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야구선수 강도 살인 사건(지바 롯데 마린스 투수 강도 살인 사건, 元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投手強盗殺人事件)은 과거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한 오가와 히로시(小川博, 1962~)가 은퇴 후, 2004년 11월 18일에 사이타마현 아게오시 내에서 일으킨 강도 살인 사건.
가해자인 오가와는 프로 야구 선수 시절에 무난한 성적을 남기고 은퇴 후 7년간 코치를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에 야구 관계자로서는 [전대미문]의 강도 살인을 저지른 충격적인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명투수, 그러나 어두운 면]
야구 선수로 활약한 오가와 히로시는 고교 시절에 투수로서 3번,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인 고시엔에 출장하였고 [군마의 다마사부로]로 불리며 고시엔의 우상이 된다. 고교 졸업 후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에 진학, 대학 야구부의 약진에 공헌하면서 대학 4학년 때 드래프트 2위로 [롯데 오리온스]에 입단. 1988년에 올스타로 출전하고 5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롯데 선발 투수를 맡았다.
당시 자신의 첫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고, 양대 리그 최다인 204 탈삼진을 기록하며 최다 탈삼진 타이틀 창설의 계기를 만드는 등 탁월한 실적으로 이듬해 연봉은 2,200만 엔으로 두 배나 불어난다. 그러나 1989년에 어깨를 다친 후, 성적이 급침체하면서 구단 이름이 [지바 롯데 마린스]로 변경된 199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오가와가 현역 은퇴 후,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롯데 구단 트레이닝 코치를 지냈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구단 직원을 지내며 돈도 나름 많이 벌었으나, 현역 시절부터 낭비벽과 유흥비, 휴대전화의 성인 사이트 사용료로 빚을 거듭하여 금융기관뿐 아니라 상당수의 지인에게 돈을 빌리며 자신의 신용을 깎아 먹었다.
또, 오가와가 2차례 이혼했기 때문에 위자료와 아이의 양육비·주택 담보 대출 등도 끌어안아 더 경제적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전신인 롯데 오리온스의 유니폼>
2002년 11월, 빚 독촉이 구단에까지 이르자 해고되었고 야구계를 떠난다. 2003년 1월에는 사이타마현의 산업 폐기물 처리 회사로 취직하였으나 2003년 4월 1,750만 엔의 빚을 안고 개인 파산을 한다. 그해 10월, 재혼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사이타마시 임대 아파트로 이사했으나 사채를 여러 곳에서 빚진 것도 발각된다.
2004년 여름, 오가와가 롯데 2군인 롯데 우라와 구장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 이내 자취를 감춘 것이 목격되었다. 구단 관계자는 언론 취재에서 [이 시기에 롤렉스 손목시계 등 선수의 소지품·신용 카드가 없어지는 사건이 자주 있었으며, 절도 피해 신고가 늘어나 '오가와가 범인 아닌가?' 소문이 났다]고 증언했다.
[강도 살인]
2004년 11월 18일 오후 6시 30분, 오가와는 당일 내에 갚아야 하는 3만 엔 돈 때문에 아게오시 고시키야에 있는 자신의 근무처 산업 폐기물 처리 회사 회장의 집을 찾아갔다. 회장은 집에 없었고, 가정부인 67세 여성이 응대. 오가와가 여성에게 돈을 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그 해 8월 회장의 집에서 실내가 어지럽힌 사건이나 같은 해 11월 기숙사에 50만 엔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내 사람의 소행으로 의심받았고, 빚이 있던 오가와도 혐의를 받고 있었다.
여자는 부탁을 거절하겠다고 했지만, 오가와가 무릎을 꿇고 3만 엔이라도 빌려달라 했다. 그러나 여성이 거절한 것에 분노하면서 가정부를 들이받고 기절시켜버린다. 오가와는 거실에서 현금 175만 엔을 빼앗았으나 발각될까 두려워한 그는, 기절한 여성을 차에 태우고 약 3km 앞의 오케가와 시내의 옛 아라카와 하천에 던졌다. 그 후 빼앗은 현금으로 사채 중 하나였던 빚 수십만 엔을 상환한다.
[체포·재판]
사건 이틀 후인 2004년 11월 20일 옛 아라카와에서 낚시를 하던 남자가 여자의 익사체를 발견, 경찰은 시신의 상태를 보아 살인 사건으로서 수사했다. 드러난 피해 여성의 신원과 [사건 현장에서 여성을 차로 나르던 남자를 봤다] 라고 하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오가와가 유력한 피의자로 떠올랐다.
피의자 오가와는 사건 발생 약 1개월 후인 2004년 12월 21일 사이타마 현경 수사1과 아게오 경찰서 수사본부에 강도 살인 용의로 체포되었다. 또, 산업 폐기물 처리 업체는 체포 전날에 해고된다. 조사에 들어가자 오가와는 혐의를 인정, [소비자 금융 등의 빚 80만 엔을 갚기 위해서]라고 진술했다.
다음 2005년 1월 11일 사이타마 지검은 오가와를 사이타마 지방법원에 강도 살인 죄목으로 기소하였고, 2005년 2월 28일 사이타마 지법에서 첫 공판이 열린다. 여기서 피고인 오가와는 죄상 인정 여부에서 살의를 부인했다.
2005년 9월 29일, 제1심 선고 공판이 열렸고 사이타마 지법은 검찰 측의 구형대로 피고인 오가와에 무기징역 판결을 내렸다. 이 당시 쟁점은 어느 시점에서 살의를 가졌다고 법원이 판단할 것인가였다. 검찰 측은 빚을 거절당한 시점에 죽여서 돈을 빼앗으려고 생각했다고 주장.
재판부는 [빚을 거절당한 시점에서 즉시 살해하여 돈을 빼앗으려고 생각했다는 것은 너무나 비약이 있다]며 검찰의 주장을 물리치고, 밀쳐낸 시점에서 흉기 등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여성을 다른 곳으로 운반하려는 시점에서 살해할 결의가 있었다]고, 계획성이 희박한 사후적 강도살인으로 인정했다.
다만, 재판장은 피해자의 얼굴이 자홍색으로 변색할 때까지 때린 것에 대해서, [범행 자체는 냉혹하고 악질적이며 야만적이었다]라고 오가와를 비난하였다.
오가와가 [무기징역은 너무 무겁다]라고 양형 부당을 이유로 도쿄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2006년 2월 23일 도쿄고법은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제1심 무기징역 판결을 지지하며 피고인 오가와 측의 항소를 기각한다.
해당 재판장은 [은퇴 후에도 낭비를 거듭하며 금전적 곤궁에 빠진 것이 원인으로, 동기에 참작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범인 오가와의 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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