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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204

<4월 23일> 1954년 4월 23일 - 미국의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 탄생

- 마이클 무어(Michael Francis Moore, 1954년 4월 23일~)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텔레비전 프로듀서, 텔레비전 디렉터, 정치 활동가다. 원래 전미 총기 협회의 회원이었지만,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19세 때 그 자격을 반납했다. 그 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평생회원이 되었다. 2002년에 [볼링 포 콜럼바인, Bowling for Columbine]으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Academy Award for Best Documentary Feature)을 받았다. 제너럴 모터스(GM)의 생산 거점 중 하나였던 미시간주(Michigan) 플린트(Flint)에서,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나서 플린트 교외의 데이비슨(Davidson)에서 자..

오늘의 역사 2019.04.23

<4월 22일> 오늘의 역사, 이모저모

- 오늘(22일)은 옛날 신문을 통해서 어떠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현대기준에 맞추어서 글을 조금씩 수정 했습니다) 1. 1949년 4월 22일 - 동아일보[워싱턴 21일發, UP 고려] - 애치슨(딘 애치슨, 1893~1971) 국무장관은 기자단회견석상에서 미국은 군대 철수에 앞서 경비대의 건설을 위해서 약간의 무기를 한국에 양도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열병개시 일자가 결정되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는 위병은 미국의 대한경제조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ECA 원조계획(1948년 12월 10일에 조인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원조협정)'이 작성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워싱턴 입일일발 AFP 합동]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20일, 신문기자단회견석상에서 미군..

오늘의 역사 2019.04.22

<4월 21일> 2010년 4월 20일 - 前 올림픽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사망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후작(Juan Antonio Samaranch y Torelló, 1920년 7월 17일 ~ 2010년 4월 21일)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스포츠 인사로, 1980년부터 2001년까지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회장을 지냈다. 또한, 스페인 '팔랑헤당(Falange Española Tradicionalista)' 당원이자 프랑코 지지자이기도 하였다.섬유업을 하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마란치는 소년 시절에 롤러 하키(4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하는 하키)를 즐겼다. 어느덧, 장성한 사마란치는 '스페인 내전(마누엘 아사냐[Manuel Azaña Díaz, 1880~1940]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Paulino Hermenegi..

오늘의 역사 2019.04.21

<4월 20일> 2010년 4월 20일 -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태 (딥워터 호라이즌)

- 2010년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는 2010년 4월 20일, 멕시코 만 앞바다 80km, 수심 1,522m 지점에서 해저 유전 굴착 작업 중이던 BP(BP P.L.C.)社의 석유 굴착 장치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에서 기술적 실수로, 굴착 중인 해저 유전에서 역류한 천연가스가 인화되어서 폭발, 5,500m의 굴착 파이프가 부러져서 대량의 원유가 멕시코 만으로 유출된 사고다. BP에 의하면, 2010년 7월 16일까지 기름 유출량은 약 78만 킬로리터(490만 배럴)였고, 피해 규모는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2010년 4월 20일 밤, 세계적인 근해 굴착회사인 '트랜스오션(TransOcean)'이 관리하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 만에 위치한 석유 굴착 장치인 딥워터 호..

오늘의 역사 2019.04.20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完)

- 6월 12일 아침, 아르헨티나군 수뇌부는 롱던 산에서부터 해리엇 산에 걸쳐서 약 4,500명의 영국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 정보는 말비나스 주둔 부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6월 13일에는, 말비나스 제도 총사령관 메넨데스 소장과 갈티에리 대통령이 교신을 했다. 여기서 메넨데스는 '영국군이 보인 행태로 보아, 오늘 밤 그들은 최종적 공격을 가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오늘부터 내일까지 스탠리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여있다'라고 경고했지만 갈티에리 대통령은 그저 스탠리를 사수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6월 12일 아르헨티나군은 스탠리에 설치된 트레일러를 개조한 미사일 발사대로 엑조세 미사일을 발사, 영국 구축함 글러모건에 적중시켜 반파상태로 만들었다.6월 13일부터 영국군은 스탠리의 아르헨티나군..

오늘의 역사 2019.04.19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9부)

[스탠리 외곽에 대한 공격]스탠리 서쪽에는, 북쪽으로부터 롱던 산(Longdon), 해리엇 산(Harriet), 투 시스터스산(Two Sisters)라는 3개의 산이 연이어 있으며 아르헨티나군의 외곽 방어선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은 우선 이곳의 공략을 지향하게 되었다.아르헨티나군은 6월 8일에 있던 항공 공격의 전과를 과대평가했으며 500~900명의 전사자를 낸 것으로 멋대로 평가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본국은 고양되었고, 말비나스 제도 총사령관인 메넨데스(Mario Benjamin Menéndez, 1930~2015) 소장을 상대로 피츠로이의 공격을 요구했으나, 메넨데스 소장은 '부대의 기동력 결여와 항공 및 해상권 상실, 그리고 영국군 공격의 선행이 예측되어서 선공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지었고, 본국..

오늘의 역사 2019.04.18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8부)

- 5월 21일 영국군이 샌 칼로스에 상륙한 이후, 아르헨티나군의 저항은 항공 공격으로 한정되었다. 한편, 영국군은 상륙 이후의 작전에 대해서는 사전 계획이 미비했으나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임무부대 사령부에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제3코만도여단장 톰프슨 준장은 25일에 켄트 산에서 챌린저 산에 걸친 지역에 대규모 헬기 수송 작전을 시행하고, 스탠리 공략의 굳히기를 계획했지만 하필 이날,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컨테이너선 애틀랜틱 컨베이어의 상실로 다수의 헬기가 사라지는 바람에 이 작전은 실행 불가능하게 되었다.스탠리에 진출하기 전에 우선 구스 그린과 다윈에 주둔하는 아르헨티나군을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톰프슨 준장은 원래 구스 그린에 대한(점령을 전제로 하지 않는) 습격습격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으..

오늘의 역사 2019.04.17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7부)

- 4월 30일부터 SAS· SBS의 총 10팀이 포클랜드 제도 곳곳에 잠입하며 상륙 후보 지점의 지리적 정보 수집에 나섰다. 또, 제3 코만도 여단 참모의 '이웬 사우스비 테일여(Ewen Southby-Tailyour)' 소령은 이전에 포클랜드 해병대 선발대의 대장이었던 시절에, 여가를 이용하여 해안선을 빠짐없이 요트로 조사해서 리포트를 작성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5월 10일, 이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상륙 지점은 샌 칼로스(San Carlos)로 결정되었다. 이날 제317 임무 부대 지휘관 '존 필드 하우스(John Fieldhouse, Baron Fieldhouse - 1928~1992)' 대장은 상륙 부대인 제317.1 임무군 지휘관이자, 제3 코만도 여단장인' 톰프슨 준장(Julian Thom..

오늘의 역사 2019.04.15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6부)

- 4월 5일, 아르헨티나 해군은 영국 해군과 결전을 앞두고 대규모 함대의 재편성을 시행하며, 주요 전투 함정 및 보조 함정은 제79 임무부대로 재편되었다. 4월 30일에 이 임무부대는 아래의 3가지 임무군으로 분할되어 각각 작전 해역에 배치됐다.1. 제79.1 임무군 - 항공모함 '베인티싱코 데 마요(ARA Veinticinco de Mayo, V-2)' 및 구축함 4척2. 제79.3 임무군 -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ARA General Belgrano)', 구축함 2척 및 급유선3. 제79.4 임무군 - 초계함 3척제79 임무부대 지휘관인 구알테르 알라라(Gualter allara) 준장은 베인티싱코 데 마요에 승선했으며 5월 1일, 동(同)함의 트래커 초계기가 영국 항공모함의 전투군을 발견하였고..

오늘의 역사 2019.04.14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5부)

- 아르헨티나 해군 최고사령관 아나야 대장은 사우스조지아 섬에 대해서 장차 과학관측기지를 세워, 아르헨티나의 실효적 지배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영국 함정이 섬으로 근접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처음에는 섬을 포기하고 부하에게 저항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후 생각을 바꾸어 잠수함 산타페 증원으로 약 40명의 해병대원을 파견키로 했다. 해당함은 4월 21일, 마르델플라타 해군 기지에서 출발해서 24일 심야에 컴벌랜드 포구에 도착했고, 25일 03시 무렵부터 약 2시간에 걸쳐서 해병대원과 보급 물자를 그리토비켄에 상륙시켰다. 그러나 귀로 도중에 컴벌랜드만 내의 영국 제317.9 임무군 헬기의 공격을 받고 행동 불능이 되어서, 그리트비켄으로 돌아가 킹 에드워드 곶에 좌초한다...

오늘의 역사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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