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슬란 학교 인질극(Террористический акт в Беслане)은 2004년 9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 러시아 세베로오세티야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Се́верная Осе́тия-Ала́ния) 베슬란(Бесла́н)시의 베슬란 제1학교에서 체첸 독립파를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 무장 집단(약 30명)에 의해서 이루어진 인질극이다. 9월 1일에 실행된 점거로 7세부터 18세까지 아이들과 그 보호자, 총 1181명이 인질이 되었다. 3일간의 교착 상태 후, 9월 3일에 범인 그룹과 특수부대 사이에 총격전이 펼쳐졌고, 결국 특수부대가 건물을 제압하면서 사건은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386명 이상이 사망(186명이 아이들), 부상자가 700명 이상 발생한 대참사가 되었다.
해당 사건의 주모자는 체첸 공화국의 반군 지도자였던 샤밀 바사에프(Shamil Salmanovich Basayev, 1965~2006)였다.
<당시 학교에 갇힌 인질들의 모습>
러시아령 북캅카스의 체첸 공화국에서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붕괴하자 독립을 목표로 하는 독립파 체첸인과 독립을 저지하려는 러시아 당국 사이에 대립과 항쟁이 격렬하게 이어졌다.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 발발 이후에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러시아의 1블라디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1952~) 정부의 엄청난 공세에 체첸 분리주의자들은 정권을 빼앗기고, 친 러시아 성향의 체첸인에 의한 정권이 수립됐다. 그러나 게릴라로 변신한 독립파는 해당 정권을 러시아의 괴뢰 정권으로 간주하고, 저항을 첨예화하면서 테러리즘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으로 선회, 2002년 10월에는 인질 10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건을 일으켰다. 이렇게 점점 2과격해지는 체첸의 독립파에게 알카에다등의 3국외 이슬람 과격파 조직과의 연결이 지적되고 있었다.
2004년 5월 9일에는 체첸 공화국의 친러파 정권의 대통령인 아흐마트 카디로프(Кадыров, Ахмат Абдулхамидович, 1951~2004)가 샤밀 바사예프 부하인 테러리스트에 폭살(爆殺)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후임 대통령을 결정하는 선거가 8월 29일에 치러지면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됐지만, 이 선거를 전후해서 8월 21일에는 체첸 독립파가 경찰서 등을 습격하면서 양측 60명 이상이 사망하고, 8월 24일에는 여객기 2대가 연달아 추락하면서 89명이 숨졌으며 8월 31일 모스크바에서는 10명이 사망하는 자폭 공격이 일어나는 등, 국외 이슬람 과격파의 관여를 연상시키는 전투나 테러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인질로 가득 찬 강당에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의 모습>
1. 사건 발발 (9월 1일)
1일 오전, 군용 트럭 1대에 탑승한 30명 정도의 온통 검정색 복장을 갖춘 테러리스트 집단이 학교를 습격했다. 그들과 학교를 지키던 인원과의 총격전 끝에 경찰관과 범인을 포함한 9명이 사망, 무장 단체는 학교를 점거하였고 상기한 아이와 보호자를 포함한 총 1181명을 인질로 체육관에 몰아넣었다. 4
습격자들은 당시 개수 공사를 시행하고 있던 체육관의 지하에다가 사전에 무기 탄약을 숨겨서 준비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때 인질의 수는 애초 실수로 심하게 줄어든 120명 정도로 발표됐다. 그 뒤에 러시아 당국은 354명으로 공식 발표했지만, 이 발표도 너무 적은 잘못된 숫자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하자 러시아의 특수부대 스페츠나츠를 포함한 러시아군이 출동해서 학교 근처를 포위한다.
2. 협상 개시 (9월 2일)
2일 새벽부터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당시, 교섭을 맡았던 러시아의 저명한 소아과 의사인 레오니드 로샬 (Leonid Mikhailovich Roshal, 1933~)박사를 중개인으로 석방 협상을 시작했다. 로샬 박사는 모스크바 인질극 당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수차례나 직접 극장으로 들어가서 테러범들과 적극적으로 협상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8명의 어린이를 미리 석방하는 등 큰 역할을 하면서 러시아 정부로부터 연방영웅 훈장을 받은 인물이었다.
협상 시작과 함께, 러시아 측은 무력제압을 일단 유보할 것을 선언하고 인질들의 안전 확보가 우선임을 강조했지만, 협상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러시아 측은 그동안 돌입에 대비해 특수부대를 착착 준비 중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때 인질에게는 충분한 식량과 물을 주지 않았다.
학교를 점거한 테러리스트들은 인질 석방으로 다음 조건의 실행을 요구했다.
- 체첸 공화국으로부터 러시아군의 철군
- 세베로오세티야 공화국 및 인구시 공화국의 대통령과 직접 대화
2일 오후에는 과거에 체첸 독립파와 협상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인구시 공화국의 대통령 루슬란 아우세프(Русла́н Султа́нович А́ушев, 1954~)의 중개로 인질 중, 아기와 그 어머니를 포함한 26명이 풀려났다.
3. 비극으로 끝난 진압 (9월 3일)
3일 새벽, 테러리스트 측이 학교를 포위한 경관대에 총격을 가해 경찰관 한 명이 부상했다. 또, 2일 협상 개시 이후로 무장 단체 측이 수면제 등의 혼입을 경계하면서 인질에게 제공할 물과 음식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질의 건강 악화가 우려되면서 무력 돌입에 대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13시 04분경 무장 집단이 틀어박힌 체육관에서 갑자기 발생한 [폭발]을 계기로 양측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격전이 시작된 경위에 대해서는 정보가 엇갈리고 있어서 지금도 진상은 분명하지 않다. 러시아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애초 시신 인수를 시도하던 중, 총격을 받았기 때문에 발포와 돌입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도 인질로 잡힌 아이들의 부모가 가져온 총기 발포음을 특수부대 진입으로 착각하면서 비롯됐다는 설, 범인들이 체육관에 설치한 폭탄이 우발적으로 폭발한 것이 계기라는 발표 등이 보도되었다. 또 돌입 전에 특수부대의 일부 병사가 먼저 포격과 총격전을 시작했다고 하는 목격 증언 등, 지금까지도 확실하지 않다.
<당시 진압 현장에 참가한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
1000여 명의 인질은 농구 코트 정도 면적의 체육관에서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 상태로 서로 껴 있었다. 이 때문에 안은 무더웠고, 그래서 구출 당시에 웃통을 벗은 인질들의 모습이 많았다. 게다가 구출하기까지 50시간 동안 식사는커녕, 물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옷에 오줌을 적셔서 먹이는 부모도 있었다.
또, 자신의 자녀를 인질로 잡은 부모가 분노에 차서 총기를 들고 현장에 들어갔고 특수부대 진입 때는 달아나는 인질과 맞물려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혼란을 틈타서 테러리스트 중 몇 사람이 인파에 섞여 도주하려고 했지만, 군중에 둘러싸여 학살되었다는 무시무시한 증언도 있다. 이 진압으로 6테러리스트 한 명이 체포되었다.
중학교를 점거한 집단은 모두 32명, 그중 두 사람은 여성이었고 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과격파의 멤버인 것으로 보도됐다. 사건 발발 초기만 해도 전원 체첸인들로만 여겨졌으나 사건 직후에 타타르인, 7카자흐스탄인, 다른 무슬림민족과 고려인이 있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다만 고려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우즈베키스탄인이라고 보도되었다.
또, 아랍인 흑인 한 명 등을 포함한 다국적 인종으로 구성됐다는 정보도 나왔다. 이에 따라 국외 이슬람 과격단체, 국제 테러조직과의 연계 여부도 의심받고 있었다. 그러나 체첸 독립파 간부 중 한 명은 많은 외국인이 있었다는 설을 부인하고 있고 흑인과 아랍인의 참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보도도 나왔다. 그리고 학교 점거 직후, 테러리스트 중 남자 1명, 여성 1명이 아이들에 대한 비인도적인 취급에 대해서 리더에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날 저녁 숙청됐다.
범인들 중 상기한 유일한 생존자 1명은 체포되어서 2006년 5월 16일,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다만, 옥중에서 다른 수형자로부터 위해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므로 교도소 당국은 가명 사용을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범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체육관의 유리창 일부가 박살 났으며 화재는 물론이고 나중에 체육관 천장까지 무너지면서 실종자와 희생자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세계의 반응>
-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으로도 체첸 독립파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생각이 없음을 거듭 천명하였다. 또 국외까지 고려해서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이며, 러시아 정부는 그 소재를 불문하고 모든 테러조직에 대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한 선제공격을 대내외에 알렸다. 그것과는 별개로 잇단 테러의 영향에 당시 러시아 경제는 타격을 받았으며 그해 여행 업계가 전체 2조 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
- 미국: 당시 미국의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1946~) 대통령은 9월 1일, 인질극 발생 직후에 즉각 테러리스트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러시아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전면적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이 사건과 동시에 치러지고 있던 당시 대선 유세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강조하는 부시에게 이 사건은 호재가 되었고, 순조롭게 재선에 성공한다.
- 이슬람 관련 국가: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들은 빈발하는 테러사건에 대해서 이슬람교도 전체가 과격파인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크며, 각국의 종교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베슬란 점거사건을 비난했다. 특히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권위를 인정받는 이집트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대학의 지도자는 [인질극은 이슬람의 관용과 공정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으며, 납치자는 이슬람에 비추어 범죄자]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은 러시아 정부가 체첸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있다고 러시아 측을 비판적으로 언급할 때가 많고, 배후에는 체첸 문제에 대해서 같은 이슬람교도인 체첸 측에 대한 동정심도 있다.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한국에서는 9월 6일, 당시 고려인들이 무장 단체에 있었다는 보도로 국내외 한국인 사회를 놀라게 했다. 고려인은 원래 일본의 핍박을 피해서 소련 연해주 지방 등에 살던 조선인들로, 1930년대 일본군에 협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천km나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추방되면서 현재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 보도가 한국에서 나름 충격을 주었던 점은 고려인들이 중국의 조선족과 마찬가지로 외국 국적의 동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외국어에서는 고려인, 조선족도 모두 [Korean]이 들어가는 이름으로 불리기에 한국인이 테러리스트에 가담했다는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확산하여 한국의 인상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물론 상기했듯이 최종적으로는 우즈베키스탄 쪽 인물로 밝혀졌다.
<사건 이후, 참극이 벌어진 체육관에서 가진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
- 체첸 독립파와 러시아 연방 및 친러시아계 체첸 세력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전쟁. [본문으로]
- 2002년 10월 23일에서 10월 26일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오페라 극장에서 발생한 인질극 사건으로 총 130명이 사망한 참사다. [본문으로]
-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오사마 빈 라덴이 창시한, 극단적 살라프파 무슬림에 의한 국제 무장 세력망이다. [본문으로]
- 인질 중에는 생후 한 달도 안된 갓난아기도 있었다. [본문으로]
- Респу́блика Ингуше́тия: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으로, 체첸 공화국과 인접해 있다. [본문으로]
- 부모들은 범인의 사지, 혹은 목을 절단하였고 고기조각 마냥 갈가리 찢어버렸다고 한다. [본문으로]
- Татары: 투르크계 민족이며 타타르스탄의 주민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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