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이비츠 라디오 타워의 최근 모습(2005년)>
- 글라이비츠 방송국 공격 사건(Gleiwitz incident)은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전야인 1939년 8월 31일, 독일-폴란드 국경 부근의 글리비체시(당시 독일령, 現 폴란드 글리비체시)에 소재하는 라디오국이 습격당한 사건이다. 이는 폴란드인들의 소행으로 위장한 친위대 모략 부대에 의해서 자작으로 습격 사건(False flag)을 만들어서, 폴란드 침공을 정당화하는 일련의 음모 중 하나다.
<해당 모략을 지시한 주동자 중 하나인 하인리히 뮐러>
글라이비츠 사건에 대해 판명되어 있는 것 대부분은 전후(戦後)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친위대 소령 알프레트 나우요크스(Alfred Helmut Naujocks, 1911~1966)의 진술에 의거한다. 나우요크스 증언에 의하면 이 사건은 친위대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Tristan Eugen Heydrich, 1904~1942)와 국가비밀경찰 하인리히 뮐러(Heinrich Müller, 1900~1945)의 명령으로 나우요크스 자신이 준비한 것이다.
1939년 8월 31일 밤, 나우요크스에게 인솔된 독일 공작원들이 글라이비츠 라디오국을 습격하였고 실레시아 지방의 1폴란드계 주민을 향해서 폴란드어로 독일에 대한 파업을 지시했다. 독일의 목적은 이 습격과 방송을 반독일 성향의 폴란드계 주민들에 의한 폭도 행위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습격 장면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 나우요크스의 부대는 Franciszek Honiok 이라는 사람을 데려왔다. 당시 44세의 Honiok는 독일계 실레시아인으로 폴란드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여겨져, 전날에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그들은 Honiok을 폴란드군 공작원처럼 차려 입혔고, 치사량의 독극물을 투여한 뒤 총으로 사살했다.
Honiok에게 입힌 폴란드군 풍의 옷을 조달한 것은 오스카르 쉰들러(Oskar Schindler, 1908~1974) 였고, 2유해는 현장 라디오국에 남겨져서 마치 그가 라디오를 습격했을 때 살해된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시신은 독일 경찰과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폴란드 측의 습격 증거로 떠올랐다. Honiok 말고도 다른 여러 명의 죄수가 이 목적에 사용되기 위해서 준비돼 있었다. 독일은 이 습격 계획을 Konserve(통조림)라고 하는 암호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이 사건은 통조림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나치독일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Franciszek Honiok>
글라이비츠 습격과 같은 시기, 폴란드·독일 국경 근처에서는 폴란드 회랑 지방에서의 방화나 가짜 프로파간다 등, 독일에 의해서 교묘하게 짜여진 다수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프로젝트는 통칭, [힘러 작전]이라고 칭해졌는데, 이것은 모두 21건의 사건으로 이 작전은 독일에 대한 폴란드의 부당한 공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글라이비츠 방송국 습격 다음 날인 1939년 9월 1일, 독일은 전격적으로 폴란드 침공 작전을 발동했다. 이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임시 국회 의사당으로 정한 크롤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들 21건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폴란드에 행할 [자위권] 행사는 독일의 정당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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