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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36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7부)

- 4월 30일부터 SAS· SBS의 총 10팀이 포클랜드 제도 곳곳에 잠입하며 상륙 후보 지점의 지리적 정보 수집에 나섰다. 또, 제3 코만도 여단 참모의 '이웬 사우스비 테일여(Ewen Southby-Tailyour)' 소령은 이전에 포클랜드 해병대 선발대의 대장이었던 시절에, 여가를 이용하여 해안선을 빠짐없이 요트로 조사해서 리포트를 작성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5월 10일, 이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상륙 지점은 샌 칼로스(San Carlos)로 결정되었다. 이날 제317 임무 부대 지휘관 '존 필드 하우스(John Fieldhouse, Baron Fieldhouse - 1928~1992)' 대장은 상륙 부대인 제317.1 임무군 지휘관이자, 제3 코만도 여단장인' 톰프슨 준장(Julian Thom..

오늘의 역사 2019.04.15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5부)

- 아르헨티나 해군 최고사령관 아나야 대장은 사우스조지아 섬에 대해서 장차 과학관측기지를 세워, 아르헨티나의 실효적 지배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 영국 함정이 섬으로 근접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처음에는 섬을 포기하고 부하에게 저항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후 생각을 바꾸어 잠수함 산타페 증원으로 약 40명의 해병대원을 파견키로 했다. 해당함은 4월 21일, 마르델플라타 해군 기지에서 출발해서 24일 심야에 컴벌랜드 포구에 도착했고, 25일 03시 무렵부터 약 2시간에 걸쳐서 해병대원과 보급 물자를 그리토비켄에 상륙시켰다. 그러나 귀로 도중에 컴벌랜드만 내의 영국 제317.9 임무군 헬기의 공격을 받고 행동 불능이 되어서, 그리트비켄으로 돌아가 킹 에드워드 곶에 좌초한다...

오늘의 역사 2019.04.13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4부)

- 영국군은 정세가 긴박해지면서, 파상적으로 파병 부대를 늘렸고 우선 3월 29일에 포트 로잘리급(Fort Rosalie-class, A386) 군수지원함인 '포트 오스틴(RFA Fort Austin [A386])'과 4월 1일에는 원자력 잠수함인 '스파르탄'과 "스플렌디드"가 파견됐고, 지브롤터에 기항하던 호위함 '브로드소드'와 '야머스'도 추가되었다. 아르헨티나군의 침공 시점에서 포트 오스틴과 원자력 잠수함은 대서양 남쪽으로 항행 중이었고 순양함대는 지브롤터 해군 기지를 출항하고 있었다. 3월 31일, 대처 총리는 '허미즈'와 '인빈시블' 2척의 경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제3코만도 여단을 동반한 기동 부대 편성을 하달했으며, 4월 1일 밤에는 국무 회의에서 기동 부대를 포클랜드에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당..

오늘의 역사 2019.04.08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3부)

3월 28일, 아르헨티나군 침공 부대가 출항했다. 애초 계획에서는 3월 31일에서 4월 1일 사이의 야간에 맞춰서 기습적으로 상륙할 예정이었는데 악천후 때문에 24시간 연기되었다. 4월 1일, 포클랜드 제도의 총독인 '렉스 헌트(Sir Rex Hunt: 1926~2012)'경은 아르헨티나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본국에 통보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 측은 이미 전술적으로 기습이 성립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4월 1일 21:30(UTC-4시간, 이하[Q]로 표기)분, 미사일 구축함 '산티시마 트리니다드(ARA Santísima Trinidad)'와 특수 작전 상륙 중대 92명이 고무 보트 21척에 탑승, 출발했다. 이들 부대는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서 '길예르모 산체스 ..

오늘의 역사 2019.04.05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2부)

- 아르헨티나 측은, 영국에 의한 포클랜드 점유 150년이 되는 해인 1983년까지 이 문제를 '모든 수단'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 1981년 12월 8일, 새 대통령에 선출된 '레오폴도 갈티에리(1926~2003)' 대장은 이듬해 육군 사령관을 물러나야 했기에, 퇴역 전까지 정치적 공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1981년 국방 정책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트라이던트 탄도 미사일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쇄빙선 '인듀어런스'와 항공 모함 '인빈시블'급의 퇴역이 검토되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의 안전 보장 문제보다 국내 재정 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아르헨티나는 12월 15일에 해군 총사령관인 '..

오늘의 역사 2019.04.04

<4월 2일> 1982년 4월 2일 - 포클랜드 전쟁 발발 (1부)

- 포클랜드 전쟁(Falklands War/Conflict/Crisis)은 대서양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 말비나스 군도)의 영유를 둘러싸고, 1982년 3월부터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있었던 3개월에 걸친 분쟁이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서는 대체로 '말비나스 전쟁(Guerra de las Malvinas)'로 표기하고 있다.1982년 3월 19일,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이 포클랜드 제도의 영국령 사우스 조지아 섬에 2차례 기항, 무단으로 민간인을 입도 시켰다(일명 사우스 조지아 침공). 영국은 사우스 조지아 섬의 아르헨티나 민간인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리면서 동시에 3월 28일, 미국 연방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고 미군은 미 해군의 원자력 잠수함 파견을 결정했다.4월 2일에는 아르헨티나 정규군이..

오늘의 역사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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