35분 33초: 123편에서 R-5파손되었다는 연락[각주:10]을 받은 그 시점에서 긴급 강하하고 있었기에, 나중에 호출할 때까지 무선을 청취하도록 요청되었고 JAL은 승낙했다.

- 18시 40분 44초: 도쿄 ACC가 123편을 다른 여객기와 헷갈리지 않도록 교신을 나누어서 구분할 수 있게 123편에 전용 무선 교신 주파수를 할당하고, 123편에 해당 주파수로 바꾸도록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당시 거의 동시에 기장의 "기수올려, 그딴거 상관없어."라는 발언이 기록되어 있다.

- 18시 41분 54초: 역으로 123편을 제외한 모든 비행기에 대해서 그 주파수로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교신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피하도록 요구했으나 일부 항공기는 정기 주파수로 교신을 계속하겠다는 의견에 관제부는 교신을 하는 비행기에는 개별로 지시했다.

- 18시 45분 36초: 항공 무선의 교환을 감청하던 주일 미군 요코타 기지(RAPCON)가 123편의 지원에 나서면서, 영어로 123편에게 미국 공군이 준비한 주파수변경하도록 요구했지만, 123편에서는 "Japan Air 123, Uncontrollable!(JAL123편, 조종 불능!)"이라는 소리만 돌아왔다. ACC가 "도쿄 어프로치(도쿄 국제공항)와 교신할 것인가?"라고 123편에 제안하지만 123편은 "이대로 부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 18시 47분 10초: 123편은 지바현(千葉県) 기사라즈시(木更津市)레이더 사이트로 유도하도록 정동쪽으로 지시한 도쿄 ACC는 "조종이 가능한가?"라고 질문하니, 123편에서 "Uncontrollable(조종 불능)"이라는 대답이 왔다. 이때 도쿄 ACC는 관제사는 "아앗"이라는 123편 조종석의 급박한 목소리를 들었고, 그 뒤 ACC는 도쿄 어프로치의 무선 주파수변경할 것을 요구했으며 123편은 승낙했다.

- 18시 48분 54초: 말없이 123편에서 기장의 거친 호흡 소리만 기록되고 있다.

- 18시 49분: JAL이 컴퍼니 라디오로 3분간 호출을 했지만, 답이 없었다.

- 18시 53분 30초: 도쿄 ACC가 123편을 불러냈다. 123편은 아까와 같이 "조종불능"이라는 무선이 들어온다. ACC와 요코타의 RAPCON이 답변하고, RAPCON은 요코타 기지긴급 착륙수락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고 답변한다. 도쿄 ACC도 도쿄 어프로치의 무선 주파수로 변경하라고 재차 요구, 123편이 승낙한다.

- 18시 54분 25초: JAL도 호출했지만 여전히 답이 없었다. 한편 123편에서 현재 위치를 묻자 도쿄 ACC가 하네다에서 55마일(100km), 북서로 구마가야시(熊谷市)에서 25마일(45㎞) 떨어진 서쪽이라고 알려주었다.

- 18시 55분 5초: 요코타 비행장의 항공 관제관이 이때만 "일본어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서론, 도쿄 어프로치로부터 "하네다와 요코타가 긴급 착륙 준비를 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최우선으로 착륙할 수 있다."라고 알리고 항공 기관사"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123편에서의 마지막 교신이었다. 그 직후에 도쿄 어프로치가 123편에 향후계획을 물어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그 뒤에도 56분 전까지 도쿄 어프로치와 요코타의 RAPCON이 123편에 호출을 했지만, 응답은 없는 상태였다.

- 18시 57분: 요코타의 RAPCON이 123편에 "귀하의 비행기는 요코타의 북서 35마일(65㎞) 지점에 있어서, 요코타 기지에 최우선 순위로 착륙할 수 있다."라고 외쳤고, 도쿄 어프로치도 123편에 요코타 기지로 주파수를 변경하도록 요구했지만, 이미 123편은 오스타카 능선추락했다.

(*참고로 사고기음성이 이렇게 알려지게 된 것은 당시 상황을 수록한 카세트테이프가 2000년 7월경 매스 미디어유출된 것이다. 그 일부 음성이 8월 들어서 잇달아 텔레비전 방영되면서 추락 사고에서 15년이나 지나서야 일반인이 추락 직전 조종석의 모습을 처음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JAL123편의 추락지점>


크루의 필사의 노력도 소용없이, JAL123편은 강하하면서 18시 56분 14초지상접근경보장치[각주:11]가 작동, 17초경에는 근소하게 기수를 올리고 올라가기 시작했으나 23초오른쪽 주날개기체 후부수목접촉하고, 이때의 충격으로 제4엔진탈락했다. 이때 기수를 올리기 위해서 엔진 출력을 올린 것과 급강하로 인해서 속도346kt(640km/h)에 이르렀다. 접촉 후 일단 상승했지만, 기체는 크게 기수를 낮추며 오른쪽으로 70도 기울어진다. 26초에는 오른쪽 날개 끝 능선에 부딪히면서 충격으로 오른쪽 날개 첨단수직·수평 꼬리 날개, 1,2,3번 엔진이 탈락, 이어서 28초에는 기체 후부분리됐다. 기체는 기수를 숙이면서 반전된다. 

18시 56분 30초다카마가하라산 비탈에 거의 뒤집힌 상태에서 충돌, 추락했다. 보이스레코더는 18시 56분 28초까지 녹음되고 있었고, 23초에서 26초경에 충돌소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23초충격음 직전에는 고도를 올리라는 "PULL UP"이라는 경고 소리에 뒤섞여서 기장의 "아, 안 되겠다" 혹은 "이제 틀렸다"라고 들리는 외침이 기록됐다. 당시 보이스레코더에 녹음되어 있던 음성기록들은 후에 활자공표되었지만, 이 외침만은 판독 불능으로 여겨지고 있다.

추락 때 충격[각주:12][각주:13]에 의해서, 기체 앞부분부터 주 날개 부근구조체원형을 남기지 못한 채 파괴되었고 단열한 두 날개와 함께 불타버렸다. 한편, 28초에 분리된 객실 후부꼬리산의 능선을 넘어 사면추락했다. 객실 후부는 능선격돌을 피해 사면에 평행에 가까운 각도로 착지하고, 수목을 치면서 능선의 비탈을 미끄러져서 시간을 두고 감속했다. 

이 때문에 가장 충격이 적었고, 그 외의 부위와 비교해서 경도 손상에 그쳐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요인에 의해서 객실 후부좌석에 앉아 있던 여성 4명기적적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즉사 혹은 죽음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숨진 사람도 많았지만, 추락 직후 객실 후부 부근중심으로 상당수 승객생존해 있었으나 다음 날 아침수색대도착하기 전에 연이어 숨을 거뒀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있다. 즉, 좀 더 빨리 수색을 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처참하게 파괴된 JAL123편의 파편>


18시 28분경, 지바현에 위치한 항공자위대(통칭 오카야마 레이더 사이트)에서도 123편의 긴급 신호수신했다. 즉시 직속 부대중부 항공 방면대에 보고되었고, 항공 구난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항공 자위대의 중앙 구난 조정소(RCC: Rescue Coordination Centre)가 활동을 개시한다.

18시 56분경, 당직 사령은 123편이 추락했다고 판단하고 중부 항공 방면대 사령부스크램블 대기 중인 F-4 EJ 팬텀에 의한 긴급 발진제안했다. 19시 01분 제의를 승낙한 기지 사령관의 지시로, 이바라키 비행장(百里飛行場)에서 F-4 전투기이륙했다.

도쿄 항공국 도쿄 공항 사무소(하네다)는 123편의 긴급 사태 발생을 받아들고, 즉시 도쿄 구조 조정 본부(Tokyo RCC)를 개설하고 비행기의 긴급 착륙 태세를 갖췄다. 그 뒤 도쿄 관제부레이더에서 소실(18시 59분에 확인)된 사태로 본부는 방위청, 경찰청, 소방청, 해상 보안청관계 기관에 통보(19시 03분), 123편의 수색에 나섰다. 

추락 약 20분 뒤인 19시 15분경, 미 공군C-130 수송기군마나가노현 사카이 부근산중큰 화재를 발견하고 상공 위치에서 항공 자위대 중앙 구조 조정소통보한다. 19시 21분경 항공 자위대의 이바라키 기지에서 긴급 발진한 F-4 전투기 2대도 추락 현장 화재발견하고, 상공 위치에서 제보한다. 

추락 약 1시간이 지난 19시 54분, 이바라키 기지 구조대의 KV-107 헬기46분 뒤20시 42분현장 상공에 도착했다. 20시 33분에야 구조 조정 본부(도쿄 공항 사무소장)로부터 항공 자위대에 항공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당시 KV-107 구조 헬기는 야간 구난 작업은 가능했지만, 적외선 열상 장비 등의 본격적인 야간 구난 장비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사고 당일 밤, 별다른 구조 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주일미군 항공자위대가 파악한 추락현장위치보고올바른 정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그 정보가 활용되는 일은 없었다. 사고기의 조난에서 약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나온 항공 자위대에 대한 재해 파견 요청 배경에는 교통부 항공국 도쿄 공항 사무소에서 "위치확인되지 않아서 정식으로 출동 요청 할 수 없다"라는 간부들의 판단과 교통부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진 지점특정하라고 몇 번이나 도쿄 ACC에게 전화가 들어가는 등, 엉망진창이었다.


<JAL의 추락현장, 취재에 눈이 먼 취재진들과 수색대가 뒤엉켜 혼란스럽다>


지상에서는 군마현, 사이타마현, 나가노현 경찰추락 현장수색을 담당했다. 20시 21분에는 나가노현 우스다 경찰서순찰차 "사이타마 현과 군마 현 경계 근처에서 검은 연기가 보인다"라고 통보, 21시 39분에는 사이타마와 나가노 두 현의 경찰 순찰차가 미쿠니 고개(三国峠)서북서붉은 연기를 발견한다. 한편 나가노현 경찰추락 현장군마현 측산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성명 미상제보아사히 신문 등의 오보 등으로 지상에서의 수색 혼란을 가져다주었다(민,관,군 하나 되어서 을 망치는구나).

그러다 8월 13일 오전 4시 30분경, 항공 자위대 구조대에 의한 추락 기체발견 이후5시 10분 육상 자위대 헬기에 의해서 기체를 확인, 이후 경찰들에 의해서도 차례로 추락 현장의 상황이 확인된다. 당시 군마현 우에노 촌구로사와 타케오(黒沢丈夫, 1913~2011)[각주:14] 촌장은 TV 방송 영상을 보고 현장마을 내스게노 골짜기(スゲノ沢)라고 판단,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있던 한 소방대원에게 수색대길을 안내하도록 요청한다. 현장까지 얼룩조릿대가 무성한 경사각 30도거친 비탈에서 약 2km의 길로,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험한 길이었다.

추락에서 약 14시간 후8월 13일 오전 8시 반, 나가노 현경 기동 대원 2명헬리콥터현장 부근강하를 통해 내려갔고 그 후에 육상 자위대 제1공정단 요원들이 현장강하하면서 구조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에노촌 소방단, 군마현경 기동대, 경시청 기동대, 육상 자위대, 타노후지오카 광역 소방본부 후지오카 소방서의 구조대현장도착해서 본격적인 구조 활동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8월 13일 오전 11시경, 4명생존자가 발견되었는데 4명 모두 중상을 입고 있어서 육상 자위대 헬기로 우에노촌 임시 헬리포트까지 이동, 4명 중 두 사람은 도쿄 소방청 헬기로 후지오카시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추락지점마을 촌장이었던 구로사와 타케오씨. 태평양 전쟁 당시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여하였고, 소령으로 제대 후에 마을로 돌아와서 1965년부터 2005년까지 40년 동안 촌장으로 활동했다>


사고기에는 다량의료용 방사성 동위 원소화물로서 적재되어 있었다. 또, 기체에는 진동방지하기 위해서 일부에는 열화우라늄 부품도 사용됐다. 이들 방사성 물질이 추락 때문에 현장 주변에 흩날리면서 방사능 오염을 일으키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수색지로 향하던 육상 자위대의 부대는 곧바로 현장에 가지 않고, 별도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했다고 한다.

1995년 8월에 당시 123편을 수색한 록히드 C-130 수송기에 탑승했던 전 주일 미군 중위가 사고 직후, 미국 해병대 구난 헬기를 현장으로 유도했으나 구조 개시 직전중지 명령을 받았고 또한, 그 사실도 발설하지 않도록 상관으로부터 지시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생존자 증언에 의하면 추락 직후 현장에 헬기접근하자 목소리를 높이거나 손을 흔들었지만 구조하지 않고 곧 멀어졌다고 한다. 또, 보도 기관으로는 사고 현장을 가장 빨리 발견아사히 신문사의 헬기가 현장을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헬기목격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일본 측미군구조 협력거절했다." 보도하면서, 구난 체제미비관계 당국자세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었다.


[승객들에 대한 이모저모]

사고가 발생한 날여름 방학 중으로, 일본의 명절오본(お盆) 전날이었기 때문에, 당일 일본항공이나 전일본공수(全日本空輸) 등의 국내 항공 각 편에는 출장에서 돌아오는 회사원, 귀성객이나 관광객이 많이 탑승했다. 거의 만석의 상태로 해당 사고기는 사람들로 꽉꽉 찬 상태였다.

생존자는 4명으로 당시 비번JAL 승무원26세 여성, 34세 여성8살 초등학생 모녀, 그리고 만 12살여중생이었다. 구조대 도착 시에 현장에서 실제 몇 명생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엇갈렸다. 그래서 생존자 4명은 발견 후에도 현장에서 바로 헬기 수송이 이뤄지지 않아서 몇 시간이나 사고현장에서 대기했는데, 특히 34세 여성과 8살 모녀중상불볕더위로 많은 체력소모했다.

구조대는 생존자인지 시체인지 판별할 때 부르거나, 때릴 때 반응이 있는지, 손을 만져 이 있는지 등으로 확인했다. 그러다가 생존자 발견 후, 의사·간호사추락 현장에 헬기로 파견, 생존자 4명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나머지는 모두 시신으로 후지오카 시민 체육관으로 옮겨졌다.


(*시신 사진 등은 보는 분들에 따라서 매우 잔인할 수 있기에 이곳에는 올리지 않습니다. 해당 사고 제목으로 구글 등에서 검색하면 잘 나오므로 그쪽으로 참고하시길...)


[당시 사고기에 탑승한 유명인]

1. 사카모토 규(坂本九: 당시 43세, 가수) - 아시아 최초 빌보드 1위를 기록한 유일한 가수[각주:15][각주:16]로, NHK-FM 방송 녹화 후에 친구인 전 매니저선거 유세를 돕고자, 다음 열리는 사무소 개소식참석하기 위해서 오사카에 가고자 탑승했다.

2. 기타하라 요코(北原遥子: 당시 24세, 배우) - 다카라즈카 가극단[각주:17] 출신의 배우로 귀성차, 요코하마의 친정에서 오사카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탑승했다.

3. 나카노 하지메(中埜肇: 당시 63세, 한신 전기철도전무이사 철도 사업본부장 및 일본 야구팀 한신 타이거스 구단 사장)

4. 우라카미 이쿠오(浦上郁夫: 당시 47세, 하우스식품공업 대표이사 사장)

5. 츠카하라 나카아키라(塚原仲晃: 당시 51세, 의학박사 및 오사카대학 기초공학부 교수)

6. 모토아키 타케시타(竹下元章: 당시 47세, 야구팀 히로시마 카프 포수 출신) - 일본 고교 야구 대회고시엔에 출전한 고교 2학년아들응원하기 위해서 고시엔 구장에 가려고 탑승했다.

7. 히모토 코린(緋本こりん: 당시 26세, 동인 만화가) - 사고 전날(11일)에 개최한 코믹 마켓[각주:18]의 애니메이션 잡지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기 위해 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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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수습시신들은?]

유족 대기소시체 안치소로 사용된 군마현 후지오카시내 소학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체육관을 비롯한 학교 건물개방되었다. 시신의 반출에는 육상 자위대, 도쿄 소방청, 근린 각 현경, 경시청, 해상 보안청의 헬리콥터가 투입되었다.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는 장소후지오카 시립 후지오카 제1 소학교 교정, 시신 검시안치소(舊) 후지오카시민체육관에 설치됐다. 8월 14일 오전 9시경, 추락 현장에서 직선거리약 45km 떨어진 군마현 후지오카시로 향할 유해 반출 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지 군마현 경찰의사회 소속 의사외, 군마현 의사, 군마 대학 의학부 및 도쿄 치과 대학의 교수진, 법의학자, 치과의사, 간호사, 일본 적십자사 관계자 등이 신원 확인 작업동참했다. 그러나 추락 시 시속 600km에 달하는 엄청난 충격화재산등성이그 주변에서 발견된 희생자 시신의 대부분은 심하게 손상됐고, 한참 더운 8월여름이었기에 시신 부패 진행도 빨랐다. 당시는 DNA 감정 기술도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법의학 체계를 갖춘 일본도 희생자들의 신원파악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기적적으로 산등성이에 대한 격돌을 피해서 산비탈을 미끄러져 간 기체 후부충격도 적었고 화재에도 말려들지 않았기 때문에 골짜기 사이에 발견된 희생자들의 시신골절이나 출혈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생존인지 사망인지 겉으로 볼때는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여기서 상기한 4명의 생존자가 발견된 일도 있었고, 골짜기로 달려간 자위대원과 우에노 촌 소방단원은 신중을 기하면서 각자의 몸을 흔들거나 을 짚는등 생사를 확인했지만, 4명의 생존자제외전원이 사망했다. 그래도 이나 소지품손상이 거의 없었고, 시신의 식별확인원활히 진행되어서 8월 14일까지 대부분의 시신유족들에게 인계되었다.

최종적인 신원 확인 종료까지는 약 4개월의 시간과 엄청난 인원이 필요했다. 여기서 끝까지 확인하지 못한 시신들은 사건이 발생한 그해 12월군마현 회관에서 거행된 합동 위령제에서 발인제가 열렸고, 화장 후추락 현장과 가까운 군마현 우에노촌의 '위령의 정원(慰霊の園)'납골, 안장됐다. 한편, 검시와 안치소사용된 후지오카 시 시민 체육관시신송장 썩는 냄새가 빠지지 않자 해체 후, 다른 위치에서 새롭게 체육관을 지었다. 구 시민 체육관 자리에는 시신 안치 장소를 나타내는 비석을 세웠다.


<신원을 밝히지 못한 시신들을 화장안치위령의 정원 모습>

<영화 지지 않는 태양(2009)에 묘사된, 당시 후지오카 시민 체육관에 시신들이 안치된 관이 빼곡하게 차 있다>

<당시 시민 체육관의 실제 모습>


운수성(現 국토교통성) 항공 사고 조사 위원회8월 14일추락 현장으로 가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이 조사에는 사고기제조국미국 NTSB(미국 연방 교통안전 위원회)사고 조사관들이 고문으로 참가했다. 사고로부터 약 1개월 만인 9월 6일, 사고기의 제조사보잉사성명발표하였는데 테일 스트라이크 사고로 해당 제조사의 압력 격벽 수리실수가 있었음을 인정였다.

그러나 형사 재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형사 책임 추궁을 두려워서 미국 일본의 관계자묵비권을 행사하였고, 사고 조사 보고서도 사고기의 트러블에 이르는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 후 2년여가 지난 1987년 6월 19일, 운수성 사고 조사 위원회사고 조사 보고서공표하고 본 사고의 추정 원인을 밝혔는데, 그 요지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다. 사고기후부 압력 격벽손상되었고, 그 손상 부분으로부터 객실 내의 공기기체 후부유출됨으로써 기체 미부수직 꼬리날개파괴가 일어났다. 이어서 4계통 유압 파이프모두 파괴되면서, 유압유유출되고 조종 기능의 상실이 일어났다. 압력 격벽의 파손격벽의 접속부 금속 피로로 발생한 균열격벽강도가 저하되었고, 비행 중여압을 견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균열1978년에 일어난 비행기의 테일 스트라이크 당시, 미국 보잉사수리부적절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후 점검에서 이러한 이상발견하지 못한 것사고원인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보고서에서는 조사 결과에 근거해서 대규모 기체수리시행하는 경우는 그 수리 부분을 특별히 점검 항목추가해서 계속 감시할 것과 여압 구조손상되었을 경우의 페일 세이프[각주:19]기준추가할 것 등을 권고했다.


<희생자수습하는 자위대원의 모습>


[사고, 그 이후...]

해당 사고가 일어난 1985년에는 비행기이용하는 일본 국내 여객2.1% 줄어들면서 각 항공사경영악화하였다. 이에 대비해서 기차를 이용한 수송 인원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전년 대비 9.8% 증가했다. 그리고 하네다-이타미를 오가던 JAL123편명1985년 9월 1일 결번 되었으며, 나중에 이 편명과 대응되는 JAL122의 편명도 결번 처리가 됐다. 그리고 사고기잔해는 경찰이나 검찰청의 사고 검증 뒤, 나리타 국제공항에 있는 JAL격납고 내에 보존되었다. 한때는 기체 파기검토되었지만, 희생자 유가족 모임8.12연락회(8.12連絡会)가 JAL에 청원한 끝에 기체는 일본 항공 안전 계발 센터전시되었다. 

사고 당시 JAL은 완전 민영화이행 방침을 결정했는데, 본 사고영향에 의해서 경영악화하면서 안전 체제경영 자세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일본 정부 주도의 근본적인 체제 쇄신이 이뤄졌다. 정비사 제도의 도입이나 절대 안전의 확립이라는 새로운 경영 방침의 하나로 내걸었으며, 기술 연구소의 설치 등의 시책이 열렸다.

 2006년 4월 24일에는 도쿄 국제 공항 정비 지구일본 항공 안전 계발 센터가 개설되었는데, 이 센터에는 해당 사고기기체 일부를 포함한 사고에 관한 자료전시돼 있다. 그런데 최근 사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원들이 90% 이상이 되자,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JAL 그룹전 사원 35,000명에 대한 센터 견학의무화하고 있다. 2013년 9월 30일에 잠시 폐관, 그 해 12월 10일부터 새 정비 지구에 있는 JAL 유지 관리 센터내에 이전, 새롭게 오픈했다. JAL 사원·관련 회사용 연수 시설이지만 일반에게도 공개되고 있어서 사전신청을 하면 견학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고큰 충격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 사고 이후로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망사고 없이 안전운행하는 항공사로 완전 탈바꿈하였다.


<JAL123편 추락사고의 희생자 유족들의 모임인 8.12연락회>


사고 희생자 유족들은 1985년 12월, 유족모임'8.12연락회'를 결성한다. 연락회는 사고원인 규명항공안전 추진에 대해 JAL, 보잉 등 사고관계자사회 전반호소하는 것을 활동 목적의 하나로 삼고, 모임 내부기술모임을 두고 항공안전과 관련한 자체 연구활동을 벌였다. 이 기술모임은 나중에 [항공안전국제 랠리조직위원회]독립하면서, 항공 안전 토론회 개최추락 시충격완화하는 좌석개발 제안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치면서 2009년 3월에는 국제적인 항공 안전에 이바지했다며 전미항공참사피해자 동맹(NADA)최고상[항공 안전상]을 수상한다.

당시 육상자위대야간장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산간부 구난 활동을 하지 않았고, 구난작업을 할 수 있는 헬기도 없었다. 또한 사고 발생 직후사고 현장 상공에서 수색 구난 활동을 한 항공 자위대·이바라키 구조대 소속의 구난 헬기 KV-107현장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탄이 장비되고 있었지만 [조명탄지상낙하한 뒤 연소하는 열로 산불유발위험성이 있다]라는 이유로 산불이 일어날 확률이 떨어지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없었다.

이를 거울삼아서, 항공 자위대 항공 구조단 구조대에 본격적야간 수색 구난이 가능한 적외선 열상 장비를 장비한 UH-60 블랙호크 구조 헬기1990년부터 차례로 조달·배치되고 있다. 또한, 당시 KV-107 구조 헬기는 현재 산간부해상에서의 야간 구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기체 측면 관측 창문 옆에는 강력한 구조용 라이트 4등도 갖추고 있다.

프로야구계에서는 한신 타이거스 사장이 사고로 희생되자, 한신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프로야구 구단들이 JAL과 계약을 끊었고 여객기이동하는 경우에는 전일본공수를 이용하게 됐다. 그 경우에도 만일에 대비해서 여러 대의 여객편으로 분산해서 탑승하거나, 국내 이동의 경우는 신칸센 등의 철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사고 이후로 해당 장소에는 매년 사고 전날인 11일과 당일인 8월 12일에 추모를 위한 유족방문객들의 위령 등산이 이루어진다. 해당 사진은 2019년 8월 12일에 있던 사고 34년을 추모하는 위령 등산이다>


추락 현장에는 사고 이듬해 위령비가 건립된다. 그리고 매년 8월 11일 18시 56분추락 시각에 맞추어서, 그리고 사고 당일8월 12일에 위령 등산매년 열리고 있다.

추락 장소인 [오스타카의 능선]은 공익 재단법인 [위령의 정원]현지 우에노촌 사람들을 고용하고, 위탁작업 방식으로 정비가 진행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지인경찰당시 관계자JAL 직원들과 퇴직자자원봉사로 직접 유지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7월 23일 유가족 위령 등산을 위해서 JAL 직원들과 등산로 정비를 하던 일본항공안전추진본부 소속 59세 남성이 추락, 머리충격을 받아서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었지만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어느덧 사고 발생한 지 30년 이상이 지나서, 유족들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2006년 7월부터 추락 현장 부근국토 교통성사방 댐 공사용 도로임시도로로 개방됐다. 덕분에 우에노촌에서 추락 현장까지 걷는 거리는 약 2.2km에서 약 800m로 단축되었다.

한편, 기장이었던 다카하마(사고 당시 17세)은 그 후 JAL의 승무원으로 입사하였고 현재까지 JAL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고로부터 딱 30년이 지난 2015년에는 언론인터뷰를 하였고 당시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다카하마 요코 씨는 현재 아버지기장으로 근무했던 JAL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고 당시승객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기장가족으로서 비난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아왔다. 같은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난 때문에 아버지안치된 시신남의 눈을 피해서 겨우 봤어야 했다.

"아버지사고를 겪고, 매우 원통했을 것을 생각하면서 그 유지계승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요코 씨아버지의 사진첫 비행부터 수십년간 줄곧, 부적으로 몸에 지니고 다닌다.

"제가 (일본항공에) 있음으로 사고잊혀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강합니다. 결코 두 번 다시 사고를 내지 않는 것, 그런 깊은 슬픔을 지닌 사람들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 그 점상기하면서 승무원역할을 다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 Airspeed: 대기에 대한 항공기 상대속도 [본문으로]
  2. Boarding Bridge: 대형 공항과 항구에 설치된 승객 탑승용 다리 [본문으로]
  3. elevator: 조종면의 일종으로 보통 항공기의 후방에 있어 항공기의 피치를 변화시키면서 방위를 조종하는 것으로 또한 날개의 받음각을 변화시킨다. 증가한 받음각은 날개의 모양에 의해서 큰 항력을 발생시켜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 반면 받음각을 줄이면 속도가 증가하게 된다. [본문으로]
  4. Phugoid Motion: 기수가 들리면서 기체가 상승하다가, 기수가 내려가면 기체가 하강하는데 이것이 반복하는 현상이다. [본문으로]
  5. Dutch Roll: 항공기가 빗 놀이방향과 옆 놀이방향의 진동을 되풀이하는 현상. [본문으로]
  6. Landing Gear: 바퀴 등의 강착장치 [본문으로]
  7. Pre-Recorded announcements: 미리 녹음하고 있던 상태에서 자동으로 출력되는 음성으로, 당시 남성의 목소리로 승객에게 안전벨트 착용이나 마스크의 장착을 지시했다. [본문으로]
  8. 당시에는 기내에 흡연이 가능했다, 버스도 대놓고 재떨이 있던 시절이었다. [본문으로]
  9. Brace Position: 비행기가 불시착할 때,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취하는 자세 [본문으로]
  10. 조종사들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몰랐다. [본문으로]
  11. Ground Proximity Warning System, GPWS: 비행기가 지상에 접근할 때 알람을 울려주는 장치 [본문으로]
  12. 사고후 조사에 의하면 기체 대부분에 무려 수백G의 충격이 가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본문으로]
  13. 참고로 교통사고의 충격이 대략 10G 정도 한다. [본문으로]
  14. 사건 이후로도 20년 더 촌장업무를 수행하다가, 2005년에 최고령 촌장으로 퇴임하였다. [본문으로]
  15. 싱글차트 100 1위는 아직 사카모토 규가 유일하다. [본문으로]
  16. 싸이가 2012년, 강남스타일로 기록한 7주 연속 2위가 그다음 순위. [본문으로]
  17. 宝塚歌劇団: 1914년에 탄생한, 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가극단으로 일본의 효고현 다카라즈카 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본문으로]
  18. コミックマーケット: 연 2회 일본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동인 이벤트 [본문으로]
  19. Fail Safe: 기계나 시스템이 오작동이나 고장을 일으킬 경우, 안전한 상황이 되도록 기계나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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