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 <9월 4일>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 2019. 9. 3. 18:33


- 오랜만에 옛날 신문기사를 통해서, 9월 4일에는 어떤 소식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변함없이 똑같았던 평온한 날이었던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을 9월 4일...

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어떠한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났을지 당시 기사를 통해서 확인해보시죠.



<창덕여고생들 온정의 금일봉>

[1964년 9월 4일, 동아일보]

창덕여고생들 온정의 금일봉, 농아연주단고경에

- 세계 유일의 [한국농아연주단]이 빚 3만 원[각주:1] 때문에 해산위기에 놓였다는 본보(2일 자 4면) 보도를 읽고 3일 하오, 서울 창덕여고 3학년 백송회 회원들은 주머니를 털어 현금 1,200[각주:2]원을 본사에 기탁, 이들의 용기를 북돋우는데 적으나마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이 사실을

"어느 외국인이라도 알까 두렵군요, 그들이 알면 우리 정부와 음악계를 얼마나 비난하겠습니까?"

라는 내용의 농아들을 격려하는 편지 한 통도 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즉위식, [인류복지 위해 헌신]>

[1978년 9월 4일, 경향신문]

- 새 교황 요한 바로오 1세[각주:3][각주:4]는 3일(한국시각 4일 오전 1시), 30만 명의 신도와 각국 사절들이 참석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제263대 교황으로 즉위, 가톨릭교도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수그리스도 추종자와 신을 숭배하려는 사람, 그리고 인류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1세는 이날 한국(AFKN 위성중계)을 비롯한 48개국에 TV 방송이 위성 중계되었고 19개국에 라디오 생방송이 중계된 가운데, 서기 1099년부터 내려온 교황의 3중관 대관식을 생략, 흰 양털로 만들어진 제복 [팔리움[각주:5]]을 어깨에 걸쳐 입고 너비 5cm의 띠를 걸치는 것으로 대관식을 대신했다.

새 교황은 즉위식 미사설교에서 그리스도는 성 베드로의 두 어깨 위에 교회를 건설할 것을 약속했다고 지적하고 [하느님의 강력한 은혜와 교회의 열렬한 기도를 더없이 확신하면서 연약한 두 어깨에 그리스도가 과한 멍에를 감당할 성 베드로의 후계자가 되기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날 식장에는 월터 먼데일 미 부통령을 비롯하여 후안 카를로스[각주:6] 스페인 국왕, 보두앵 1세[각주:7] 벨기에 국왕 등, 1백여 개국 대표와 귀빈, 외교 사절들이 로마시민과 신도들과 함께 참석했으나 소련, 베트남, 중공 및 태반의 이슬람교 국가들은 공식 사절들을 참석시키지 않았다. 즉위식에 경비 차 경찰력 1만 명이 동원됐으나 64개국 귀빈을 위해 식장 앞줄에 앉았던 호르헤 비델라[각주:8][각주:9]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약 1백 명의 데모대가 성 베드로 광장 100m 이내 거리에서 난동을 부려 그중 30명이 체포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중대 결단내용 초강경>

[1989년 9월 4일, 매일경제]

- 민주당 김영삼 총재가 4일 상오, 부산 하얏트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 5공 청산을 담보로 한 [중대결단]을 선언함으로써 강성 기조를 견지.

김 총재는 이날 미리 준비한 회견문을 통해 "현 정권은 이제 청산과 개혁을 통한 안정을 이룰 것이냐, 아니면 안주하다가 기득권에 연연, 마침내 국민으로부터 거부되는 정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며 "정기국회회기 중 5공 청산이 완결되지 않는다면 중대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고 주장.

김 총재는 회견이 끝난 뒤 중대결단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헌법 65조에 의해 행정부 수반인 노 대통령(노태우)을 탄핵 소추하겠다는 것"이라고 예상치 않은 초강경방안을 제시하고 "5공 청산은 노 대통령의 기본책무이며 이를 지연시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탄핵의 사유를 예시.

김 총재는 또 중평을 통한 불신임투쟁 가능성에 대해 "그것도 생각하고 있다. 5공 청산 후 중간평가를 받으라는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불신임투쟁 가능성도 시사하고, 그러나 탄핵과 불신임투쟁의 시기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만 답변.



<당시 사고현장의 모습>


<베트남기 프놈펜공항 인근서 추락, 한국인 21명 사망확인>

[1997년 9월 4일, 한겨레]

베트남기 프놈펜공항 인근서 추락, 한국인 21명 사망확인

기상 악천후 속 재착륙 실패

- 한국인 21명을 포함한 승객 60명과 승무원 6명 등 모두 66명을 태운 베트남항공 소속 TU-134 항공기가 3일 오후 2시(한국시각 오후 4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10km가량 떨어진 포첸통 국제공항 부근에 추락해 타이 어린이 1명을 제외한 65명이 사망했다.

한국인으로 사망한 선교사 오형석 씨의 아들 오성혁(5) 군은 애초 생존한 채 구조됐으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사고 여객기에 탄 한국인은 캄보디아의 대학 쪽과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출국한 원광대 의대 동창회장 김봉석(36, 충남 서천군 장항읍 반석의원원장), 이성민(31, 원광대병원 마취과전공의)씨 등 원광대 졸업생 6명이 포함됐으며 나머지 희생자들은 선교사 외교관 가족과 사업차 들른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항공 서울지사 관계자는 "3일 오전 8시 55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베트남 항공 939편에 승객 20명이 탑승했으며, 이 가운데 2명은 호치민공항에서 내리고 나머지 18명이 사고기인 815편으로 갈아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들 18명 이외에 호치민공항에서 3명의 한국인이 추가로 사고기에 탑승했다고 밝혔다. 사고 여객기는 베트남항공 소속 VN-815편으로 이날 오후 2시 5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현재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할 당시 프놈펜에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등 날씨가 나빴다. 키우 카나리드 캄보디아 공보장관은 사고기가 폭우 속에 활주로에서 600m 높이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관제탑으로부터 고도를 올리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고도상승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사고기가 1차 착륙에 실패한 뒤 재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활주로에서 200m 떨어진 인근 논바닥에 곤두박질했다고 전했다. 한편 외무부는 이날 캄보디아 사고대책반(반장 홍종표 제2차관보)을 즉각 가동하는 한편, 한국인 탑승객의 정확한 수를 파악해 보고하도록 현지공관에 긴급 지시했다.




  1. 2018년 기준 1,138,620원 [본문으로]
  2. 2018년 기준 약 4만원 [본문으로]
  3. Papa Giovanni Paolo I, 1912~1978 [본문으로]
  4. 불과 재위 33일 만에 선종한다. [본문으로]
  5. 기독교에서 주교 이상의 고위 성직자 가운데 교황을 비롯하여 지역 관구를 구성하는 대교구의 교구장중 관구장을 맡은 관구장의 미사용 제의 위에 걸치는 어깨 장식띠로 권위와 책임, 친교를 상징한다. [본문으로]
  6. Juan Carlos I, 1938~ [본문으로]
  7. Baudouin Albert Charles Léopold Axel Marie Gustave de Belgique, 1930~1993 [본문으로]
  8. Jorge Rafael Videla Redondo, 1925~2013 [본문으로]
  9. 아르헨티나 최악의 독재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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