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看護roo!>
1. 일근교육(日勤教育)의 문제
- 목표가 지켜지지 않을 때 승무원에 대한 처분으로의 재교육 등, 실무와 관련된 것이 아닌 일근교육이라는 징벌을 부과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승무원 휴게실이나 대기소, 점호 장소로부터 훤히 보이는 당직실 한가운데에 앉혀서 취업 규칙이나 경영이념의 베끼기, 작문·리포트의 작성을 하루 종일 시켰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관리자의 허가가 필요하고, 플랫폼의 끝에 세워서 발착하는 승무원에게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해 주세요'라는 등의 요구를 하루종일 시키거나 부지내의 풀숲과 화장실 청소등을 시키는등, 이른바 '미세시메(見せしめ, 본보기)', '사라시모노(晒し者, 대중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사람)'의 사례가 있는가 하면, 독실에서 연금을 시키며 관리자가 집단으로 매일 같이 폭언이나 욕설을 퍼부어서 자살에 이르게까지 만든 사례도 있다.
결국, 승무원의 정신적 부담만 가중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으며, 사고 열차를 몰던 해당 운전사도 과거의 운전 실수와 민원 등으로 3회 일근 교육을 받으며 지인과 친구에게 '일근 교육은 혹독한 연수다', '온종일 글을 쓰고 있지 않으면 안 되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윗사람에게 허락을 받고 가야 한다', '일근 교육은 사훈 같은 것을 그대로 베낄 뿐, 이런 일을 하는 의미를 모르겠다', '월급이 깎여서 정말 싫다'라는 등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더하여, 사고 직전인 이타미 역에서 72m 오버런 후, 일근 교육이 두려웠던지 차장에게 오버런의 거리를 줄여서 보고하도록 차내 전화로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근 교육에 대해서는 사고가 일어나는 반년 전에, 이미 국회에서 국회 의원으로부터 '중대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라고 추궁까지 당했었다. 그리고 일본 국토 교통성의 사고 조사 보고서에도 일근 교육에 대해서, '대부분 정신론'이라고 단정하면서 '사고 원인으로서 간접적인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고되어있다.
2. 열차 운행 도표(시간표)의 문제
<출처: 야후 블로그 yuukisyoutakouji>
- 사고 발생 노선인 후쿠치야마선은 한큐 전철의 다카라즈카선· 고베선· 이타미선과 경합하고 있어서, 대항책으로 초 단위로 열차의 정시 운행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120km/h 운전이나 정차 시간이 15초 등, 애초부터 전체적으로 여유가 없는 시간표였다.(참고로 서울 지하철은 제한속도 80km/h, 평소에는 안전을 위해서 50km/h로 권장하고 있다)
정차역을 차례로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요 시간은 마찬가지여서 만성적인 지연이 나오고 있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었다. 특히 해당 열차에서는 사고 구간인 쓰카구치역 ~ 아마가사키역 간에서는 2004년 10월의 시간표 개정으로 더 단축되었다. 당시 JR 서일본(JR 니시니혼)은 시책으로 '여유시분 전폐(지연제로)'를 내걸고 있었다.
사고 조사위원회가 전국의 JR·사철·공영 철도 사업자의 시간표를 조사했는데, 이러한 지연제로를 목표로 시간표를 마련한 건 오직 JR 서일본뿐이었다.
3. 노선 설비에서의 문제
<출처: 유튜브>
- 사고 발생 전, 현장 주변은 운행 편수가 많고 속도도 비교적 고속인 대도시 근교 노선이었지만 '자동 열차 정지 장치 설비(ATS-P)'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JR 도자이 선(동서)에서는 개업부터 ATS-P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후쿠치야마선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속도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래 후쿠치야마선은 신호등에 대한 자동 열차 정지 장치로 ATS-P대신 기존의 국철형 ATS-S형의 상위 호환 기종인 ATS-SW형의 설치를 고려했지만, 위에도 언급했듯이 해당 구간에는 사고 전까지 속도 조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국철 시대부터 JR 도자이선이 개업할 때까지, 후쿠치야마선은 상하선 모두 도카이도 본선으로의 어프로치(Approach)가 아마가사키역 서쪽의 외측선(열차선)에 접속되고 있었다. 구 하행선은 아마가사키역을 나온 후 도카이도 본선의 남쪽으로 분기해서 동해쪽으로 본선을 도는 형태로 북상해서 현재의 루트를 지나, 현장 맨션의 북쪽으로부터 직진하고 있었다.
구 상행선은 그대로 거의 직진, 남하하면서 도카이도 본선의 외측선에 접속하고 있었다. 후쿠치야마선은 JR 도자이선과의 직통운전을 개시하는 데 있어서, 상하선 모두 내측선(전철선)에 접속시킬 필요가 생기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 이전보다 곡선반경이 줄어들면서 현장은 완화곡선장이 짧고 캔트(선로를 기울이는 것)는 105mm보다 적은 97mm이므로 그만큼 제한 속도가 5km/h 낮았다(반경 300m에서 캔트 105mm(상한치)로, 제한 속도는 75km/h였다. 종전에는 60~65km/h).
4. 매커니즘 문제
<출처: 東洋経済オンライン>
(1) 브레이크 관련
- 브레이크 핸들은 핸들 위치에, 상용 최대 브레이크(B8)와 비상 브레이크의 사이에 어느 쪽의 브레이크 지령을 낼 수 없는 범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구간은 0번대·1000번대·2000번대와 다른 위치였고, 사고를 낸 편성의 7량째의 마스콘(마스터 컨트롤러)은 그 범위가 11°로 다른 차량보다 브레이크 완화 구간이 넓어지고 있었다.
207계 7량 편성의 앞 4량(0번대/히타치)과 뒤 3량(1000번대/긴키)은 모터의 출력 등, 성능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0번대는 155kW, 1000번대는 200kW). 또한, 제어 장치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물론 이러한 차이는 다른 전철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다지 특이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고 열차는 차량의 제동에 차이가 있었는데 특히나 독특한 차량이었다고 운전사의 증언이 있었다(앞 4량은 파워 트랜지스터를 탑재하고 있어서, 브레이크를 작동시키자 다른 차량보다 무언가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것도 상술한 것처럼 이러한 예는 많아서 직간접적인 요인으로 발생한 사고는 이 사고 전까지는 없었다.
<대차의 모습. 해당 사진은 DT56A JR 도카이 251계의 대차다(출처: 鉄道ホビダス)>
(2) 대차
- 사용되고 있는 철도 차량의 대차(차륜·차축을 보관 유지하여, 차체의 중량을 차축에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주행·제동 기능을 갖춘 기구)가 사행동(철도 차량의 공진현상 중 하나다. 주로 직선부를 고속으로 주행할 경우 차체나 대차, 차축 등이 연직축 둘레 방향 회전 진동(yawing)을 일으키는 현상이며, 궤도나 대차·차체에 손상을 준다) 볼스터 앵커(철도차량의 대차를 구성하는 부재 중 하나)대차(단량 없는 대차로 DT50·TR235이며, 뒤틀림에 취약하다)를 철도 평론가 가와시마 료우 조(川島令三, 1950~) 등을 지적하고 있다.
(3) 객실 내의 설비
- 객실 내 설비에 대해서도, 사고 발생 시 피해 경감을 위해서 난간 배치나 모양 개선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사고 조사 위원회의 소견을 받아들인 JR 서일본은 207계 전체 차량과 117계·115계 일부 차량에 대해서 차내 보완을 시행했다.
<사고 구간을 지나가는 전철 안에서 어느 한 여학생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도를 하고 있다(출처: blog.goo.ne.jp/raymiyatake)>
(4) 차체 문제
- 사고를 일으킨 207계 차량이 스테인리스 강철제의 경량 구조로, 차체 측면에서 충격에 약하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재질보다는 측면 방향의 충격이 한 점에 걸리면 그쪽으로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에 파괴가 일어나기 쉽다(음료수 등의 금속제 캔류의 찌그러짐을 생각하면 이해가 좀 더 빠를 것이다). 또한, 스테인리스강 자체도 결코 강도가 낮다고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게다가 녹이 발생하지 않아서 제품의 질과 성능을 훨씬 더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207계 차량은 기존 차량에 가까운 구조의 차체 설계가 되어 있으며 후에 등장한 이 회사의 223계 2000번대와 321계에서도 제조 비용의 절감과 양산 체제의 간소화를 도모하면서, 기존 차량과 동등한 강도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들보를 생략하는 대신에 차체 측판의 강도를 올림으로써 차체 전체를 지탱하는 설계 사상에 기반한 차체 구조다.
그러나 굳이 스테인리스가 아니더라도 그해 12월 25일(성탄절)에 발생한 JR 우에쓰 본선 탈선 사고(JR羽越本線脱線事故)에서도 국철 시대에 제조된 과거의 보통 철강 차체의 485계 3000번대 차량의 일부가 [ㄴ 자형 ]으로 구부러졌지만, 내부의 생존 공간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차량이 파괴된 중대사고임을 고려해서, '객실 내 공간이 확보되도록 차체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포함해 차량의 안전성 향상방안에 관한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는 소견이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제출되었다.
이를 받아들여서, 223계 5500번대 이후의 신형 차량은 지붕과 차체 측면, 프레임과 차체 측면에서 결합 부재의 추가, 기둥 보강, 차체 측면의 재질 변경을 시행하였다. 또 JR 도카이 E233계도 제조할 때부터 측면의 강화를 시행했다.
<출처: 東洋経済オンライン>
(5) 보수(補修) 관련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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