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궁정동 안가>
- 10.26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안전가옥 안가에서 박정희(1917~1979) 대통령과 차지철(1934~1979) 청와대 경호실장이 김재규(1926~1980) 중앙정보부 부장에게 시해(尸解)된 사건이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사건에 대해 소개한다.
<궁정동 안가 미니어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8회 2004-04-04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중에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는 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지만, [학생운동 탄압이 미온적]이라며 종종 질책을 받았으며 당시 김영삼(1927~2015) 신민당 총재 취임 저지 공작의 책임을 경쟁 관계에 있던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부터 넘겨받은 부분에서 펼쳐진 라이벌 다툼에서 밀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김재규는 두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10월 26일 밤,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중앙정보부 소유의 안전가옥 비밀 연회장에서 가수와 모델 등 외부인을 포함해서 대통령이 참석한 만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김재규에 대해 반정부 학생들이 부산 미국문화관을 점거한 사건(부마민주항쟁)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자, 차지철 실장도 중정의 무능을 질타했다. 질책은 평소와 다르게 장시간에 이르렀으나 가수들이 만찬장에 들어서자 자리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졌고, 김재규는 만찬장소를 잠시 벗어나 자신의 부하이자 심복인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 박흥주(1939~1980)와 중앙정보부 의전과 과장 박선호(1934~1980)를 불러 총성이 들리면 대기하고 있는 청와대 경호원(차지철의 부하)을 사살하라고 지시한다.
김재규는 만찬장으로 돌아갔고, 다시 정치 얘기가 시작됐으나 또다시 중정의 실수와 무능함에 대해서 얘기를 하였고 오후 7시 41분, 김재규는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무슨 정치를 하십니까]라고 외치며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각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김재규의 권총이 1 고장 났고, 또 총성을 전기 합선으로 착각한 직원에 의해 두꺼비집이 떨어졌기 때문에 실내 전기가 나갔다. 김재규는 만찬장을 한번 벗어나 총성과 함께 경호원들을 사살한 박선호에게 권총을 빌리면서 다시 만찬장으로 돌아가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1발씩 총격했다. 이때 만찬장에는 청와대 비서실장 2김계원(1923~2016)과 호스티스 2명으로 당시 유명 가수인 심수봉(1955~)과 여대생 신재순(1957~)이 동석하고 있었으나, 애초에 암살 대상이 아니었기에 재난을 벗어났다.
또, 이날 궁정동은 김재규의 초대로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1929~2001) 대장이 대통령 일행과는 별개로 방문했었다. 그러나 대통령 접대를 해야만 했던 김재규는 부하인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1929~1991)에게 다른 방에서 정승화의 상대를 시키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재규는 자신이 살해범임을 숨기고 정승화를 찾아 정, 박흥주 등을 동반하고 현장을 떠났지만,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유리한 정보부 청사가 아닌 육군본부로 향하여 참모총장인 정승화에게 계엄령 발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정과 다르게 군 상부에는 별다른 파이프가 없던 김재규의 설득은 무위로 끝난다. 그 뒤, 김계원 비서실장의 증언으로 김재규의 범행이 드러나자 긴급 국무 회의에서 체포령이 내려지면서 27일 오전 0시 40분, 대통령 시해범으로 국군 보안 사령부에 김재규는 전격적으로 체포됐다.
그 직후,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지고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했다. 수사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취임한 당시 국군보안사령관 육군소장의 전두환(1931~)에 의해 진행되었고, 김재규와 그 부하들에게는 재판을 통해서 사형이 선고됐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1919~2006) 당시 국무총리는 사건 소식을 접했을 때 [김일성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울먹이며 말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는 북한과의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국방적 견지 때문에 곧바로 보도되지 않았고, 그 결과 미국에서의 보도가 한국보다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미국에 친구·지인이 있던 한국인은 재빨리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알게 되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참으로 우연스럽게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과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날이 10월 26일로 같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박 정권의 3대 중추 기관 가운데 하나인 중앙정보부는 총수가 대통령 시해범이 된 것으로, 또 하나인 경호실은 실장이 살해된 것에서 각각 영향력을 잃어버려 유일하게 남은 국군 보안 사령부 사령관 겸 합동 수사 본부장 전두환과 육군 최고직인 참모총장 겸 계엄 사령관 정승화가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승화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으면서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 약점이 되면서 대통령 시해의 공범 혐의를 받아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숙군 쿠데타의 시작). 한편, 군부에 생소하고 비상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던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은 다음 해인 1980년 전두환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제4공화국 체제는 종식되면서 제5공화국 체제의 성립으로 연결되었다.
음모론 중 하나로, 당시 한국 정부는 극비리에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했었는데 이것이 미국 정부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이 때문에 3암살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관여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으나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인해 한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좌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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