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2 군사 반란(Coup d'état of December Twelfth)은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군 내부의 반란 사건으로,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육군 소장이던 전두환이 당시 9사단장으로 육군 소장이었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군대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가 일으킨 쿠데타이다.
다음해인 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령 전국 확대에 따른 권력 장악을 포함하면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친 쿠데타이다.
해당 사건에 대해 잘 정리되어있는 곳이 많기에, 여기서는 짧게 다루겠습니다.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10.26 사건)되자,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에 취임하면서 12월 6일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1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최규하의 선출은 어디까지나 유신 체제의 틀 안이었으나, 대행 취임 직후인 11월 10일 조기의 헌법 개정과 헌법에 근거한 대선을 치르는 것을 취지로 하는 담화를 발표하였고 대통령 취임 직후인 12월 8일에는 [긴급조치 9호]의 2해제와 이 조치로 구속되었던 정치범 68명을 석방과 함께 정치인 김대중의 가택 연금을 해제한 일로, 독재 체제가 완화된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분위기가 대두했다.
한편 박정희 암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계엄사령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수사본부장인 국군 보안사령관 전두환 육군 소장이 대립. 이어서 전두환과 9사단장 노태우 육군 소장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는 자신들이 배제되기 전에 기습을 시도, 12월 12일 저녁에 정승화 참모총장을 공관에서 체포했다.
체포의 이유로는 박정희 암살 사건 발생 시 김재규로부터 음식의 권유를 받은 데 따른, 사건 현장에서 지척 거리에 있으면서도 바로 체포하지 않아서 내란 방조 혐의를 받았다.
계엄사령관의 구속에는 대통령의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재가를 얻고자 하였으나, [국방부 장관(노재현)의 승인 없이는 절대로 결재하지 않겠다]라며 거부했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의 수색을 시작한다.
이때 노 본인은 육군참모총장 공관 쪽에서 울리던 총격을 공산 게릴라에 의한 습격으로 오인하고, 가족과 함께 급히 몸을 피한 상태였다.
쿠데타 세력이 참모총장 공관을 강습했기 때문에 각 일선 부대·경찰이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해 현장에서 뒤섞였고, 공관이 있는 한남동과 경복궁 일대에서는 총격전까지 발전, 한강을 건너는 11 다리도 차단됐다.
또한, 한미연합사령부의 통제 없이 전선의 부대가 서울로 향하는 등 내전 직전의 상태까지 빠졌으나 그 후 전두환 측 부대인 특전사 제1공수여단이 국방부와 육군 본부를 점령하면서 노재현 국방부 장관도 [확보] 된다.
노재현은 전두환 등의 압력에 굴복하여 곧 계엄사령관 체포를 승인,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가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자 최규하는 노재현의 대응 미숙을 비난하면서 계엄사령관 체포 후에 따른 사후승인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튕겼지만, 최규하 자신이 군부를 장악하지도 못했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보안사령부와 하나회를 중심으로 결행된 반란을 묵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결과 정 총장은 징역 10년형을 선고, 정 총장파인 장태완 수도 경비 사령관은 80년 1월 20일 강제로 예비역 편입됐다. 이로써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하나회가 군부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을 탈취한다는 의미의 진정한 쿠데타에 해당하는 것은 오히려 이 이후인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통한 과정이다. 이로 인해 최규하를 사퇴로 몰아가면서 신군부가 모든 실권을 잡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과 비슷한 군부 독재를 지향하는 신군부에 항의하고자 대규모 학생 시위가 발생했으나, 1980년 5월 17일 군사 쿠데타에 따른 비상 계엄령 전국 확대와 그것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그해 8월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의 압력 아래에 사퇴, 9월 1일에는 전두환 장군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회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1980년 10월 22일에 개헌안에 대한 찬반 국민 투표가 90% 이상의 찬성으로 승인, 10월 27일 새 헌법이 공포·발행되면서 제4공화국 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1981년 2월 25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 전두환이 압도적 득표로 당선, 3월 3일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5공화국 체제를 출범시켰다.
'오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역사 : <12월 14일> 2012년 12월 14일 -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0) | 2019.12.13 |
---|---|
오늘의 역사 : <12월 13일> 2006년 12월 13일 -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 채택 (0) | 2019.12.12 |
오늘의 역사 : <12월 11일> 2010년 12월 11일 - 스웨덴, <스톡홀름 폭탄 테러 사건> (0) | 2019.12.10 |
오늘의 역사 : <12월 10일> 1948년 12월 10일 - 유엔총회, <세계 인권 선언 채택> (0) | 2019.12.09 |
오늘의 역사 : [12월 9일] 1915년 - 일본 [산케베츠 불곰 사건] (0) | 2019.12.09 |